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력잃어 올림픽 꿈 포기한 중학생 소녀, IBM 0.03% 최고과학자로
올림픽 출전을 꿈꾸던 소녀는 불의의 사고로 시력을 잃었다. 체육학과 대신 영문과에 진학한 소녀는 당시 태동하던 컴퓨터공학 분야에 뛰어들었다. 점자와 구형 기기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배우는 노력 끝에 IBM에 입사한 그는 문자·음성 전환 기술을 개발해 시각 장애인은 물론 문맹인, 고령층 등 세계 수십억명의 사람에게 인터넷의 바다를 서핑할 수 있는 자유를 줬다. 아사카와 지에코(浅川智恵子·1958~) 박사는 1911년 설립된 IBM 역사에서 극소수에 불과한 최고 과학자 ‘IBM 펠로’로 존경받으며 지금도 장애를 극복하는 기술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세계 여성공학 명예의 전당, 미국 공학한림원 회원, 미국 예술과학 아카데미 회원 등 공학자로 이룰 수 있는 대부분의 영광을 얻은 아사카와의 신조는 “기술은 사람을 이롭게 한다”는 것이다.
◇수영장 벽에 부딪혀 실명
일본 오사카 도요타카시에서 태어난 아사카와는 운동신경이 뛰어난 소녀였다. 올림픽 출전과 체육대학 진학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클럽 활동에 열을 올렸다. 초등학교 5학년 여름 수영 수업에서 얼굴을 수영장 벽에 세게 부딪혔는데 파랗게 부은 눈밑의 멍이 좀처럼 없어지지 않았다. 병원에서 별문제가 없다고 했지만 병원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는 사이 완전히 앞을 볼 수 없게 됐다. 중학교 2학년 때였다. 당시 일본에서 시각 장애인은 침술이나 마사지를 배우는 것을 당연시했다. 아사카와는 “다른 사람이 내 직업을 결정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면서 “시각 장애인은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직업을 갖겠다고 결심했다”고 했다. 오테몬가쿠인대 영문과에 진학한 것도 외국어를 알면 선택할 진로의 폭이 넓어질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1982년 대학을 졸업한 뒤 아사카와는 시각 장애인을 위한 컴퓨터 강좌에 등록했다.
컴퓨터를 배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눈 대신 옵타콘(optacon·영상 촉각 변환 장치)이라는 장치가 사용됐다. 1971년 스탠퍼드대 교수 존 린빌이 시각 장애인 딸을 위해 개발한 옵타콘은 글자를 인식하는 카메라와 촉각으로 표현하는 촉지판(독해부)으로 구성된다. 촉지판에 들어 있는 수많은 가느다란 핀이 진동하면서 문자를 재현하고, 이를 손가락 끝으로 읽는 식이다. 오랜 훈련이 필요했다. 아사카와는 “고집과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 끝까지 배우는 것을 포기하지 않도록 만들었다”고 했다. 도쿄 IBM 연구소에 아사카와가 입사했을 때는 컴퓨터 혁명이 한창이었다. 개인용 컴퓨터, PC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아사카와는 시각 장애인이 이런 거대한 조류에서 소외되지 않기를 바랐다. 아사카와는 “PC와 인터넷 세상에서는 장애인도 스스로 모든 것을 할 수 있기를 원했다”고 했다. IBM에서의 첫 프로젝트로 디지털 점자를 편집할 수 있는 워드 프로세서를 만들었고, 점자 도서관에서 문서와 책을 업로드하고 공유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디지털 기기와 모바일 혁명에도 기여
1990년대 중반 IBM을 비롯한 몇몇 기업에서 인터넷을 검색할 수 있는 브라우저를 상용화하기 시작했다. 아사카와는 넷스케이프 인터넷 브라우저에 웹을 탐색하고 문자로 된 내용을 음성으로 들려주는 ‘문자·음성 변환 기술’을 장착했다. 동영상에 붙어 있는 자막만 구분해 읽어주거나, 음성 송출에 방해되는 콘텐츠 재생을 끄는 등 초기 인공지능(AI) 기능도 적용했다. IBM은 ‘IBM 홈페이지 리더’라는 이름으로 세계 컴퓨터 매장에서 이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시각 장애인뿐만 아니라 작은 글자에 어려움을 겪는 고령층, 글자 자체를 읽지 못하는 문맹인도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린 순간이었다. 아사카와의 기술은 웹사이트 디자인에도 획기적인 영향을 미쳤다. 인터넷 사이트들은 화려한 디자인과 많은 콘텐츠를 배치하는 대신 웹사이트의 모든 기능을 단순한 동작으로 체험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진화하기 시작했다. 웹디자이너가 시각 장애인처럼 체험하면서 보다 정교한 웹사이트를 제작하도록 하는 기술도 아사카와가 만들었다.
