돛 달린 집, 탑 위 차실… 공간 한계 허문 ‘거장의 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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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돛이 집에 달렸다.
"한 달간 의식불명이던 딸이 건강을 되찾은 직후 어딘가로 새롭게 나아가야겠단 긍정적인 정신에서 만들어진 집이에요. 돛은 좋은 바람을 맞아 나아가죠. 작은 기대이지만 잘 살려 나가겠단 의지의 표현입니다." 미학의 관점에서 돛 단 집(Forthcoming Places-6)은 인간 내면의 감정을 매개로 돛과 집이 조응해 무한한 가능성을 펼쳐 내는 공간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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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연성 없는듯 생뚱맞은 구조
SF 소설에 나올법한 형태 눈길
40년간 쌓아온 독특한 세계관
우주 무한 확장성이 기본 바탕
“불확실성 속 가능성 담아냈다”
커다란 돛이 집에 달렸다. 바다를 부유하는 배가 아닌 땅에 착근한 집에 달린 돛은 기능을 상실한 채 펄럭일 뿐이다. 건축의 관점에서 개연성 없는 대상들이 집합한, 목적을 잃어버린 구조물에 의미는 없어 보인다. 이 그림 앞에 선 미노루 노마타(野又穫·69)는 말한다. “한 달간 의식불명이던 딸이 건강을 되찾은 직후 어딘가로 새롭게 나아가야겠단 긍정적인 정신에서 만들어진 집이에요. 돛은 좋은 바람을 맞아 나아가죠. 작은 기대이지만 잘 살려 나가겠단 의지의 표현입니다.” 미학의 관점에서 돛 단 집(Forthcoming Places-6)은 인간 내면의 감정을 매개로 돛과 집이 조응해 무한한 가능성을 펼쳐 내는 공간인 셈이다.
서울 강남구 화이트큐브 서울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일본 작가 미노루 노마타의 첫 국내 개인전 ‘映遠 - Far Sights’는 괴짜 건축가의 작업실 같다. 새하얀 벽에 걸린 작품마다 낮은 수평선 위로 아찔한 높이의 웅장한 구조물들이 보이는데, 하나같이 과학소설(SF)에 나올 만한 형태다. 작은 집 위로 등대가 솟아 있는가 하면, 뼈대만 남은 건물에 갇힌 구(球)들이 위태롭게 빛을 내뿜는다. 대체로 황량한 배경에 정교한 조형미와 콘크리트 같은 단단한 질감이 더해진 구조물들은 바벨탑처럼 잊힌 과거 문명의 산물 같기도, 다가올 미래에 지어질 건물 같은 시공간을 초월한 모호함이 담겨 있는 게 특징이다.
미노루 노마타가 40여 년간 쌓아온 독특한 세계관은 인간의 감정과 인간이 속한 무한한 우주의 확장성에 대한 탐구가 바탕이다. 영국 런던에서 시작해 홍콩, 뉴욕, 파리에 진출한 세계적인 갤러리 화이트큐브가 지난해 9월 서울에도 둥지를 틀면서 개관전에 이은 첫 개인전으로 미노루 노마타의 그림을 선택한 이유다. 갤러리 관계자는 “미노루 노마타는 시공간을 초월하는 그림을 만들기 위해 가공된 구조와 지형적 형태의 어휘를 개발해 왔다”며 “정밀주의 화가 찰스 실러, 바우하우스의 거장 라이오넬 파이닝거, 옵아트의 착시효과, 상징주의와 아르데코의 유동적인 양식 등을 망라하는 풍경을 화폭에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가 직접 소개하는, 눈여겨볼 작품은 ‘Far Sight’(영원) 연작이다. 다도(茶道)를 닦는 일본의 전통 차실(茶室)이 높이 솟은 형태로, 2009년 작가가 집 한편에 마련된 한 칸짜리 좁은 작업실에서 그린 그림이다. 비좁은 공간이라는 물리적 한계를 광활한 하늘을 마주하는 마천루로 바꾼 것이다. 말 그대로 집에 ‘우주’(宇宙)를 담아낸 것이다. 지난 11일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전시 타이틀이기도 한 영원은 멀리 비춘다는 뜻”이라며 “차실은 특히 한국 문화와도 연관이 있다고 생각해 전시에서 소개할 작품으로 고르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작가는 자신의 감정과 생각이 관람객에게 그대로 투영되는 것을 경계했다. 그는 “사람은 복합적인 만큼 작품의 의미도 다의적으로 받아들여지길 바란다”면서 “내 작품은 모호한데, 이런 불확실함은 또 하나의 가능성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승목 기자 mo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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