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마을 흩어지는 공동체] 4. 망대마을 주민 좌담회

오세현 2024. 1. 16.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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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상금 적어 전세도 못 구해…살고 싶어도 멈춰버린 마을”
전쟁 이후 약사동 산골마을 터 잡아
피난민들 똘똘 뭉쳐 넉넉한 인심
아파트 건립 주민의견 엇갈려 시끌
팍팍한 삶, 추가 부담금도 ‘막막’
조합원 분양 등 보상계획 불투명
삶의 터전 떠나 객지생활 불안
방지턱·가로등 요청 감감무소식
철거 앞둬 집 수리도 못 해 ‘분통’
올 사람 없고 떠나는 사람만 있어
13년째 지지부진 조속히 해결해야

재개발 계획은 마을을 갈라놨다. 마을은 아파트 건립을 찬성하는 쪽과 그렇지 않은 쪽으로 나뉘었다. 재개발 계획이 나온 지 10년이 흐르면서 마을은 아예 멈춰섰다. 보상 계획은 어떻게 된다는건지, 주민들이 아파트에 들어갈 수는 있는건지, 보상금액이 적절하지 않으면 어디로 떠나 살아야 할 지 모든 것들이 다 불투명하다. 무엇보다 이 곳을 떠나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답답하다. 망대마을 주민들이 반종설(80)씨 집에 모였다. 삶의 터전을 떠나야 한다는 서운함, 앞으로 무엇이 어떻게 될 지 모른다는 불안함이 터져나왔다.

◇참석자=손인숙(80·36년 거주)·심장흠(71·20년 거주)·박기수(66·30년 거주)·반종설(80·70년 거주)
 

▲ 지난 12일 춘천 약사명동에 위치한 반종설씨 집에 주민들이 모였다. 사진 왼쪽부터 손인숙·심장흠·박기수·반종설씨. 길게는 70년 짧게는 20년 이 마을에 산 주민들은 멈춰버린 마을을 생각하면 속상하기만 하다. 아파트가 들어서면 지금처럼 한 자리에 모일 기회마저 없어질 것 같다고 했다. 유희태

-망대 마을은 어떤 곳이었나

△손인숙=“그 옛날에는 산골마을이었다. 약사동이라는 이름 자체가 일제시대 전부터 약재상들이 많아서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6·25 전쟁이 끝나고 난 이후에는 망대가 각종 중요한 사항들을 알려줬다. 비가 많이 온다거나 눈이 많이 온다 그러면 나팔로 조심하라고 알려준다. 지금은 휴대폰으로 안내문자가 오는데 망대가 그 역할을 대신 했다고 보면 된다. 망대 사이렌을 떼어 갈 때도 주민들한테 말도 제대로 안했다. 말은 하고 가져가야지.”

△반종설=“인심은 좋을 수밖에 없다. 원래 여기서 태어난 사람들은 드물다. 피난 생활 하다가 여기로 들어와 살게 된 사람들이 대다수고 다 처음보는 사람들이니 인심은 참 좋았다. 땅이 있으면 집을 짓는 방식이다 보니 아직도 지적이 정확하지 않다.”


-재개발 얘기가 들리면서부터 마을이 시끄러웠을 것 같다.

△손인숙=“아파트를 짓겠다고 하니 그때부터 싸움이 났다. 아파트를 짓겠다는 사람이 있고 또 반대하는 사람이 생겼다. 집을 번듯하게 지어놓은 경우 솔직히 내 집이 새 건데 아파트가 반갑지 않다. 지금 저렇게 지으려면 10억원을 들여도 못 짓는다. 공시가격으로 땅값을 쳐 준다는데 반기는 사람이 없다.”

△심장흠=“우리 지역도 그렇고 개발이 되기는 해야 한다. 하지만 아파트를 새로 지어서 분양을 한다고 하더라도 조합원 중 얼마나 아파트에 들어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파트 안 들어갈테니 정산해달라고 하면 그거 받아가지고 어디 전세도 못 구한다. 요즘 시세에.”

△손인숙=“그러니 난감하다. 개발을 해서 좋긴 하겠지만 아파트 들어가 살 입장도 안된다. 기어 들어갔다가 기어 나와도 내 집이니까 마음 편하게 사는데 그거(보상금) 들고 어디 가서 남의 집 전세 자리도 못 구한다. 그러니 답답하다.”

△반종설=“요즘 아파트 분양가는 평(3.3㎡) 당 1600만원이 넘어간다고 한다. 그런데 보상가는 평 당 200만원 얘기가 나온다. 100% 올려준다 한들 300만원~400만원 밖에 안된다. 100% 올려주지도 않겠지만, 시세하고 차이가 너무 난다.”

