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사채, 일감 몰아주기…재벌 경영권 승계 작업의 역사

김경락 기자 2024. 1. 16.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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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형성된 한국의 재벌은 창업 세대 이후 경영권이 2세, 3세로 내려갈수록 그룹에 대한 총수 지배력 약화가 가장 머리 아픈 과제였다.

한화그룹이 도입한 양도제한조건부주식(RSU) 제도는 이런 맥락에서 신종 경영권 승계 수단의 등장을 알린다.

총수 일가가 지분을 보유한 비상장사에 그룹 내 일감을 몰아줘 기업가치를 끌어올려 상장시킨 뒤 지주사 등 그룹 지배력에 중요한, 의미 있는 계열사와 인수합병을 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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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형성된 한국의 재벌은 창업 세대 이후 경영권이 2세, 3세로 내려갈수록 그룹에 대한 총수 지배력 약화가 가장 머리 아픈 과제였다. 복수의 자녀에게 지분을 상속·증여하는 과정에서 지배력이 분산되고 동시에 세금도 부담스러운 사안으로 등장했다. 이런 문제를 풀기 위한 재벌들의 움직임은 매우 다양하게 펼쳐졌다. 편법·불법 경영권 승계 논란이 뒤따랐던 배경이다. 한화그룹이 도입한 양도제한조건부주식(RSU) 제도는 이런 맥락에서 신종 경영권 승계 수단의 등장을 알린다.

좋은 본보기가 삼성가의 경영권 승계이다. 삼성은 1990년대 후반부터 회장 비서실(이후 구조조정본부, 전략기획실, 미래전략실로 명칭 변경)이 중심이 돼 경영권 승계 작업을 치밀하게 기획·추진해갔다. 관건은 그룹 지주사 구실을 하는 삼성에버랜드(현 삼성물산) 지분을 삼성 3세 이재용씨(현 삼성전자 회장)가 확보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먼저 주식으로 전환 가능한 사채(전환사채·CB) 활용법이 등장했다. 오늘날 금융시장에선 흔한 금융상품이지만 당시만 해도 생소한 상품이었다. 이재용씨는 다른 회사 고위임원들이 전환사채를 인수할 권리를 포기(실권)한 몫까지 사들이면서 삼성에버랜드 지분을 손쉽게 확보했다. 금융법·세법이 허술하던 때였다.

삼성뿐만 아니라 다른 그룹에서도 흔히 나타난 또 다른 방식은 ‘일감 몰아주기’다. 총수 일가가 지분을 보유한 비상장사에 그룹 내 일감을 몰아줘 기업가치를 끌어올려 상장시킨 뒤 지주사 등 그룹 지배력에 중요한, 의미 있는 계열사와 인수합병을 하는 방식이다. 2000년대 들어 현대글로비스(정의선)·삼성에스디에스(SDS, 이재용·부진·서현 지분 보유)를 중심으로 한 일감 몰아주기 논란이 끊이지 않은 까닭이다. 삼성물산-제일모직(옛 삼성에버랜드) 합병(2015년)이나 현대엔지니어링 상장 무산(2022년) 논란의 바탕에도 총수 일가의 지배력 확대와 이 과정에서 소수주주의 이익 침해라는 대립 구도가 깊게 깔려 있었다.

순탄치는 않았다. 편법·불법 승계 논란이 일면 법정 공방은 물론이고 정부의 규제 강화와 함께 감시도 뒤따랐다. 한 예로 일감 몰아주기와 관련해선 기존 공정거래법의 규율이 취약하다고 본 정부는 ‘사익 편취 규제’(공정거래법)와 ‘일감 몰아주기 과세’(상속·증여세법) 제도를 2010년대 초 도입했다. 또 자본시장이 성숙하면서 한층 강해진 소수주주들의 목소리도 총수 중심의 그룹 지배구조 개편을 수월하지 않게 했다. 국민 소득이 불고 개인투자자가 1400만명까지 늘면서 ‘행동하는 똑똑한 소액 주주’와 사회책임투자(SRI)를 강조한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의 행동주의를 무시할 수 있는 국내 재벌은 사실상 없다. 2010년대 후반 현대차그룹이 지배구조 개편에 나섰다가 주주총회를 앞두고 전격 개편안을 철회한 사건은 소수주주·기관투자자의 힘을 보여준 대표 사례다.

지난 20여년의 이런 흐름은 한마디로 싼값의 지배권 승계를 기획한 재벌의 도전(혹은 꼼수)과 편법·불법적 승계를 막으려는 정부·시장의 응전의 반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금융감독원이 지난해 말 대주주에 대한 양도제한조건부주식 등 주식기준보상에 대한 공시 강화에 나선 건 편법 승계 가능성을 염두에 둔 규제당국의 응전이라고 볼 수 있다. 이방우 금감원 지분공시1팀장은 “내부에서 대주주에 대한 알에스유 부여에 대한 여러 논의가 있었으며 시장에서도 질의가 많았다. 이번 공시 강화는 그런 오랜 논의와 고민 속에 이뤄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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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락 기자 sp9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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