"'질 좋은' 저가 배터리, 한국이 만든다"…중국 대세 흔드는 기업들
[편집자주] 중국의 전기차와 배터리가 '싸구려'를 벗어나고 있다. 가격 경쟁력은 물론이고 브랜드 가치까지 갖춘다. K-밸류체인의 코앞에 대규모 투자를 할 정도로 과감하기까지 하다. 대한민국 기업들도 헤게모니를 넘겨주지 않으려 분투중이다.
"조금은 당황하고 있죠."
지난달 6일 체코 모라바슬레스코주 노쇼비체 현대차 체코공장(HMMC)에서 만난 이창기 법인장이 중국 전기차의 현지 진출에 대해 한 말이다. 그동안 '싸지만 성능이 떨어진다'는 시선을 받아온 중국 전기차가 유럽 현지에서 먹히기 시작한 상황에 대한 솔직한 심정이 묻어났다.
실제 지난해 유럽 내 전기차 판매량에서 중국은 한국을 처음으로 추월했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중국의 유럽 내 전기차 판매는 17만4720대에 달했다. SAIC(8만5791대)가 188%, 지리그룹(7만2361대)이 98% 넘는 성장률을 보인 결과다. 같은 기간 현대차와 기아의 판매량은 11만6817대였다.
글로벌 완성차 업계는 중국 기업들이 내수시장이 이미 '레드오션'이 됐다는 판단 아래 유럽 시장 진출을 서두르는 것으로 분석한다. 즉 중국 내 공급과잉과 내수시장 경쟁이 심화하자, 수출을 통해 활로를 찾고 있는 것이다.
중국 전기차 기업은 '유럽 브랜드'를 앞세운다. 대표적으로 영국 자동차 브랜드 MG모터는 중국의 SAIC 산하 브랜드다. 스웨덴 프리미엄 브랜드 볼보, 볼보의 전기차 전용 브랜드 폴스타는 지리그룹 소속이다. 전기차 업계는 유럽에 들어오는 중국 차의 약 84%가 이같이 우회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고 파악한다.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 1위 BYD의 경우 대형 딜러를 통한 마케팅 전략으로 접근하고 있다. 가격 경쟁력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갖췄다. BYD의 '돌핀'은 동급 유럽 브랜드 전기차 대비 5000~1만 유로 가량 더 저렴하다. 주행거리도 310~427㎞로 준수한 편이다. 지난해 유럽에서 연 1만대 판매를 달성한 것으로 보이는 BYD는, 향후 헝가리에 생산라인을 갖추고 유럽 공략을 본격화한다는 계획이다.
이 법인장은 "MG모터나 폴스타가 유럽계 브랜드로 인식되면서 빠르게 시장 점유율을 높인 것"이라며 "중국 전기차는 그동안 영국과 스웨덴, 노르웨이 등 북유럽을 중심으로 거점을 마련해 시장 점유율을 확대해왔고 이제 다른 유럽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는 '정면승부'로 방향을 잡았다. 당장의 경쟁자는 중국 보다는 테슬라와 같은 선도기업이다. 글로벌 톱티어 전기차 기업을 향해 나아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중국을 압도할 위치를 확보할 수 있다. 우선 전기차 라인업을 강화한다. 현대차 체코공장만 봐도 현재 유럽에 공급하는 전기차 모델은 '코나 일렉트릭' 한 차종이지만 2027년에는 세 차종을 생산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향후 10년간 전동화 전환에 연평균 3조원 이상을 쏟아부어 글로벌 전기차 생산 비중을 현재 8%에서 2030년 34%로 늘린다.
중국이 장악하고 있는 리튬인산철(LFP) 전기차 시장에도 적극 대응한다. 현대차는 올해 하반기 경형 SUV '캐스퍼 일렉트릭'을 출시한다. 특히 LFP 시장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 기술 내재화 계획을 세웠다. 올해까지 LFP 배터리를 자체 개발해 이르면 2025년부터 실제품에 적용한다.
