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질 효력 적지만 상징성 커… 보수·진보 소모적 정쟁 도구로 [심층기획-학생인권 조례 폐지 논란]
2010년 처음 시행 이후 학생 권익 증진
최근 교권 침해 원인 중 하나로 꼽혀
교육청, 학생 책임 강화 등 개정 착수에
서울· 충남 등 시·도의회 아예 폐지 추진
‘서이초 사건’ 후 교육부 학생지도 고시
조례 상당수 무력화… 이미 법적 효력 ↓
전문가 “큰 방향 같지만 결국 ‘이념다툼’
실질적 학생 권리 보장 방안 고민해야”
학생인권조례는 머리·복장 자율화, 체벌 금지, 차별받지 않을 권리 등 학생의 권리를 명시한 것으로 2010년 경기도에서 처음 시행됐다. 15일 교육부에 따르면 전국 17개 시·도 중 7곳(서울·경기·인천·충남·광주·전북·제주)에서 제정됐다. 하지만 영향력은 7곳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지난해 서울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으로 교권이 이슈가 되자 교육부는 대책을 내놓으면서 교권침해 원인 중 하나로 학생인권조례를 지목했다. 교육부는 “조례가 학생 인권만 과도하게 보호해 교권 하락에 영향을 미쳤다”며 조례에 학생의 책무성, 교사의 권리 등도 담아 개정할 것을 교육청에 요구했다.
서울시교육청 등은 조례가 없어지면 학생의 인권이 침해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여기에 대해선 반대 의견도 많다. 서울시교육청의 논리대로라면 조례 미시행 지역은 학생 인권침해가 공공연하게 이뤄져야 하지만,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애초에 조례 내용 상당수가 헌법에 이미 보장된 기본권이기도 하다. 지난달 19일 전국 교육감 9명이 학생인권조례 폐지 중단을 촉구하는 자리에서 최교진 세종시교육감은 “조례 폐지는 학생 인권 후퇴이자 민주주의의 퇴보”라고 비판했으나 세종은 조례 자체가 없는 지역이다.
예를 들어 교사가 고시를 근거로 학생에게 휴대전화 제출을 요구할 때, 학생은 조례를 근거로 들며 거부할 수 없다.
폐지를 둘러싼 갈등도 결국 ‘이념 다툼’이란 지적이 나온다. 서울시의회는 학생인권조례 폐지안과 함께 학생과 교사 모두의 권리·책임 등을 담은 ‘학교구성원의 권리와 책임에 관한 조례안’을 발의했고, 서울시교육청은 기존 학생인권조례에 학생의 책무성을 강화한 개정안을 내놨다.
시의회의 새 조례안과 교육청의 개정안은 큰 방향에서는 유사하다. 양측이 합의가 어려운 극단의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교육계 관계자는 “학생인권조례 싸움은 이름 싸움과 마찬가지다. 진보 측은 ‘학생인권’이란 이름은 그대로 두자는 것이고, 보수 측은 일단 이름을 없애자는 것”이라며 “두 조례안에서 하는 이야기는 비슷한데 정치적인 싸움을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덕난 연구관은 “‘폐지’란 말이 자극적이어서 소모적인 논란을 부추긴다. 개정은 양측이 논의테이블에 앉을 수 있지만 폐지를 다투면 비생산적인 정치적 대결이 된다”며 “폐지보다는 교육청과 시·도의회가 원하는 내용을 넣어 개정하는 방식이 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현재 조례가 실질적으로 학생의 권리를 신장하는지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연구관은 “그동안 조례는 관념적인 주장만 했고 학생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행·재정적 지원은 미흡했다. 학생 휴식권이 있다고 선언하는 것과 실제 휴식 공간·시간을 확보해주는 것은 다르다”며 “헌법에 있는 권리를 열거하는 식으로 조례를 유지하는 시대는 지났다. 교육감들은 조례 폐지로 싸울 때가 아니고 실질적으로 학생 권리를 보장하는 방안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세종=김유나 기자 y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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