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영준의 마음PT] 사형수를 통해 본 인간의 ‘웰다잉(well-dying)’
살면서 친한 사람들에게 실망할 때가 있다. 넘어서 배신감・배반감을 느낄 적도 있다. 그럴 땐 마음이 무척 아프다. 과연 인간의 본성이 무엇인가. 선성(善性)과 악성(惡性)중 무엇에 가까울까라는 생각이 든다.
30여년전 그런 의문을 품고 사형수들을 취재했던 적이 있다. 당시만 해도 사형이 집행되던 시절이다.
나를 가장 놀라게 한 이가 1970년대 엽기적인 ‘살인마’ 김대두였다. 55일간 전국을 돌며 어린이 등 아무 연고 없는 사람 15명을 잔인하게 살해해 건국 이래 가장 악질적인 살인범이란 소리를 듣던 그가 이후 180도 달라진 모습으로 살다 저 세상으로 갔기 때문이다.
그때 이미 십수년전에 사형을 당한 김대두이지만 그를 수사했던 수사관·교도관·교화위원들은 모두 진심으로 참회하고 모범적으로 수형생활을 했다고 생생히 기억했다.
김대두는 평범한 소년이었으나 가난한 탓에 초등학교만 마치고 고향을 떠나 외지에서 일하다 우연히 바가지를 씌우는 구멍가게 주인과 시비하다 오히려 폭행범으로 몰려 소년범으로 6개월 옥살이를 한 뒤 이후 교도소를 제집 드나들더니 결국 연쇄 살인범이 되고 말았다.
우리는 누구나 살면서 원치 않는 상황, 즉 병·불행·실패 등 ‘첫번째 화살’을 맞는다. 그러나 이후 ‘두번째 화살’은 꼭 피하라는 말이 있다. 첫 번째는 불가피하지만 그로 인해 스스로 분노하고 괴로워하는 ‘두 번째’는 현명하게 대처해 고통을 최소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대두는 그렇지 못했다. 두 번째, 세 번째 계속 분노와 좌절로 대했고 결과는 사형수가 된 것이다.
그가 자신을 기독교로 인도한 여전도사에게 육필로 쓴 편지들을 보면 하루하루 다가오는 죽음을 생각하면서 신앙에 귀의하고 마침내 참회와 마음의 평안을 얻어가는 과정이 진솔하게 기록돼 있었다.
나는 문학책을 통해 보던 인간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선성과 악성의 끊임없는 충돌을 취재를 통해 생생하게 살펴 볼 수 있었으며, 그 복잡한 인간 본성에 대한 희망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꼈다. 어쨌든 김대두는 자신의 ‘마지막 화살’에는 잘 대처한 셈이다.
# 이후 사형제도가 없어진 지금은 어떤가. 유영철, 강호순 등 악명이 높은 사형수들은 교도관들도 건드리지 못할 정도로 위세를 떨친다고 한다.
과거 살인 사건 국선변호를 자주 했던 변호사는 “어떤 행동을 해도 죽지 않는다는 현실에서 그들의 악성은 제어되지 않고 여전히 발현되고 있다”고 전했다.
몇 년전 문화예술가모임인 광화문 문화포럼에서 이런 내용을 강연했더니 영화배우 고 신성일씨가 “그렇다면 사형제도를 부활해야 되느냐”고 물었다.
나는 잘못된 판결로 억울하게 죽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순 없지만, 적어도 죽음을 직면하게 되면 사람들은 보통 겸허해지고 반성하게 된다고 말했다.
나도 젊은 시절에는 내 인생의 마지막을 상상하는 것조차 싫어했다. 하지만 인생의 종반전을 향해 달리는 지금에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려고 한다. 마지막 순간에 대한 생각이 역설적으로 지금 남아있는 이 짧은 생에서 진정한 삶의 가치가 무엇인가를 사유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후회·자책·미련·두려움으로 가득 찬 불행한 순간으로 다가올까, 아니면 보람·만족·감사·담담함의 행복한 순간이 될까.
21세기 들어 한동안 지금 잘살자는 ‘웰빙(well-being)’ 열풍이 불다가 백세 장수시대를 맞은 요즘엔 인생을 잘 마무리하자는 ‘웰다잉(well-dying)’이 화두가 되고 있다.
어떡하면 행복하고 담담하게 죽을 수 있을까. 그런 인생의 마지막을 맞으려면 바로 지금 내가 제대로 잘 살고 있는가에 대한 숙고로 귀착된다. 나의 잠재된 악성을 잘 제어하고 선성이 발현되고 있느냐는 문제다. 결국 웰다잉이란 지금 ‘진정한’ 웰빙의 실천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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