아사카와의 웹 접근성 기술은 디지털 기기와 모바일 혁명의 발전도 이끌었다. 내비게이션의 음성 안내, 웹사이트나 모바일 앱의 음성 스트리밍, 책을 읽어주는 AI 비서 등이 대표적이다. 시각 장애인을 위해 개발한 기술이 모든 사람의 편의성 증진이라는 기대 이상의 성과로 이어진 것이다.
◇주경야독으로 IBM 최고의 위치에 올라
아사카와는 두 딸을 키우며 밤 9시부터 자정까지 공부하고 주말에는 밀린 회사일을 하면서 도쿄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는 등 새로운 지식을 쌓는 것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아사카와는 2009년 IBM 과학자의 최고직이자 영예로 꼽히는 IBM 펠로(IBM Fellow)에 선정됐다. 30만 IBM 직원 가운데 89명만이 가진 직함이다. IBM의 전성기를 일궈낸 토머스 왓슨은 헨리크 입센의 희곡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야생 오리(Wild Duck)’를 육성하겠다”며 1963년 IBM 펠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길들여지지 않는 자유로움을 기반으로 시대를 뛰어넘는 혁신을 이끌겠다는 취지였다. 아사카와의 웹 접근성 기술은 IBM 펠로 60년 역사를 대표하는 성과로 꼽힌다.
막대한 연봉과 기술에 대한 로열티 등으로 풍족해진 아사카와는 연구와 활동의 폭을 한층 넓혔다. 2014년에는 미국 피츠버그의 카네기멜런대 IBM 교수로 부임해 블루투스, 센서와 AI를 결합한 기술로 시각 장애인이 복잡한 공간을 혼자서 탐색하고 이동할 수 있도록 돕는 앱 ‘내브코그(NavCog)’를 만들어 2016년 출시했다. 앞에 어떤 상황이 펼쳐지는지, 다음 진로 변경까지의 거리를 얼마나 되는지, 양쪽에 어떤 상점이 있는지 등을 실시간 음성 안내로 제공해 준다. 지나가는 사람이 아는 사람일 경우에는 “00가 다가오고 있습니다”라는 안내까지 해주며 인사를 나눌 수 있게 하는 기술도 있다. 아사카와는 “디지털 세상을 탐색하던 기술을 물리적인 세상으로 가져온 결과물”이라고 했다.
“장애인 혼자 다닐 수 있는 세상 꿈꿔” 최근엔 AI 여행가방 개발에 몰두
캐리어에 달린 AI가 내비 역할… 장애물 피해 목적지까지 안내
아사카와 지에코 박사는 ‘모든 사람을 위한 인터넷’이라는 모토를 가진 웹 접근성(Web Accessibility) 분야의 개척자로 불린다. 접근성은 원래 장애 같은 신체적 특징이나 지역, 나이, 지식 수준, 기술, 경험 같은 제한 상황과 상관없이 최대한 많은 사용자가 불편하지 않게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야 한다는 개념이다. 과거에는 교통수단 이용 같은 오프라인 영역에 한정됐지만, 인터넷 확산으로 웹 접근성이라는 영역이 새로 등장했다.
아사카와는 현재 인터넷상이 아닌 현실 세계에서 장애인에게 자유를 줄 수 있는 스마트 여행 가방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미쓰비시 자동차, 알프스 전기, 오므론 등이 함께 연구에 참여한 이 가방은 사용자가 손잡이를 잡고 가고 싶은 곳을 말하면 데려다 주는 AI 기기이다. 가방이 스스로 최적의 경로를 선택한 뒤 사용자의 보행 속도에 맞춰 사람과 장애물을 피하며 목적지까지 진동과 음성으로 안내한다. 그는 제작 발표회에서 “AI 가방과 함께 혼자 여행하면서 세계의 친구를 만나고 싶다”고 했다.
아사카와는 2021년부터는 도쿄 일본과학미래관의 관장을 맡아 자신의 신념대로 이 전시관 역시 누구나 차별 없이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바꿔가고 있다. 그가 접근성에 이토록 집착하는 이유는 뭘까. “접근성은 많은 혁신을 이뤄냈습니다. 그레이엄 벨은 어머니와 부인의 청각 장애를 해결할 수 있는 신호 처리 기술을 연구하다 전화를 개발했고, 음성 합성과 음성 인식은 시청각 장애를 가진 사람을 지원하기 위해 처음 만들어졌습니다. 심지어 자율주행차 아이디어도 시각 장애인의 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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