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할 사람 없어 공장 ‘무용지물’, 돈 쓸 사람 없어 내수 ‘휘청’’ [심층기획-'저성장의 늪' 기로에 선 한국]

이희경 2024. 1. 16. 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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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 생산연령인구 본격 감소
인구 감소에 생산·투자·소비 저하 ‘도미노’
생산연령인구 1%씩 줄어들면
GDP 0.59%씩 하락 경제 악영향
저출산·고령화, 잠재성장률 하향 ‘주범’
한미경제硏 “韓 인구문제 심각한 상황”
30∼34세 인구 규모가 출생아 수 결정
저출산 대응 골든타임 10년 남짓 남아
출산율 올라도 노동력 확보 시간 걸려
여성·고령자 경제활동 제고 병행해야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2040년대에 0%대까지 곤두박질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배경으로 주요하게 거론되는 건 저출산·고령화 현상이다. 1970∼1980년대 경우 양질의 노동력이 꾸준히 유입되면서 성장에 대한 노동의 기여도가 2% 전후로 측정될 정도로 높았다. 하지만 2030년대엔 생산연령인구(15~64세)가 연평균 50만명 줄어들 것으로 예측되는 등 일하는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 것으로 예측된다. ‘인구 오너스(생산가능 인구 감소에 따른 경제성장 지체 현상)’ 시대가 본격적으로 찾아온다는 것이다. 인구 감소는 생산 저하는 물론 투자와 소비에 ‘도미노’처럼 악영향을 끼친다.

전문가들은 인구 감소세를 반전시킬 수 있는 ‘골든타임’이 10년 남짓 남은 만큼 저출산 대책을 대대적으로 보완하는 동시에 여성과 노년층의 경제활동참가율을 높여야 장기성장률 급락세를 막을 수 있다고 제언한다.
◆잠재성장률 하락 부르는 ‘인구감소’

15일 세계일보가 국내외 기관들의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한국의 잠재성장률 하향 원인으로 저출산·고령화를 거론한 분석이 대세를 이뤘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해 11월 ‘연례협의 보고서’를 통해 2026~2028년 3년간 중기 잠재성장률을 2.1%로 내다보면서 도전과제로 ‘고령화’(population aging)를 들었다. 한미경제연구소(KEI)도 지난해 11월 ‘한국의 잠재성장률 높이기’ 분석 보고서에서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6%에 근접하고 있다며 “인구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국내 학계·기관의 진단도 비슷하다.

한국경제학회는 2022년 발간한 논문 ‘한국경제의 7대 과제’를 통해 잠재성장률이 낮아진 이유로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노동력의 감소를 제일 먼저 거론했고, 한국개발연구원(KDI)도 같은 해 하반기 ‘장기경제성장률 전망과 시사점’을 통해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2041~2050년 평균 0.7%로 떨어질 것으로 예측하면서 노동공급의 감소를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잠재성장률은 물가를 자극하지 않으면서 달성 가능한 최대 성장률로 한 나라 경제의 기초체력을 나타낸다.

