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의매수’도 결국 ‘그림의 떡’…말만 앞서는 전세사기 대책

심윤지 기자 2024. 1. 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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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국 “다른 채권자 없는 곳부터”
악성 임대인 사례 대응 불가능
애초 피해자 인정 못 받을 수도
LH 공공매입도 실제 성사 ‘0건’
지난 11일 서울 영등포구 국민의힘 당사 정문 앞에서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 가로막는 국민의힘 규탄 및 한동훈 비대위원장 면담 요청 기자회견’ 참가자가 시위를 하고 있다. 이예슬 기자

정부가 전세사기 피해 주택이 경매에 넘어가기 전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감정가에 ‘협의 매수’해 보증금을 돌려주는 방안을 발표했지만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협의 매수 조건이 까다로워 혜택을 보는 피해자가 제한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지금까지 전세사기 피해를 인정받은 임차인들은 해당 주택이 경매에 부쳐진 뒤 우선매수권을 활용해 주택을 ‘셀프 낙찰’ 받고, 이를 재매각해 보증금을 회수해야 했다. 하지만 최근 빌라 매매시장이 침체기에 들어서면서 재매각을 통해 보증금을 회수하기가 어려워졌다. 빌라 매매가격이 보증금보다 낮으면 매각을 해도 일정액을 손해봐야 한다.

만약 보증금보다 낙찰가가 높아 우선매수권을 행사하기 부담스럽다면 LH에 공공임대주택 매입을 신청하고 그 주택에 계속 거주하는 방법밖에 없다. 이럴 경우 보증금 회수는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반면 협의 매수는 보증금을 일부라도 회수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동안 나온 정책보다 진전된 측면이 있다. 만약 감정가가 2억원인 주택에 전세보증금이 1억2000만원인 피해 주택이 있다면 LH가 주택을 2억원에 매입하고 임차인에게 보증금 전액을 상환해주는 것이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 만약 감정가 1억원, 보증금 1억2000만원으로 감정가가 보증금보다 낮은 경우 임차인은 1억원을 돌려받는다. 임차인은 2000만원을 손해보지만, 1억원은 돌려받게 되는 것이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협의 매수가 가능한지 아닌지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며 “일단 임차인 외에 다른 채권자가 없는, 즉 권리관계가 단순한 주택부터 협의 매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국토부는 경기 화성시 동탄 피해자들부터 우선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채권자가 여럿이면 채권 조정 협의를 거쳐 감정가 아래로 부채 총액이 조정돼야 LH가 매입할 수 있는데, 이와 관련된 구체적 업무 지침은 2월 중 발표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문제는 현실적으로 임차인 외에 다른 채권자가 없는 주택이 드물다는 점이다. 인천 미추홀구·서울 강서구 화곡동 등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대량으로 양산한 악성 임대인들은 애초부터 채무를 상환할 능력이나 의사 없이 주택을 수백·수천 채 매입한 경우가 많다. 대부업체 등 다른 금융기관에서 주택담보 대출을 받았거나, 다른 임차인의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해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등에서 압류가 들어온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책 자체로도 모순이 있다. 특별법상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할 것으로 우려되는 경우’에 해당해야 한다. 협의 매수 대상이 되는 ‘권리관계가 깨끗한 주택’에 사는 피해자들은 애초에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택이 이미 경매에 넘어간 경우에도 협의 매수 신청은 불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일단 경매에 넘어가면 임차인 외 제3의 채권자의 채무 조정이 쉽지 않은 데다, 정부도 ‘경매를 통해 보증금 회수가 가능한 사례’로 볼 가능성이 크다.

실제 인천 미추홀구 피해자들은 LH에 우선매수권을 양도하고 공공매입을 신청하려 해도, 주택 상황이 LH 매입임대주택 매입 기준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절당한 사례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세사기 특별법이 시행된 지 6개월여가 지난 15일 기준 피해자로 인정받은 이들은 1만944명에 달했으나 LH 공공매입이 실제로 성사된 경우는 단 한 건도 없었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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