업계 관계자는 "가격 경쟁력을 내세운 중국 업체들과 경쟁을 해야 하기 때문에 부품 현지화 등을 통해 설계부터 생산까지 원가를 절감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중국이 값싼 전기차를 내세워 판매를 확대하자 미국과 유럽이 보조금을 통한 견제에 나서고 있어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대응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배터리업계가 중국이 주도하는 보급형 시장 공략에 나선다. 개량화된 리튬인산철(LFP) 배터리와 삼원계 기반의 중저가 제품 등 라인업을 다변화해 폭넓은 시장을 품겠단 시도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배터리 3사는 LFP 배터리 양산 시점을 2026년으로 잡고 있다. '저가'가 전기차 시장의 화두가 되며 LFP 배터리 채택이 급증하고 있어서다. LG에너지솔루션은 이보다 양산 시점을 앞당기는 것도 검토 중이다. 삼성SDI는 ESS(에너지저장장치)부터 개발한단 방침이다. SK온은 현재 LFP 개발을 마치고 주요 고객사와 공급을 논의하고 있다.
중국과의 가격경쟁력 격차는 기술력으로 극복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중국 기업들이 만들고 있는 LFP의 경우 가격은 싸지만 동일한 부피의 삼원계 제품보다 에너지밀도가 낮다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주행거리가 300~400㎞ 수준에 그치는 등 성능이 떨어진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LG에너지솔루션은 세계 최고 수준의 파우치형 기술을 접목해 공간 활용률을 높이고 제품 경량화를 추진한다. SK온은 영하 20도 이하 저온에서 주행거리가 급감하는 LFP 단점을 하이니켈 개발 단계서 확보한 소재·전극 기술을 접목해 보완했다.
개량형 LFP 제품을 통한 저가형 시장뿐 아니라 중저·중고가(미들급) 시장 공략도 병행한다. LFP에 주력해 온 중국이 개척하지 못한 시장이고 전기차 모델이 다변화함에 따라 향후 부상할 것으로 예측되는 LFP와 삼원계 사이 틈새시장이라 볼 수 있다. 국내 3사는 삼원계 기술 개발 과정에서 확보한 핵심 원료의 배합 기술을 바탕으로 중저·중고가 시장을 선점해 폭넓은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려 한다.
삼원계는 니켈(N)·코발트(C)·망간(M)·알루미늄(A) 등의 원료를 배합해 NCM·NCA·NCMA 등을 제작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여기서 비싼 니켈의 비중을 낮추고 값싼 망간 함량을 높인 망간리치와 LFP에 망간을 더한 리튬망간인산철(LMFP) 배터리를 만들 수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망간리치·LMFP 배터리 생산 시점을 2027년으로 예고했고, 삼성SDI·SK온 등도 미들급 포트폴리오 확장을 위한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점유율 확대를 꿈꾸는 K-배터리에 대항하기 위해 중국은 프리미엄 시장에 도전장을 냈다. LFP 배터리의 에너지밀도를 최대치로 올린 하이엔드 LFP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전기차 자투리 공간에 빼곡하게 배터리를 탑재하는 방식의 설계 개선을 통해서도 주행거리를 늘리려 시도한다. 중국 동풍차(DongFeng)는 이달 초 CATL 배터리를 탑재한 고급 전기차 라인업을 발표하면서 주행거리가 800㎞에 이른다고 밝혔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중국의 하이엔드 LFP 제품은 국내 3사가 추진하는 미들급 제품과 경쟁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연구개발(R&D)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고 있는 만큼 추후에는 CATL·BYD 등을 중심으로 삼원계 프리미엄 시장도 노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최근 중국 자동차기업 JAC가 세계 최초로 나트륨이온배터리 장착 전기차를 출시하는 등 보급형 시장에서 우위를 지키려는 노력을 지속하고 있어 국내 기업과의 배터리 전선은 보다 확대되고 보다 치열해질 것"이라고 했다.
노쇼비체(체코)=강주헌 기자 zoo@mt.co.kr 부다페스트(헝가리)=최경민 기자 brown@mt.co.kr 김도현 기자 ok_kd@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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