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거있는, 또는 무모한 도전···스넬은 원하는 계약을 얻어낼까

윤은용 기자 2024. 1. 16. 0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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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이크 스넬. 게티이미지코리아



블레이크 스넬(32)은 지난해 샌디에이고에서 180이닝을 던져 14승9패 평균자책점 2.25, 탈삼진 234개를 기록하며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수상에 성공했다. 탬파베이에서 뛰던 2018년 아메리칸리그 사이영상을 수상했던 스넬은 이로써 게일로드 페리, 랜디 존슨, 페드로 마르티네스, 로저 클레멘스, 로이 할러데이, 맥스 슈어저에 이어 양대리그에서 사이영상을 수상한 역대 7번째 투수가 됐다.

시즌 후 자유계약선수(FA)가 돼 시장에 나온 스넬이 선발투수 최대어가 되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시간은 흘러가는데, 스넬을 향한 관심은 생각보다 미지근하다. 몸값이 너무 높기 때문이다. 미국 USA투데이의 밥 나이팅게일에 따르면 스넬측이 원하는 금액은 최소 2억4000만 달러(약 3171억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스넬 영입전에 뛰어들었던 뉴욕 양키스는 스넬측의 요구 금액에 1억달러 가량이 부족한 제안을 했다가 거절당하자 방향을 선회, 마커스 스트로먼과 2년 3700만 달러(약 488억원)에 계약하며 사실상 영입전에서 물러났다.

스넬의 에이전트는 최고의 협상가로 불리는 스캇 보라스다. 스넬 외에도 코디 벨린저, 조던 몽고메리, 맷 채프먼 등 이번 FA 시장에 나온 거물급 선수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는 보라스는 급할 것 없다는 듯 느긋하게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스넬과 보라스는 자신들이 원하는 수준의 계약을 따낼 수 있을까.

블레이크 스넬. 게티이미지코리아



김하성 등 동료들과 사진을 찍고 있는 블레이크 스넬(맨 오른쪽). 게티이미지코리아



스넬은 데뷔 후 작은 부상은 있었지만, 시즌을 통째로 날릴 정도로 큰 부상을 당한 적은 없다. 여기에 30대 초반에 들어섰음에도 구위는 여전히 강력하다. 스넬의 지난 시즌 패스트볼 평균 구속이 95.5마일로 선발 투수 가운데 18위, 왼손 선발 투수 중에서는 헤수스 루자르도(마이애미·96.7마일)에 이은 2위를 차지했으며 95마일 이상의 타구 속도를 기록한 비율을 뜻하는 하드 히트 비율도 33.8%로 리그 전체에서 5번째로 좋았다. WAR(6.0), 피안타율(0.181), 평균자책점, 조정 평균자책점(+ERA·182) 등 다수 기록에서 1위를 차지했다.

스넬은 지난해 초반 패스트볼이 맞아나가면서 잠시 부침을 겪었다. 그 위기는 샌디에이고로 넘어온 후 오랫동안 즐겨쓰지 않았던 체인지업의 비중을 크게 늘리는 것으로 벗어났다. 첫 9경기에서 단 1승(6패)에 평균자책점 5.40의 부진을 겪다가 이후 23경기에서는 13승(3패), 평균자책점 1.20의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였다. 특히 마지막 6경기에서는 38이닝을 던져 단 2자책점(평균자책점 0.47)만 내줬다.

무엇보다, 현재 시장 상황이 스넬에게 썩 나쁘지 않다. 현재 시장 상황은 선발 투수를 필요하는 팀이 많다. 스넬과 몽고메리가 ‘빅2’로 평가되고 류현진, 마이클 로렌젠, 제임스 팩스턴 같은 준척급 선발 투수도 여전히 남아있다. 이런 수준급 투수들의 수가 적고, 수요는 많으니 선발 투수들의 몸값이 폭등하고 있다. 스넬의 적정 몸값으로 다수 매체들이 적게는 1억2200만 달러(디 애슬래틱), 많게는 2억 달러(MLB트레이드루머스)를 예상하는데, 이는 스넬이 원하는 금액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하지만 스넬의 에이전트인 보라스는 구단들과 밀고 당기기에 이골이 나 있는 인물이다. 팬들은 예상을 훨씬 웃도는 금액에 계약을 하는 보라스의 고객들을 수도 없이 봐왔다. 더욱이 이번 FA 시장은 다저스의 무시무시한 투자로 지나치게 과열되어 있다.

블레이크 스넬. 게티이미지코리아



하지만 스넬이 마냥 웃을 수 있는 것만은 아니다. 스넬의 가장 큰 문제는 고점과 저점의 차이가 너무나도 크다는 것이다. 이는 스넬의 고질적인 문제인 제구 불안이 가장 큰 이유로 작용한다. 스넬은 지난해 평균자책점에서 내셔널리그 1위에 올랐지만, 볼넷을 무려 99개나 내줘 최다 볼넷 1위에도 오르는 불명예를 안았다. 평균자책점은 내셔널리그에서는 1912년, 아메리칸리그에서는 1913년부터 공식 기록으로 인정되기 시작했는데, 스넬은 평균자책점이 공식 기록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이후 최초로 평균자책점과 최다 볼넷에서 동반 리그 1위에 오른 투수가 됐다. 리그 최다 볼넷 투수가 사이영상을 수상한 것은 1959년 얼리 윈 이후 64년 만이었다.

많은 볼넷은 많은 투구수로 이어지고, 결과적으로 스넬의 이닝 소화력을 크게 떨어뜨렸다. 스넬이 데뷔 후 규정이닝을 채우고 두자리수 승수를 올린 것은 사이영상을 수상한 2018년과 지난해, 두 번 뿐이다. 심지어 이 두 번의 시즌을 포함해 데뷔 후 한 번도 완투를 해본적이 없다. 많은 볼넷에도 구위가 워낙 뛰어나다보니 실점을 최소화하고는 있지만, 안정감이라는 측면에서 좋은 점수를 얻기 힘들다. 에이스들은 고점보다 저점일때 어떻게 던지느냐에 따라 그 가치를 더욱 인정받기 마련이다. 데뷔 후 큰 부상은 없었지만, 부상자명단에 7번이나 올라 내구성에 대해서도 의문부호가 붙는다.

스캇 보라스. 게티이미지코리아



과열될 때로 과열된 시장 상황, 선발 투수 수요가 많다는 점 등은 보라스가 충분히 웃을 수 있는 부분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나친 장기전이 무조건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법은 없다. 보라스는 2017년 시즌 후 스프링캠프가 다가오도록 계약을 성사시키지 못하다가 자신의 고객들에게 만족스럽지 못한 수준의 계약을 안겼고, 이듬해 브라이스 하퍼와 댈러스 카이클의 계약도 장기전으로 끌고 갔다가 결국 하퍼에게 13년 3억3000만 달러로 연평균 2500만 달러가 조금 넘는 다소 불만족스러운 계약을, 카이클은 시즌 개막이 다 되도록 계약을 안기지 못한 굴욕을 당한적도 있다. 보라스는 이후 가급적이면 거물급 선수들의 계약은 최대한 빠르게 성사시켜오고 있다.

윤은용 기자 plaimsto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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