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먼지 속 SUV… 54도 사막서 12가지 극한 시험 뚫는다
美 모하비 주행 시험장 르포
지난 11일(현지 시각) 미국 서부 도시 LA에서 차로 약 2시간 떨어진 캘리포니아 시티에 있는 현대차·기아 주행 시험장. 모하비 사막 한복판에 자리 잡아 ‘모하비 주행 시험장’이라 불리는 곳이다. 여의도(290만㎡) 6배에 달하는 1770만㎡(약 535만평) 규모는 한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넓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지평선이 끝없이 이어졌고 사막엔 검은 위장막을 씌운 출시 전 차량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테스트 주행하는 모습이 간간이 보였다. 이곳의 테스트용 도로 길이만 61km에 달한다.
현대차·기아는 작년 미국에서 165만대를 판매해, 미국 진출 이후 사상 최고 판매량을 기록했다. 미국 ‘빅3’ 중 하나인 스텔란티스를 제치고 판매 순위 3위가 됐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미국 시장에서 고성장할 수 있었던 건 이곳(모하비 주행 시험장)에서 철저한 성능 시험을 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이 미국에 내놓는 모든 제품은 이곳을 반드시 거친다는 것이다.
◇힘센 SUV 만드는 비결
모하비 주행 시험장은 해발고도가 강원도 대관령 언저리와 비슷한 약 800m에 달한다. 여름에는 평균기온이 섭씨 39도이고 지면 온도는 54도 안팎까지 올라간다. 이런 극한 상황에서 연 300대 안팎의 차량이 고속 주행, 오르막길이나 오프로드(비포장된 험로) 주행, 차량 하부 충격 테스트 등 12가지 혹독한 테스트를 받는다. 미국에서 출시하는 차들은 모하비 시험장에서 받는 테스트를 포함해 미국 각지를 돌며 1대당 평균 12만5000마일(약 20만km) 시험 주행을 한다.
현대차그룹은 최근 몇 년 사이 오프로드 테스트용 도로 비율을 전체의 절반(약 28km)으로 늘리는 등 오프로드 테스트에 특히 비중을 두고 있다고 했다. 어떤 환경에서도 대응할 수 있는 강력한 차를 만들기 위해서다. 2005년 당시만 해도 오프로드 테스트 차로는 1개뿐이었지만 지금은 종류가 7개까지 늘었다. 앞으로 시험 차로를 더 늘리기 위한 공사도 진행 중이다.
미국은 땅덩이가 넓어서 운전자가 일상에서 오프로드를 마주칠 기회가 많고, 야외 활동에도 적극적이다 보니 SUV·트럭이 큰 인기를 끌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미국에서만 판매하는 기아의 SUV 텔루라이드로 오프로드 시험장 일부를 달려봤다. 경사가 진 U자형 코너, 크고 작은 모래나 자갈길, 성인 무릎 깊이 정도 되는 구덩이가 팬 길 등이 연이어 나왔다. 구덩이가 몰린 길을 시속 20km 아래로 지나가 보니, 울퉁불퉁한 돌이 가득한 험한 산길을 달리는 느낌이었다. 바퀴 한쪽이 계속 빠지며 차체가 한쪽으로 쏠렸지만 차가 멈추지 않고 금방 빠져나왔다.
◇전기차 테스트 중요성도 커져
최근에는 전기차 테스트의 중요성도 높아졌다. 배터리가 들어가 전기차는 같은 급의 내연기관 차량보다 300~400kg 안팎 무거워, 내연차보다 더욱 까다롭게 시험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배터리가 차량 바닥에 배치되기 때문에 오프로드 등에서 뾰족한 돌 등에 바닥이 상해 배터리에 지장이 가지 않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또 여름의 모하비 사막 같은 환경에서 전기차 배터리와 모터에서 발생하는 열이 제대로 관리되는지도 핵심이다. 현대차·기아는 특히 전기차는 45도 이상의 기온과 1㎡당 1000W 이상의 일사량을 보이는 혹독한 날만 골라 고속 충전과 주행을 수없이 반복하는 테스트를 한다.
현대차·기아는 이 시험장을 만들기 위해 2005년 당시 약 6000만달러(약 793억원)를 투자했다. 그런데 이 중 330만달러(약 44억원)를 당시 이곳에 살던 멸종 위기 동물인 사막거북 27마리 이사 비용으로 썼다. 별도의 땅을 사서 울타리를 쳐 외부의 침입을 막고, 3년 동안 거북이들이 적응할 수 있게 돌보는 데 수십억 원을 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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