△심장흠=“추가 부담금이 생긴다고 하면 갚을 능력이 없다. 지금도 밥 먹고 살기 급급한데 아파트 새로 지어서 들어가면 좋지만, 추가 부담금을 어떻게 낼 지 모르겠다. 늙어서 사방이 다 아픈데 병원 갈 돈도 없는 주민들도 있다. 그러니까 ‘이 꼴 저 꼴 안보고 차라리 이대로 살다가 죽는 게 편하지 않겠냐’ 생각하는 주민들도 있다.”
 

▲ 약사명동 주민 심장흠씨가 망대 이야기가 실린 강원도민일보 지면을 보고 있다. 유희태

 

-아파트 건립 얘기가 나온지 10년이 넘었다.

△손인숙=“그러니 답답하다. 우리동네 사람들은 지금 아파트를 짓지도 못하고 안 짓지도 못한다. 이렇게 어중간하게 돼 있는데 춘천시에서 좀 도와줘야 한다. 그런데 구경만 하고 있는 참이다. 누가 우리 동네에 아파트를 지어달라고 그랬나. 이광준 시장 때부터 나서서 아파트 짓겠다고 하더니 아직도 진전이 없다. 최동용·이재수 전 시장도 잘 한 거 하나도 없다.”

△심장흠=“아파트를 무조건 반대하는 게 아니다. 보상가가 적정하면 아파트 짓는 거 동의할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이건 땅값이 아니라 똥값이다. 그러니까 반대를 하게 되고 재개발이 안되는 거다.”

△손인숙=“이제 집수리를 하고 살았으면 좋겠는데 집수리 한들 그냥 날아가겠고 우리를 이렇게 어중간하게 붙들고 있는건 시청이다. 아파트 짓는다고 시작한 지가 12년이다. 이제 13년 돼 간다. 그렇게 되도록 여태 삽 한 번 못 떠보고 있다.”

△반종설=“사실은 빨리 해결을 해줘야 한다.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났다. 우리 동네는 땅값이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못하고 그냥 이러고 있다.”

△박기수=“나무가 크고 쑥대밭인데 춘천시에서 나몰라라 한다. 가만히 있으면 집이라도 짓고 살텐데.”

△심장흠=“농담으로 말 한 게 그대로 돼 가는 것 같다. 내가 재개발한다고 해 봐야 이 동네 노인네 반은 죽어야 재개발 된다고 했는데 정말 끝장 나는가봐.”


-요즘 동네 분위기가 궁금하다.

△손인숙=“우리 동네는 딱 반이다. 아파트 짓자는 사람, 안 하고 싶다는 사람 반반이다. 아파트를 아예 안 하겠다는 게 아니고 적당한 보상만 주면 할텐데 보상가가 적절하지 않은 것 같으니 집수리 해서 사는 게 속 편할 것 같다는 사람도 있다.”

△박기수=“어차피 헐릴 집이라고 해서 수리도 못한다. 이렇게 진전이 없으면 시에서도 나와보고 해야 하는데 누구 하나 관심을 갖는 사람이 없다.”

△심장흠=“시청에 들어가서 차가 많이 다니는데 어린이들과 노인들이 있고 하니까 방지턱 3개만 좀 해달라고 했는데 그것도 확인해보겠다고 하더니 감감무소식이다. 어차피 다 헐릴 곳에 투자를 뭐하러 하느냐는 속내인 것 같다. 정비구역으로 언젠가는 때려 부숴야 하니까 시에서 돈을 안 쓰려고 한다. 하다못해 가로등을 해달라고 해도 제대로 이뤄지지도 않는다. 약사명동 주민들은 어디서 주워 온 사람 같다.”


-주민들과 헤어져야 한다는 점도 아쉬울텐데.

△심장흠=“물론이다. 아파트 분양 받는다고 한들 우리끼리 한 동으로 몰아서 사는 것도 아니고 아파트만 지었다 하면 동네 사람들 하고 다 헤어진다. 그런게 제일 아쉽다. 언제 죽을지 몰라도 같이 얼굴보고 아침에 만나면 서로 인사하고 어울렸는데 여기 떠나면 객지 생활이다. 사람이라는건 떨어져 살다보면 자연적으로 멀어지게 돼 있다.”

△손인숙=“내가 1988년에 여기 이사를 왔는데 이웃도 다 좋았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지금은 다 집을 팔고 간 사람도 있고 다 헤어졌다. 서운하다.”

△박기수=“이제 올 사람도 없고 떠나는 사람만 있다.”

△손인숙=“분통 터진다는 게 이런거다. 가만히 잘 살고 있는데 왜 갑자기 시장이 나와서 아파트를 짓겠다고 나서서 헤집어 놓는지 모르겠다. 이웃을 이렇게 친절하게 만드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우리는 똘똘 뭉쳐서 잘 살았다.” 정리/오세현·이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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