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토학살 100주기 지나도록 특별법 뭉갠 국회는 반성하라
[왜냐면] 박덕진 l ‘시민모임 독립’ 대표
지난 12월27일 일본을 방문한 김진표 국회의장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를 만나 100년을 맞은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에 대한 진상 규명과 한국인 유골 봉환에 대한 일본 정부의 전향적 검토와 적극적 협조를 요청했다. 국회 수장이 일본 총리를 만나 간토 학살 문제를 제기한 것은 마땅히 주목받아야 한다. 1923년 9월 조소앙 대한민국 임시정부 외무총장이 조선인 학살에 대한 항의 공문을 보낸 이래, 100년 만에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김 의장의 행보는 선후가 바뀌었다. 간토 학살 100주기를 맞아 지난해 3월 여야 의원 100명이 발의한 ‘간토학살진상규명특별법안’은 여야의 무성의로 인해 아직 국회 행안위에 계류 중이다. 이대로 간다면 특별법안은 19대 국회 때처럼 21대 국회에서도 회기만료 자동폐기 운명을 맞을 수 있다. 김 의장은 먼저 국회의 특별법 제정을 확실히 하고, 진상규명에 대한 일본 정부의 협조를 요구했어야 했다.
1948년 유엔총회는 제노사이드 협약을 채택했다. ‘인종학살’을 의미하는 제노사이드를 인류가 단호하게 대응해야 할 범죄 행위로 규정했다. 간토 조선인 학살 역시 명백한 제노사이드 범죄다. 그런데 이 제노사이드의 완결적 형태가 ‘기억의 제노사이드’인 역사 부정론이다. 자신들의 범죄 행위를 역사에서 지우려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1923년부터 사건을 은폐했다. 지금도 관련 자료의 존재를 부인한다. 100년 전 시작한 기억 제노사이드는 현재진행형이다.
그러나 지난 12월14일 마이니치 신문이 보도한 조선인 학살 육군성 보고 문서를 포함, 2009년 중앙방재회의 보고서, 간토 계엄군 사령부 상보, 피살 조선인 813명을 명기한 사이토 마코토 조선 총독 극비 문서 등 연이어 발견되는 일본 정부 문서가 알려주는 것은 실재 역사로서의 간토 조선인 학살이다. 도쿄, 군마현, 가나가와현, 사이타마현, 치바현에 있는 관련 증언과 기록은 차고도 넘친다. 지난해에 아사히와 마이니치, 교도통신 등 매체가 조선인 학살 관련 기사를 쏟아내고, 일본 정치인과 시민들이 각종 추도 모임에 줄을 이어 참여한 이유다.
간토 학살 진상규명 및 규탄 운동은 항일투쟁기 재일조선인에게 가장 중요한 민족운동이었다. 학살 다음 해인 1924년 오사카 나카노시마 공회당 조선인 학살 규탄대회에는 30명의 보고자가 연단에 올랐고 참석 청중은 7천 명에 달했다. 이후 매해 9월1일은 이 천인공노할 사건을 기억하는 날이었다. 이 기억 운동은 일제 패망 이후에도 재일조선인과 일본 시민단체로 이어졌다. 진상을 밝히려는 재일동포의 연구 성과가 축적됐다. 일본 시민단체 일조협회는 도쿄 요코아미쵸 공원에서 50년 동안 추도식을 열고 있다. 또 다른 시민단체 봉선화는 100여 명 조선인이 희생된 아라카와 강변에 사무실을 두고 40년 동안 진상조사와 추도활동을 벌이고 있다. 일본 정부와 우익이 벌이는 기억 제노사이드에 대항해 100년 동안 이어지는 치열하고 끈질긴 기억운동이다.
다시 21대 국회로 눈을 돌린다. 100명 여야 의원이 발의한 간토학살특별법을 10개월째 행안위에 계류시키는 태만한 국회다. 국회는 도대체 언제까지 이 기억운동을 외면할 것인가? 100년 동안 구천을 떠도는 조선인들의 원혼을 달래는 일에 이제라도 나서야 하지 않는가? 천황제 족쇄에 묶여 전근대에 머물고 있는 일본, 이 이웃 나라를 보편 가치를 공유하는 시민사회 국가로 견인해야 하지 않겠는가? 국회에 엄중히 경고한다. 작금의 직무유기 행태는 일본 정부가 벌이는 기억 제노사이드 범죄행위에 동조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태만한 국회를 기다리는 것은 준엄한 역사의 심판이다. 도쿄 요코아미쵸 공원 50년 추도식을 이어온 미야카와 야스히코 일조협회 도쿄도연합회장은 말했다. “간토 조선인 희생 100주기, 이제 싸움은 시작이다.” 심판은 이렇게 준비되고 있다. 국회의 반성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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