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호 영웅’이 이젠 ‘산업스파이’...해넘긴 항우연 수사·감사, 현장선 “본보기식 감사”

송복규 기자 2024. 1. 16.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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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우연 기술유출’ 검찰 수사 ·과기정통부 감사 지지부진
누리호 기술이전 문제없나 또 감사
본보기식 감사 지적…“실익 뭔지 이해 안 돼”
작년 5월 25일 누리호 3차 발사 당시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 발사지휘센터(MDC) 모습. 발사 직전의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한국항공우주연구원

지난해 한국은 한국형발사체 누리호(KSLV-Ⅱ) 개발에 성공하며 자력으로 실용위성을 발사할 수 있는 국가 대열에 들어섰다.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물론이고 윤석열 대통령까지 누리호 개발과 발사를 이끈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연구자들을 ‘영웅 대접’하며 추켜 세웠다.

영광은 오래가지 않았다. 누리호 3차 발사에 성공한 뒤 3개월이 조금 지난 작년 9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누리호 개발자들을 대상으로 감사를 착수했다. 정확히는 민간이 우주 개발을 주도하는 ‘뉴스페이스’를 달성하기 위해 누리호 체계종합기업으로 선정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로 이직하려는 누리호 연구자들을 대상으로 한 감사였다.

과기정통부가 문제 삼은 것은 연구자들의 기술유출 정황이다. 이직을 결정한 연구자들이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떼어 낸 흔적과 관련 자료를 집중적으로 열람했다는 의혹이다. 국가정보원 점검에 이어 과기정통부 특정감사, 과기정통부의 수사 의뢰에 따른 검찰 수사로 이어졌다. 수사를 진행하는 대전지검은 연구자들의 자택과 사무실을 압수수색 했다. 누리호 영웅들이 하루아침에 국가 기밀을 유출하려 한 범죄자로 몰렸다.

☞관련기사 국정원 점검 이어 과기부 특감 받는 항우연, 발사체 기술이전이냐 유출이냐 전문가들도 이견

한동안 떠들썩하던 누리호 기술유출 사건은 어떻게 끝났을까. 15일 조선비즈 취재결과, 누리호 연구자들을 대상으로 한 검찰 수사는 압수수색 이후 아무런 진척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10월 31일 진행한 압수수색 이후 두 달이 넘게 지났지만, 수사를 받는 연구자들에 대한 피의자 조사도 시작되지 않았다. 조사를 시작만 하고 진행은 하지 않으면서 피의자의 진만 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사 선상에 오른 연구자들은 검찰 수사의 압박감에 눈에 띌 만큼 살이 빠지고 초췌해졌다. 항우연 관계자는 “압수수색 한 자료들의 양이 몇 달을 봐야 하는 양이 아니다”며 “자료를 어디로 빼돌렸는지, 누구한테 줬는지에 대한 여부만 보면 되는 건지 왜 이렇게 수사를 오래 끄는지 납득이 잘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수사 착수와 압수수색은 엄청 빠르게 진행하더니 잠잠해졌다”고 덧붙였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이례적으로 빠른 압수수색에 비해 피의자 조사가 느리게 진행되는 건 애초에 수사의 목적이 기술유출 범죄보다 연구자들에 대한 압박이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과기정통부의 특정감사도 아직 종료되지 않았다. 작년 9월 4일 시작된 특정감사가 해를 넘겨서까지 진행되고 있다. 누리호 연구진은 발사에 성공하고도 1년 중 3분의 1을 감사를 받으며 보내고 있다. 한 누리호 연구자는 “발사에 실패했으면 이보다 더 심하게 괴롭혔을 테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버틴다”고 말했다.

특정감사가 길어지면서 애초 기술유출을 명목으로 시작된 감사 목적은 잊혀진 지 오래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 이직하려는 연구자를 상대로 시작된 감사가 누리호 개발에 참여한 연구자 전체로 확대됐다. 기술유출이 아니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의 기술이전 계약에 문제가 없었는지 샅샅이 뒤지는 감사로 목적이 아예 달라졌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누리호 기술을 이전받는 과정에서 일정 수준의 정액기술료와 경상기술료를 지급하는 방향으로 협상을 해왔다. 이 과정에서 항우연은 기술가치 평가까지 실시해 이를 바탕으로 기술이전료에 대한 협상을 진행했다. 그런데도 과기정통부는 항우연 연구자들의 문제가 없는지 따져보겠다며 해를 넘겨 감사를 진행 중이다.

