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교류' 빡빡 지우는 김정은…50년 넘은 남북관계 막내리나
1972년 이후 부침 겪으면서도 이어진 남북관계 완전 단절에 우발상황 우려 커져
(서울=연합뉴스) 장용훈 기자= 북한이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한 데 이어 대화와 협력을 전담해온 대남기구를 공식 폐지해 부침을 겪으면서도 50년 넘게 이어져 온 남북관계가 막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연말 열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남북관계를 '적대적, 교전중인 두 국가관계'로 정의했다. 이어 15일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0차 회의 시정연설에서는 "우리 공화국의 민족력사에서 통일, 화해, 동족이라는 개념자체를 완전히 제거해 버려야 합니다"라고 밝혔다.
회의에서는 남북 당국간 회담을 주도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남북 당국 및 민간의 교류협력을 전담한 민족경제협력국, 현대그룹의 금강산 관광사업을 담당해온 금강산국제관광국 폐지가 결정됐다.
앞으로 남북간에 당국간 회담이나 경제협력사업, 민간교류가 없을 것임을 분명히 한 셈이다.
특히 김 위원장은 연설에서 "수도 평양의 남쪽 관문에 꼴불견으로 서 있는 '조국통일3대헌장기념탑'을 철거해버리는 등의 대책"도 실행할 것을 주문했다.
조국통일3대헌장은 평화·통일·민족대단결의 조국통일 3대원칙, 전민족대단결 10대강령, 고려민주연방제 통일방안 등 김일성 주석이 제시한 통일원칙을 일컫는 것으로 이 탑은 김일성의 '통일업적'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또 김 위원장은 "북남교류협력의 상징으로 존재하던 경의선의 우리측 구간을 회복불가한 수준으로 물리적으로 완전히 끊어 놓는 것을 비롯해 접경지역의 모든 북남련계 조건들을 철저히 분리시키기 위한 단계별 조치들을 엄격히 실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경의선을 비롯한 접경지역에서 남북간 연결사업과 금강산관광사업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남긴 업적이다.
결국 김 위원장이 한민족의 염원인 '통일'을 지우고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관계'로 규정하면서 할아버지인 김일성, 아버지인 김정일의 유산마저 부정하는 셈이다.
북한의 이번 결정은 선대 수령들이 추진해온 정책을 부정하며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에서 무게감을 더하고 있다.
이처럼 김 위원장이 남북한이 따로 살 결심을 분명히 하면서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을 시작으로 이어진 남북관계는 사실상 막을 내리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는다.
남북은 박정희 대통령 재직 시절 밀사교환을 통해 합의를 만들어낸 이후 다양한 현안을 대화와 협상으로 풀기 위한 노력을 이어왔다.
박정희 정부에서는 이산가족 문제를 풀기 위한 적십자회담을 열었고 군사적 충돌과 교류협력을 논의하기 위한 남북조절위원회 구성에도 합의했다.
이어진 전두환 정부에서는 단일팀으로 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한 체육회담, 아웅산 폭탄테러사건 발생 이듬해인 1984년 적십자회담이 열렸고 1985년에는 사상 첫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졌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남북 입법기관간 교류도 논의를 시작해 1985년 남북국회회담 준비접촉도 이뤄졌다.
노태우 정부에서는 총리를 수석대표로 하는 고위급회담이 열려 남북관계를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의 잠정적 특수관계'로 규정한 기본합의서가 체결됐다. 김영삼 정부에서는 김일성 사망으로 무산되기는 했지만, 남북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하기도 했다.
이어진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2000년 정상회담을 비롯한 다양한 당국간 회담과 금강산 관광·개성공단·남북 철도 도로 연결 등 3대 협력사업이 진행됐고 민간 차원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인도적 지원과 협력사업이 이뤄지면서 남북교류의 황금기를 보내기도 했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금강산 관광사업과 개성공단이 순차적으로 문을 닫기는 했지만, 위기의 순간 남북관계를 대화로 해결하기 위한 노력은 지속돼 당국간 회담이 열리기도 했다.
그러나 북한에서 김정일이 사망하고 김정은 위원장이 권력을 승계하면서 핵·미사일을 가지려는 노력은 가속됐고 촘촘한 국제사회의 제재망이 구축되면서 남북관계는 악화 일로를 걸었다.
문재인 정부에서 세 차례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미국과 북한 사이의 비핵화 대화를 중재하는 노력이 이어졌지만, 2019년 하노이에서 열린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로 끝나면서 현재의 남북관계를 잉태하고 말았다.
남북은 현재 직통전화뿐 아니라 대남기구의 기능 축소로 국가정보원과 통일전선부를 연결했던 핫라인도 기능을 상실한 것으로 보인다.
남북관계가 최소한의 소통을 위한 창구마저 없는 완전 단절의 상황으로 들어가면서 한반도가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더군다나 김 위원장은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불법무법의 북방한계선을 비롯한 그 어떤 경계선도 허용될 수 없으며 대한민국이 우리의 령토, 령공, 령해를 0.001㎜라도 침범한다면 그것은 곧 전쟁도발로 간주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서해에서 남북한이 포사격훈련을 주고받은 사실을 고려하면 서해상에서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커지는 것 아니냐는 걱정을 키운다.
문정인 연세대 명예교수는 최근 한 토론회에서 "남한이나 북한이나 작심하고 전쟁을 벌일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본다"며 "남북관계가 단절되고 소통할 수 있는 채널이 없는 상황에서 우발적인 군사적 충돌이 확전으로 번질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되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jy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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