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아이오와의 저주/황비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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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서부에 자리잡은 아이오와주의 명칭은 아메리카 원주민인 아이오와족에서 따왔다고 한다.
원주민들이 살던 땅이었던 아이오와는 1673년 프랑스의 루이 졸리에와 자크 마퀘트가 탐험을 시작하면서 최초로 발견됐다.
이후 아이오와는 미시시피강 서부의 루이지애나주 일부로 프랑스와 스페인의 지배를 받다가 1803년 미국 정부가 루이지애나 영토를 구매해 미국의 일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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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서부에 자리잡은 아이오와주의 명칭은 아메리카 원주민인 아이오와족에서 따왔다고 한다. 포도나무를 의미하는 아이오와(Ayuhwa)라는 명칭에서 비롯됐다는 얘기도 있고, 이들의 언어로 ‘바로 여기’, ‘아름다운 땅’에서 나왔다는 얘기도 있다.
원주민들이 살던 땅이었던 아이오와는 1673년 프랑스의 루이 졸리에와 자크 마퀘트가 탐험을 시작하면서 최초로 발견됐다. 이후 아이오와는 미시시피강 서부의 루이지애나주 일부로 프랑스와 스페인의 지배를 받다가 1803년 미국 정부가 루이지애나 영토를 구매해 미국의 일부가 된다. 점차 백인들이 몰려들고 원주민들이 이주를 강요당하면서 1838년 아이오와 준주가 탄생했고, 1846년 29번째 주로 승격됐다. 첫 주도는 아이오아시티였지만 1857년 주도를 디모인으로 옮겼다.
아이오와주는 1972년 이래 미국 대선 예비경선이 처음 열리는 곳으로 반 세기 동안 미 대선의 풍향계 역할을 해 왔다. 아이오와주에서 첫 대선 예비경선이 열린 배경에는 1968년 민주당 전당대회가 있다. 베트남전쟁이 한창이던 당시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 지지층은 전쟁에 반대하는 후보를 원했다. 하지만 당 지도부는 반전을 지지하지 않고 지지율도 낮은 휴버트 험프리를 대선 후보로 지명했고, 결국 공화당 리처드 닉슨 후보에게 패했다. 그 결과 지도부가 아닌 당원이 직접 후보를 뽑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1972년 아이오와주에서 첫 코커스(당원 대회)가 열렸다. 지난해 2월 민주당은 대선 예비선거(프라이머리) 일정을 아이오와에서 사우스캐롤라이나로 변경했지만, 공화당은 여전히 아이오와 코커스로 경선 일정을 시작한다.
하지만 아이오와 코커스의 승자가 최종 대선에서 승리하는 사례는 드물었다. 아이오와 코커스가 첫 경선으로 제도화된 1972년 이래 민주당에선 13차례 대선 경선에서 1위 후보가 대선후보로 직행한 이가 8명이었다. 지미 카터(1976년)와 버락 오바마(2008년) 2명이 최종 승리했다. 공화당에서는 9차례 경선에서 1위 후보가 대선후보로 직행한 이가 5명이었고, 그중 조지 W 부시(2000년) 1명이 최종 당선됐다. 도널드 트럼프가 아이오와 코커스 승자로 대선승리까지 거머쥘지 궁금해진다.
황비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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