김정기 과기정통부 감사관은 조선비즈와의 통화에서 “항우연 기술유출 관련 감사는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고, 결과를 정리할 예정”이라면서도 “(기술이전 관련 감사는) 감사가 진행 중인 상황이라서 언급하기 곤란하다”고 말했다.

우주 발사체 전문가들은 과기정통부의 감사에 대해 납득하기 힘들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한국은 우주 발사체 기술력이 선도국은 물론 북한보다도 낮다. 누리호는 항우연 연구자들이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수작업에 가깝게 만들어낸 성과물이다. 차세대발사체로 가기 위한 중요한 디딤돌이지만, 이를 민간 기업이 많은 돈을 주고 기술이전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보는 전문가는 많지 않다.

국내 한 우주 관련 학과 교수는 “한화가 기술이전료를 주겠다고 한 것도 놀라운 일”이라고 말할 정도다. 그런데 한화로 이직하기로 한 항우연 연구자들이 한화가 이미 기술이전료를 내기로 한 기술을 몰래 유출하려 한다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2022년 6월 21일 누리호 2차 발사 성공 직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연구진이 단체 티셔츠에 성공을 자축하는 메시지를 적고 있는 모습./조선DB

국정원의 점검과 과기정통부의 감사, 검찰의 수사가 연달아 일어나면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항우연 연구자도 있다. 다른 누리호 연구자는 “이제는 한화 이직자뿐 아니라 누리호 개발자들을 가만히 내버려 둘 수 없다는 식으로 감사가 이뤄지고 있다”며 “누리호를 개발하라고 할 땐 언제고 이제는 잘못만 따지고 있으니 답답하다”고 강조했다.

누리호 개발자들이 표적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항우연과 과기정통부를 잘 아는 이들은 과기정통부 관료들의 보여주기식 괴롭힘의 희생양이라고 본다. 시작은 2022년 11월 일어난 항우연 발사체 연구소 조직개편 논란이다. 인공위성 부문 출신인 이상률 항우연 원장이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본부를 발사체 연구소로 바꾸는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이 사건으로 가뜩이나 사이가 좋지 않던 누리호 연구자들과 이상률 원장 사이 관계가 완전히 틀어졌다.

☞관련기사 누리호 개발사업본부 팀제 폐지에 항우연 내부 반발… “수족 자르나”

과기정통부는 중재에 나섰지만, 발사체 연구를 한 조광래 전 원장이 정부를 공개적으로 비판했고, 고정환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본부장은 보직에서 물러나겠다고 한 뒤 두문불출했다. 이후 누리호 3차 발사가 성공하면서 논란은 유야무야 됐지만, 조 전 원장이 한화의 고위 임원으로 이직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과기정통부가 태클을 걸었다는 것이다.

한 항우연 관계자는 “조 전 원장이 한화로 이직하지 않았다면 과기정통부가 이렇게까지 감사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며 “표적 감사식으로 연구자들을 괴롭히니 정신적 고통이 더 큰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우주기술 개발에 집중해도 부족한 시간에 연구자들을 긴 시간 동안 감사해서 나오는 실익이 무엇인지 이해가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항우연의 고질적인 내분과 이전 투구도 문제다. 항우연은 달 궤도선인 다누리와 누리호 성공에도 불구하고 기관운영평가에서는 ‘C등급’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상률 현 원장의 연임이 불가능해지면서 차기 원장을 놓고 위성 연구소와 발사체 연구소의 갈등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는 이야기다. 과기정통부에서 우주 업무를 담당했던 A씨는 “항우연 업무를 담당하면 투서가 많을 때는 수백 개씩 쌓일 때도 있다”며 “사실상 같은 조직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다. 이번에도 누리호 연구진을 상대로 각종 음해를 제기하는 투서가 과기정통부나 감사원, 국회에 셀 수 없이 왔다고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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