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 노동자 최저임금 보장이 오히려 목줄 죈다
12일 미국 뉴욕 맨해튼 1번가 유엔 본부 정문 앞 교차로 난간에 흰색 페인트로 칠한 자전거 한 대가 쇠사슬로 묶여 있었다. 자전거에는 이미 시들어 낙엽 부스러기처럼 돼 버린 꽃다발도 붙어있다. 지난해 여름 멕시코 이민자 출신의 한 배달 노동자가 자전거를 몰다 이곳에서 넘어져 세상을 떠났다. 그는 헬멧을 쓰지 않았고 연석에 머리를 부딪혔다. 그러자 그의 동료들이 그를 기억하자며 이곳에 자전거를 묶었다. 자전거로 배달하는 스페인어권 노동자들이 만든 홈페이지에 따르면 2020년 말 이후 40여 명의 배달원이 사고로 숨졌다.
지금도 맨해튼 거리를 지나다 보면 자전거 배달 노동자가 도로에 수도 없이 달리고 있다. 이들은 코로나 팬데믹 때 급격히 증가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들이 대부분 멕시코나 과테말라 등에서 왔으며 현재 뉴욕시에 약 6만5000명이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팬데믹이 끝나고 배달 노동자의 수익은 예전만 못하게 됐다. 이들의 생계가 쉽지 않다는 말이 나왔다. 그러자 미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성향을 가진 뉴욕시는 이들을 돕겠다며 나섰다. 미국 최초로 배달 노동자들이 최저임금을 받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원래 배달 노동자는 최저임금 없이 배달 건수당 지급되는 배달비와 소비자의 팁을 플랫폼 업체와 나눠 가졌다. 이 제도를 통해 이들이 챙긴 배달 수입은 팁을 포함해 시간당 11달러(약 1만4000원) 정도였다. 하지만 뉴욕시는 “배달 노동자도 최저임금(시간당 16달러) 이상 받아야 한다”며 시(市) 조례로 이 직종에 대해 적용되는 올해 최저임금을 17.96달러로 정했다. 에릭 애덤스 뉴욕시장(민주당)은 “눈 속에서 당신에게 피자를 가져다주는 사람, 비를 맞으며 당신이 좋아하는 태국 음식을 배달하는 사람과 그 가족에게 최저임금은 생계를 꾸릴 수 있도록 보장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로 인해 경영이 어려워진 배달 업체들이 요금 체계를 일부 바꾸면서 변수가 생겼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배달 업체 우버이츠는 소비자에게 배달 건당 2달러의 추가 요금을 부과하게 했고, 도어대시도 몇 달 안에 고객 수수료를 인상할 방침을 밝혔다.
일부 업체는 대신 고객이 앱을 통해 선택해서 부담하는 ‘권장 팁’ 체계를 바꾸는 등의 방식으로 고객 부담을 줄이겠다고 밝혔지만, 팁이 줄면 노동자의 수입도 줄어든다. 블룸버그는 “원래 팁이 배달 노동자 수입의 절반이었는데 지금은 5~15% 정도에 그친다”고 했다.
배달 업계에서는 “배달비가 인상되면서 고객이 떠나고 식당들이 배달 음식 공급을 줄이면 배달 노동자 입장에서 ‘일감’이 줄어들어 모두가 피해를 보게 된다”고 하고 있다. 이번 최저임금 적용의 부작용은 아직 본격화하지 않았다는 전망이 많다. 반면 미국 내 진보층을 중심으로 “배달 노동자도 최저임금에서 예외일 수 없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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