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푸드・K컬처 다 갖고도…CJ, 왜 위기일까 [안재광의 대기만성’s]

2024. 1. 16.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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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 한류 재주 부렸지만 돈 번 놈은 따로 있었다
한류 콘텐츠의 대표 주자인 CJ는 넷플릭스의 확장에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기업으로 꼽힌다.

한류 하면, 떠오르는 기업이 있죠. BTS를 키워낸 하이브, 불닭볶음면으로 라면 열풍을 일으킨 삼양식품, K뷰티의 주역 아모레퍼시픽 등등 많이 있을 텐데. 이 회사를 빼놓고선 한류를 논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오스카 4관왕에 빛나는 영화 ‘기생충’의 투자와 배급을 맡았고, 만두를 비롯해서 비빔밥, 김치 같은 한국 음식을 수출해서 K푸드 원조로 불리기도 하고, ‘쇼미더머니’ 같은 음악 경연의 대명사가 되기도 했어요. 그렇습니다. 한류의 대장 기업이라 할 수 있는 CJ입니다. ‘한류 덕분에 CJ도 당연히 잘나가겠다’ 하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요. 의외로 CJ는 지금 창사 이래 가장 큰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사업의 룰이 바뀐 탓이 큽니다. 사실 CJ그룹 사업들이 원래는 다 내수용이었어요. 우리끼리 싸워서 잘하면 됐어요. 그런데 이제는 글로벌 다국적기업을 상대로 싸워서 이기지 않으면 죽게 됐습니다.

우선 넷플릭스가 생겼죠. CJ는 ENM을 통해 ‘기생충’, ‘미스터션샤인’ 같은 영화와 드라마의 한류를 일으켰는데 이런 한류 콘텐츠를 단순히 제작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유통하는 역할, 그러니까 플랫폼까지 장악하는 원대한 꿈을 꾸었어요.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플랫폼 ‘티빙’을 2010년 출범시키고, 넷플릭스와 경쟁에 나서게 됩니다.

CJ의 콘텐츠 경쟁력은 세계적인 수준이잖아요. 영화로는 ‘설국열차’, ‘아가씨’, ‘헤어질 결심’ 같은 나름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받는 작품이 여럿 있고 드라마는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비롯해서 슬기로운 시리즈, 그리고 ‘도깨비’, ‘사랑의 불시착’, ‘갯마을 차차차’, ‘슈룹’ 같은 수많은 히트작이 있니까요. 여기에 JTBC와도 손을 잡아서 ‘재벌집 막내아들’, ‘부부의 세계’, ‘스카이캐슬’, ‘이태원클라쓰’ 같은 JTBC와 콘텐트리중앙의 드라마, 영화까지 손에 넣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넷플릭스엔 당해 낼 수가 없었죠. 심지어 디즈니조차도 상대가 안 되고 있잖아요. 여긴 기존 디즈니 애니메이션 뿐만 아니라 마블과 스타워즈, 아바타 군단까지 넣었는데 넷플릭스란 벽에 부딪혀서 엄청나게 고전하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퇴직한 회장 밥 아이거를 다시 불러내서 구조조정을 할 정도니까요.

OTT 사업의 적자는 CJ ENM을 흔들고 있습니다. ENM은 2022년 약 1700억원, 지난해 2700억원가량의 영업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추산됩니다. 티빙도 안 좋은데, 2022년 9000억원 넘게 주고 산 미국 제작사 피프스 시즌이 현지 배우와 작가들의 파업 탓에 적자를 더해줬고요. 최근 투자하거나 배급한 영화들도 줄줄이 망해서 되는 게 없었어요.

답이 잘 안 나오니까 CJ는 승부수를 던집니다. SK그룹이 최대주주인 OTT 웨이브를 합치겠다고 나섰어요. 웨이브는 KBS, MBC, SBS 같은 지상파 TV가 주주로 참여하고 있고, 덩치도 티빙과 엇비슷해서 합치면 시너지 효과가 분명 있을 것 같죠. 넷플릭스의 하청 제작사로 살아 가느니 넷플릭스와 제대로 한판 붙어서 승부를 보겠다는 거죠.

그럴 만도 한 게 CJ가 티빙만 하는 게 아니잖아요. 원래 CJ 하면 tvN, 엠넷, OCN 같은 TV 채널로 유명한데 이런 채널의 주된 매출이 바로 광고입니다. 광고주들이 과거에는 지상파나 tvN 같은 곳에 줄서서 광고를 했는데 지금은 아니죠. 넷플릭스, 유튜브 같은 플랫폼으로 몰려가고 있습니다. CJ가 넷플릭스에 밀리면 채널 경쟁력도 그만큼 낮아지는 것이니까 넷플릭스와의 경쟁은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여기에 하나가 더 있습니다. 극장 사업, CGV까지 얽혀 있어요. 극장 사업은 코로나 탓에 2~3년간 엄청나게 힘들었죠. 코로나 전 연간 2조원 가까운 매출을 냈던 게 코로나 발생 첫 해인 2020년 5000억원대로 뚝 떨어졌고요 그해 당기순손실이 무려 7000억원을 넘깁니다. 매출은 이후에 조금씩 회복했는데 그래도 적자는 계속 나서 2021년에도 3000억원대, 2022년에는 2000억원대 손실을 기록해요.

