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피습 그 후…'테러범' 신상공개 왜 논란되나[감춰진 이름들]上
피의자 '신상공개' 논의 어디까지 왔나…향후 남은 과제들
[편집자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피습 사건 이후 피의자 신상공개 논란이 재점화했다. 특히 경찰의 신상 비공개 결정과 이와 대비되는 <뉴욕타임스>의 보도 이후 정치 테러 피의자의 신상공개를 본격 논의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내 피의자 신상공개 제도는 왜 시작됐고, 지금 어디로 가고 있을까.
(서울=뉴스1) 이기범 임윤지 기자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피습 사건의 피의자 신상공개 논란이 연일 지속되고 있다. 사건 초기 이 대표의 부상 정도를 놓고 벌어진 혼란이 수습되자 신상공개 문제를 놓고 야당과 경찰의 공방이 거세지고 있다. 신상공개 제도의 불분명한 기준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과거 '정치 테러범' 사례도 재조명되고 있다.
◇1998년 대법원 판례로 봉쇄된 신상공개
국내 신상공개제도가 지금처럼 자리 잡은 것은 2010년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이 개정되고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제정되면서다. 2009년 연쇄살인사건 피의자인 강호순의 신상공개를 놓고 여론의 압력이 커지면서 현재와 같은 형태의 제도가 마련됐다.
형이 확정되기 전 피의자의 신상공개는 형법 제126조 피의사실공표죄로 인해 수사기관이 직접 공개하는 경우는 드물었지만, 1980~90년대에는 언론사를 통해 공공연하게 이뤄졌다. 그러나 1998년 신상공개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를 가능하게 한 대법원 판결 이후 사실상 가로막혔다. 피의자 신상정보 보도의 공익성이 인정되지 않는 판례가 나오면서 익명보도 원칙이 자리 잡은 탓이다. 이에 따라 피의자 신상 보도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에 접촉될 가능성도 커졌다.
그러나 강력 범죄가 벌어질 때마다 알 권리를 내세운 여론이 들끓었고, 결국 특정강력범죄 혹은 성폭력범죄 사건에 한 해 일정 요건을 충족할 경우에만 신상공개를 하는 현행 제도가 자리 잡았다. 이후 국민의 알 권리와 무죄 추정을 원칙으로 한 피의자의 권리가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이재명 습격범 위원회 회부 첫 사례
정치인 테러를 저지른 피의자가 신상공개위원회 안건으로 오른 것은 이재명 대표 습격범 사례가 처음이다. 지난 2006년 5월20일 박근혜 전 대통령(당시 한나라당 대표)이 서울 신촌에서 커터칼 공격을 받은 당시에는 현행법 시행 이전이기 때문에 이 같은 위원회가 열리지 않았다.
정치인은 아니지만 2015년 3월5일 당시 마크 리퍼트 주한미국대사가 피습된 사건의 경우 당시 피의자인 김기종씨가 다양한 활동으로 대중에 잘 알려지면서 언론을 통해 실명이 노출됐다.
2022년 3월7일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는 선거 운동 중 정치 유튜버 표모씨에게 둔기로 머리를 가격당했지만, 당시 표씨에게 특수상해 혐의가 적용되면서 신상공개위원회 회부 대상이 되지 않았다.
이 대표 사건은 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특례법상 ①범행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특정중대범죄 사건일 것 ②피의자가 그 죄를 범하였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을 것 ③국민의 알권리 보장, 피의자의 재범 방지 및 범죄예방 등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필요할 것 ④피의자가 미성년자(만 19세 미만)가 아닐 것 등 4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하는데 위원회에서 이같이 판단하지 않았다.
이재명 대표를 공격한 60대 남성 김모씨의 신상을 '비공개'하기로 결정한 데 대해 경찰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지만, 전문가들은 1번 요건 중 '중대한 피해'가 발생했는지에 대해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 민주주의 근간을 위협하는 정치인 테러라는 점과 제1야당 대표를 대상으로 한 살인미수 혐의 사건이라는 점에서 중대한 피해가 있다고 판단할 수 있지만, 살인미수 혐의자를 공개한 전례가 없다는 점에서 정치인 특별대우 논란이 일 수 있다는 얘기다.
더불어민주당 측은 15일 신상공개위원회의 재심의를 요청했다.
◇"불분명한 기준과 위원회 구성이 논란 만들어"
'정치 테러범' 피의자의 신상공개 논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흉악 범죄가 터질 때마다, 여론은 모자이크 뒤편의 이름과 얼굴을 요구한다. 전문가들은 범죄 예방 등 신상공개의 실효성에 의문을 나타내면서도 논란을 일으키는 현행 제도 기준을 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신민영 법무법인 호암 변호사는 "이번 사건이 과시적이고 정치 테러라는 맥락에서 섣부른 신상공개는 주목받길 원하는 가해자에게 서사를 부여할 수 있어 신중해야 한다"면서도 "현재 신상공개 기준이 불분명한 면이 있고, 심의위원회 구성이 좀 더 공정하게 이뤄질 필요는 있다"고 밝혔다.
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실장은 "기존 피의자 신상공개 제도의 경우 경찰청마다 구성이 다른 위원의 자의적 판단, 언론의 관심 등 여러 변수에 따라 갈리는 등 구체적인 공개 기준이 불명확한 부분이 있다"며 "오는 25일부터 시행되는 중대범죄신상공개법은 비교적 구체적 기준을 명시한다는 점에서 다행스러운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윤해성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박사는 "기준이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로 언론이나 정치적 영향을 많이 받는다"며 "미국 같은 경우 표현의 자유와 알 권리를 포괄적으로 인정하고, 피의자가 특정되고 증거가 확실하면 공개를 한다"고 영미권 제도를 일부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해 3월 피의자 신상정보 공개 제도 관련 현안분석 보고서를 통해 "현재 지나치게 추상적 또는 특별한 규정이 없는 사항들에 대해 법령상의 근거와 내용들을 구체적으로 마련하는 등 개선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또 신상공개위원회의 설치 근거 및 구성, 판단 기준과 심의·의결 방법 등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짚었다.
이 같은 내용 중 일부는 오는 25일부터 시행되는 '특정중대범죄 피의자 등 신상정보 공개에 관한 법률'에 따라 개선된다. 해당 법은 중상해와 조식 범죄, 마약 범죄 등을 신상공개 대상으로 추가하고, 재판을 받고 있는 피고인으로 적용이 확대된다. 경찰청 내부 지침에 근거를 둔 신상공개위원회에 대한 법적 근거도 마련된다. 또 머그샷을 피의자 동의 없이 촬영하고 공개할 수 있도록 했다.
Ktiger@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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