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격변 파고든 김정은… ‘전쟁’ 카드로 3가지 노림수
북한이 14일 신형 고체 연료 추진체를 사용한 극초음속 중장거리탄도미사일(IRBM) 시험 발사에 성공했다고 15일 주장했다. 음속의 5배 이상 속도로 변칙 기동까지 가능한 극초음속 미사일은 북 주장이 맞다면 동북아 안보를 흔드는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 북한은 이날 남북 관계를 “가장 적대적인 두 국가”라면서 “자그마한 하나의 불꽃도 거대한 물리적 충돌의 기폭제로 작용할 수 있다”고도 했다. 잇단 군사 도발과 대남 관계 단절로 위협 수위를 높이면서 북한 김정은이 언급한 “대사변”이 허세가 아니라는 메시지를 잇따라 던지고 있는 것이다.
두 개의 전쟁(우크라이나, 팔레스타인)에 발이 묶여 있는 미국, 반중(反中) 진영이 승리한 대만 총통 선거 후 긴장이 고조된 양안 관계, 중동발 글로벌 공급망 혼란 등 요동치는 국제 정세 속에 새로운 기회를 찾으려는 김정은의 ‘도박’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할 경우에 대비해 남한과의 단절을 통한 미·북 직접 거래를 노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전날 도발은 대만 총통 선거(13일) 직후 이뤄졌다. IRBM의 사거리는 3000∼5500㎞로, 평양에서 약 1400㎞ 떨어진 일본 오키나와, 약 3500㎞ 떨어진 괌 등이 타격권에 들어간다. 현재 요격망으론 격추가 어렵고, 미국의 항모 전단도 위협할 수 있다. 양안 긴장 속에 미국으로선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북한은 이를 통해 중국의 추가 지원을 이끌어 낼 수도 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이와 관련, “(극초음속 미사일) 시험 발사는 지역의 정세와는 전혀 무관하게 진행됐다”고 했는데, 이는 처음부터 지역 정세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는 방증이다.
최선희 외무상을 단장으로 하는 북한 정부 대표단이 14일 러시아를 방문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된다. 러시아는 북한에서 무기를 수입하는 대가로 최신 무기 기술 등을 전수해 주고 있는데, 북한이 때맞춰 무기 개발 역량을 잇따라 과시하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 크렘린궁은 최선희 외무상이 모스크바를 방문한 15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방북이 조만간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김정은은 지난해 9월 러시아를 방문해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은 “북한과 모든 차원의 대화를 지속할 것”이라고 했다. 오는 17일까지 예정된 최선희의 러시아 방문에서 북한은 노동자 해외 송출 등을 포함해 새로운 지원 패키지를 얻어낼 가능성이 높다. 중국에 이어 러시아가 대북 제재 ‘구멍’ 역할을 하며 대북 제재 무력화를 가속화하는 것이다.
김정은은 남쪽을 향해선 ‘적대적 교전국 관계’를 강조하며 ‘대남 정책의 근본적 방향 전환’을 강조하고 있다. 북한이 한국을 명시적으로 ‘핵 공격’ 대상으로 못 박아, 전쟁 위협이 허세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미국 대선 레이스에서 앞서 나가면서 북한으로서는 다시 한번 싱가포르, 하노이에서 있었던 담판을 통해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고 대북 제재 해제를 얻어내려 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부인했지만, 미국의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북핵 폐기가 아닌 동결의 대가로 대북 제재 완화 등을 제공하는 대북 접근법을 추진한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최근 미국 미들베리국제연구소의 로버트 칼린 연구원과 지그프리드 해커 교수는 지난 11일(현지 시각) 북한 전문 매체 38노스에 기고한 글에서 “한반도 상황이 1950년 6월 초반 이후 그 어느 때보다 위험하다”며 “김정은이 1950년에 할아버지가 그랬듯이 진행하겠다는 전략적 결정을 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전쟁 위협을 통해 핵보유국 인정 등을 노리는 북한의 전술이 미국에서도 어느 정도 먹히고 있는 것이다.
김갑식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보고서에서 “한·미·일 대 북·중·러 대립 구도 속에서 대북 제재가 무력화되고 미국 영향력이 쇠퇴하고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며 “올해 4월 한국 총선, 11월 미국 대선 등 대형 정치 이벤트를 앞두고 한반도 문제의 주도권을 선점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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