노동력의 감소는 어떤 경로로 잠재성장률을 떨어뜨릴까. 통상 잠재성장률이 ‘노동’과 ‘자본’의 공급, 기술혁신 등 경제전반의 효율성을 나타내는 ‘총요소생산성’ 3가지의 합으로 추정되는 만큼 취업자 수·노동공급 시간 하락 등에 따른 노동 투입의 감소는 잠재성장률 하락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허진욱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대한민국을 하나의 공장이라고 가정했을 때 활발하게 경제활동을 하는 비율이 하락하면서 향후 공장의 시설은 그대로 있지만 사용할 순 없게 되는 것”이라면서 “인구 감소는 잠재성장률을 낮추는 가장 큰 요소”라고 말했다.
간접 효과도 상당하다. 저축을 많이 하는 연령대인 생산연령인구가 감소하게 되면서 경제 전체적으로 자본 공급이 감소하고, 투자도 덩달아 줄게 된다. 한국경제학회는 “인구가 감소하면 경제는 두 가지 경로로 타격을 입는다”면서 “하나는 생산가능(연령)인구 감소로 인한 경제성장의 둔화이고, 다른 하나는 소비 인구의 축소로 인한 내수 위축”이라고 분석했다.
생산연령인구 증가로 ‘인구 보너스’를 누렸던 상황이 180도 바뀌는 것이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1972~1980년 국내총생산(GDP) 증가율(8.67%)의 노동 기여도는 2.41%에 달했다. 1981~1990년에도 노동 기여도가 1.79%로 9%가 넘는 GDP 증가율 달성에 힘을 보탰는데 이런 효과를 이제는 기대할 수 없다. 통계청에 따르면 생산연령인구(15~64세·중위추계)는 2024년 3632만8000명을 나타낸 뒤 2039년 2955만2000명을 기록, 처음으로 3000만명을 밑돈다. 이후 2049년 2478만1000명으로 2500만명 선이 붕괴한 뒤 2062년에는 1983만4000명으로 2000만명 선마저 무너진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생산연령인구가 1% 줄어들 때마다 GDP는 0.59%씩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재정도 타격… 여성 등 경제활동 높여야

저출산·고령화는 국가재정에도 직접적인 타격을 가한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합계출산율이 2024년 0.7명으로 하락한 후 반등하는 2021년의 통계청 장래인구추계를 가정했을 때 GDP 대비 국가채무 비중은 2022년 49.2%에 머물다 2040년 100.7%로 100%를 넘어선다. 이후 2050년 130.0%, 2060년 161.0%를 기록한 뒤 2070년 192.6%로 200%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됐다. 2022년 1068조8000억원 수준이었던 국가채무가 2070년 7137조6000억원으로, 약 50년 새 6068조원 넘게 증가하는 것이다. 최근 발표된 통계청의 장래인구추계에서 합계출산율 저점이 0.65명으로 더 낮아지고 시점도 2025년으로 늦춰진 만큼 이런 예측은 더욱 악화했을 가능성이 크다. 고창수 조세재정연구원 조세재정전망센터 재정전망팀장은 “고령인구 비중의 증가는 공무원연금, 기초연금 등 고령인구에 밀접하게 연동되는 주요 의무지출 분야의 지출을 증가시킬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재정적자가 발생할 경우 국가채무가 증가하게 되고, 국가채무가 증가하면 누적 채무 규모와 연동된 국채에 대한 이자지출이 따라서 증가하게 된다”고 말했다. 고 팀장은 이어 “정부의 고유 지출 증가에 더해 이자지출 증가분이 합쳐져 재정수지 적자 규모가 점차 확대되는 악순환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만약 국민연금기금 소진 후 예상되는 적자와 건강보험의 재정 적자를 정부가 모두 적자국채 발행을 통해 지불할 경우 미래 국가채무의 규모는 보다 큰 폭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일단 고착화하고 있는 저출산 흐름을 반전시킬 대책을 하루빨리 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30~34세 인구는 올해 361만5767명을 기록한 뒤 2025년 367만87명, 2026년 371만7056명으로 증가세가 유지된다. 하지만 2027년 368만5186명으로 감소한 뒤 2030년 350만2597명으로 처음으로 350만명대에 접어든다. 이후 2032년 327만3431명, 2033년 311만295명으로 줄어든 뒤 2034년에는 297만8111명으로 300만명을 밑돌게 된다. 출산율이 높은 30~34세 인구 규모에 따라 출생아 수가 결정되는 만큼 골든타임이 10년 남짓 남은 셈이다.

아울러 출산율이 반등하더라도 생산연령인구가 증가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만큼 단기적으로 노동력의 투입을 증가시킬 방안 역시 마련돼야 한다는 분석이다. 김희삼 광주과학기술원 기초교육학부 교수는 “상당히 고학력화돼 있는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을 높이고, 고령자들이 디지털 전환에 익숙해지도록 평생학습의 저변을 넓혀 이들이 좀 더 오래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면서 “교육혁신을 통해 인적자본의 질을 향상해 노동과 자본의 실질적인 부가가치를 높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세종=이희경 기자 hjhk3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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