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클럽] 다시 봄이 오겠죠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을 비롯해 서구인들이 일본에 대해 쓴 책은 많습니다.
알렉스 커의 ‘사라진 일본’(글항아리) 역시 그런 일본론 책 중 한 권입니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저자가 일본어로 책을 쓸 정도로 일본에 오래 살았고, 일본어에 능통하다는 것.
그래서 일본을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보지만, 그 초점을 애정어린 비판에 맞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일본이 외래 문화를 받아들이기만 해 왔다는 열등감 때문에
일본에 대한 의견을 일본 사랑, 혹은 일본 때리기 등으로 양분해 보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일본학자들이 ‘일본학’이 아니라 ‘일본 숭배’를 택하며,
이는 거의 종교적인 수준이라고도요.
차분하면서도 세련된 문장이 지적인 자극과 읽는 재미를 동시에 주는 책이었습니다.
서구인은 왜 일본에 끌리나… ‘평화의 얼굴’을 한 정체된 사회라서
그가 다시 성큼성큼 흙길을 걸어온다/폭풍이 걷힌 산 아래로/그 아름다움 다가오는 곳에/다시 사랑스런 꽃이 부풀어 오르고/새들의 노래 피어난다.
헤르만 헤세의 이 시에서 ‘그’란 누구일까요?
‘봄’이라는 제목에 힌트가 있습니다.
봄은 갔다가 ‘다시’ 오는 것이고, 꽃도 졌다가 ‘다시’ 부풀어 오르는 것이죠.
시인은 ‘다시’라는 단어를 반복해 쓰며 부활과 재생이라는 봄의 속성을 거듭 강조합니다.
시는 이렇게 이어지며 끝납니다.
다시 그가 나의 오감을 유혹한다/이렇듯 부드럽게 피어나는 순수함 속에 있으면/내가 손님으로 온 이 땅이/내 것 같고 사랑스런 고향 같다.
이 시를 발견한 건 헤르만 헤세 시 필사집 ‘쓰는 기쁨: 슬퍼하지 말아요, 곧 밤이 옵니다’(나무생각).
헤세의 시 100편이 수록돼 있는데,
왼쪽 페이지에는 시를 싣고 오른쪽 페이지를 비워 독자들이 필사할 수 있도록 구성했네요.
디지털 시대에 누가 굳이 손으로 시를 옮겨 적을까, 싶었지만
인스타그램에 ‘시 필사’라는 해시태그를 넣으니 1만 8000여건의 게시물이 쏟아집니다.
디지털이 세상을 장악할수록 아날로그에 대한 그리움은 더 강력해지는 것일지도요.
헤세는 ‘데미안’을 쓴 소설가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그가 원래 품었던 꿈은 시인이었어요.
신학교를 뛰쳐나와 방황하던 중 “시인 말고는 그 어떤 것도 되고 싶지 않다”라고 결심했답니다.
헤세의 시 ‘봄이 하는 말’의 첫 연을 옮겨 적어 봅니다.
아이들은 모두/봄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요/살아라, 자라라, 피어나라/희망하라, 사랑하라/기뻐하라, 새싹을 틔워라/너 자신을 내어주어라/그리고 삶을 두려워하지 마라.
주초부터 추위가 매섭습니다만, 겨울도 중반에 이르렀으니 어느새 봄이 다시 오겠죠.
두려움 없이 자신을 만물에 내어주는 계절이. 곽아람 Books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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