그럼 CGV는 살아날까. 전망이 밝지는 않습니다. 코로나 때 사람들이 집에서 넷플릭스 엄청 봤는데 지금도 사람들이 극장에 굳이 갈 필요를 못 느끼고 있죠. 근데 영화 티켓 값은 또 엄청 올라서 영화 한 편 보는 데 1만4000원이나 해요. 코로나 전에는 1만원이었습니다. 넷플릭스의 스탠더드 요금이 1만3500원이니까 극장에서 영화 한 편 보느니 넷플릭스 한 달치 결제하는 게 가성비 면에선 훨씬 나아요. 또 극장에는 4DX, 아이맥스 이런 특수관들이 늘어서 이런 데서 영화 보면 2만원도 넘고 누워서 보는 프리미엄관에 가면 5만원도 하죠. 



CJ가 힘들어진 또 다른 이유는 쿠팡 때문입니다. CJ는 식품 시장에서 엄청난 강자인데요. 과거에 롯데, 신세계, 현대 같은 막강한 유통사가 있을 때도 ‘을’이 아니라 ‘갑’의 위치에 있었어요. 예를 들어 이마트에서 햇반 좀 싸게 달라고 해도 절대 헐값에는 안 팔았고요. 비비고 만두 같은 것은 찾는 사람이 워낙 많아서 오히려 주면 고마워할 정도였죠.

그런데 쿠팡이란 놈이 나타나서 가격을 후려 칩니다. 쿠팡의 논리는 단순한데 강력해요. ‘싸게 내놔라, 대신 엄청 많이 팔아줄게.’ CJ 입장에선 이 쿠팡이란 놈이 롯데, 이마트 이런 데 다 이기고 유통 시장에서 엄청난 강자가 되니까 무시할 수는 없어서 싸게 내주다가 이렇게 팔면 결국에는 남는 것도 없이 쿠팡만 좋은 일 시키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고심 끝에 2022년 11월부터 햇반, 비비고를 쿠팡에서 다 빼요. 대신에 이마트, 네이버 등과 동맹을 맺고 쿠팡과 맞서 싸우고는 있는데 쿠팡의 위상이 날로 커지고 있어서 CJ의 고민도 깊을 겁니다.

그럼 해외에서 많이 팔면 되는데, 해외 쪽도 매출이 팍팍 늘고 그러진 않고 있어요. 최근 분기당 1조3000억원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금액적으로 봤을 땐 많긴 한데, 성장률로 봤을 땐 거의 제로에 가깝습니다.

쿠팡이 CJ 입장에선 위협적인 게 로켓배송으로 그룹의 캐시카우인 대한통운까지 위협하고 있어요. 온라인쇼핑 시장이 커질수록 택배가 많아지고, 그럼 가장 큰 혜택을 누려야 하는 게 택배 1위 대한통운인데요. 근데 대한통운의 실적은 ‘의외로’ 평탄합니다. 그 이유가 쿠팡 때문인 것으로 업계에선 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쿠팡은 자기들이 물건 직접 사서 자기들 창고에 넣어 놨다가 자기들 택배 차로 배송을 해주고 있죠. 이 물량이 원래는 네이버나 G마켓, 11번가 같은 곳에서 했으면 대한통운에 상당 부분 일감이 갔어야 하는데 쿠팡에서 다 처리해서 안 갔다는 얘깁니다. 여기에 쿠팡은 자기들에 입점해서 물건 파는 업체들, 이걸 서드파티라고 부르는데 이런 서드파티 상품도 자기들 창고에 넣어주고 배송도 해주고 하는 서비스를 하고 있죠. 한마디로 택배 사업을 한다는 얘깁니다. 쿠팡이 전국에 창고 무진장 짓고, 택배 배송 뿐만 아니라 쿠팡 플렉스니 뭐니 개인 알바까지 다 동원해서 물건 가져다 주면, 대한통운을 집어 삼킬 가능성도 있습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쿠팡이 CJ올리브영을 최근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습니다. 쿠팡이 요즘 주력하는 분야 중 하나가 화장품인데요, 올리브영이 자기들과 거래하는 화장품 회사에 “너 쿠팡에 물건 주면 우리와 거래 끊거나 불이익을 주겠다”고 갑질을 했다는 게 쿠팡의 주장입니다. CJ는 올리브영의 상장을 계획하고 있고 그룹 전체적으로 자금난에 빠져 있는데 쿠팡이 이렇게 딴지를 걸면 타격이 큽니다.

이재현 회장은 2010년 CJ그룹의 향후 10년 비전을 제시하면서 그룹 매출 100조원을 달성하고, 그 70%를 해외에서 거두겠다고 했는데 끝내 이 목표는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2020년 CJ그룹의 매출은 32조원에 그쳤죠.

하지만 이재현 회장과 CJ가 지나온 길을 돌아보면, 이 회사는 분명합니다. 자신들이 하는 분야에선 선도적인 입지를 차지하고 압도적으로 잘하겠다. 과연 티빙과 CGV, 식품 사업에선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안재광 한국경제 기자 ahn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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