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네-드가가 보여준 파트너십의 힘 [특파원칼럼/김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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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초 아침 일찍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 갔다 인파에 깜짝 놀랐다.
19세기 근대회화의 거장 에두아르 마네와 에드가르 드가의 작품 160여 점을 모은 특별전 '마네/드가'가 막을 내리는 날이라 개장 전부터 수백 명이 몰려 있었다.
'마네/드가'전이 성사된 배경도 프랑스 오르세미술관과 뉴욕 메트 간 협업 덕이었다.
160개 전시작 중 절반이 오르세와 메트 소장이었고, 서로 작품을 빌려준 덕에 미국에서 처음으로 마네의 걸작 '올림피아'가 전시돼 흥행에 더 불을 지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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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너십의 힘’ 되새겨야… 혐오 넘어 포용으로
뉴욕 장안의 화제가 된 ‘마네/드가’전은 미술 전문가가 아닌 이라도 여러 차례 찾을 수밖에 없는 특별함이 있다. 두 살 차이인 프랑스 부잣집 두 화가의, 친구이면서도 때론 적대적인 ‘프레너미(frenemy·친구와 적의 합성어)’ 관계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다. 이들은 20대 후반 무렵 파리 루브르박물관에서 우연히 만나 20년간 우정을 지켜 왔다.
말이 좋아 우정이지, 전시작에는 두 화가가 느꼈던 경쟁심, 질투, 부러움, 존경, 집착이 생생히 담겨 있었다. 드가가 마네 부부를 그려 선물했더니 마네가 아내 부분을 잘라버린 그림도 있다. 무엇에 화가 났던 걸까, 그래도 왜 계속 친구로 남았나 상상력을 자극한다. 드가는 마네 사후에 그의 작품 ‘막시밀리안 황제의 처형’이 조각조각으로 팔리자 하나씩 사들여 최대한 이어 붙이려 했다. 존경의 표현이다. 서로 같은 모델을 그리거나 비슷한 구도를 따라하며 상대를 의식한 흔적도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서로의 관계를 통해 한발 더 나아가 동반 성장을 이뤘다는 점이 감동을 줬다. ‘파트너십의 힘’을 새삼 깨닫게 된다. 이것이 ‘마네/드가’전에 관람객이 몰려든 주요 이유일 것이다. 본인들은 인상주의자로 불리는 것을 거부했다지만, 서로가 있어 자극을 받고 기존 사실주의에서 인상주의로 전환하는 시초가 되는 실험에 나설 수 있었다.
따지고 보면 파트너십의 힘이 발휘된 사례는 너무 많다. ‘마네/드가’전이 성사된 배경도 프랑스 오르세미술관과 뉴욕 메트 간 협업 덕이었다. 160개 전시작 중 절반이 오르세와 메트 소장이었고, 서로 작품을 빌려준 덕에 미국에서 처음으로 마네의 걸작 ‘올림피아’가 전시돼 흥행에 더 불을 지폈다.
전혀 다른 분야지만 지난해 30대 양자과학 분야 석학으로 인촌상을 수상한 최순원 미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를 만났을 때에도 파트너십의 위력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이론 물리학자지만 실험 물리학에도 업적을 쌓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 이유를 물으니 “실험 물리학자들과도 친해서”라고 했다. 머릿속에서 ‘이게 될까’ 하는 생각을 실험 물리학자와 나누면 새로운 발견에 이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최 교수가 박사과정 중 네이처지 표지를 장식했던 유명한 논문도 불현듯 떠오른 아이디어를 연구실 동기인 실험 물리학자 최준희 미 스탠퍼드대 교수와 함께 48시간 만에 구현하고 논문으로 써내려간 ‘작품’이었다.
파트너십의 성공 사례는 이 밖에도 무궁무진하다. 세계 최고 시가총액 왕좌 경쟁을 벌이고 있는 애플이나 마이크로소프트(MS)부터 구글, 오픈AI까지 창업의 시작은 동네 친구나 학교 동기 같은 관계에서 출발했다. 타고난 재능에 성장하는 관계를 받아들일 줄 안다면 더 빨리 꿈에 도달할 수 있다는 교훈을 전해준다.
하지만 아쉽게도 개인의 삶부터 정치에 이르기까지 세상은 갈수록 파트너십을 찾기 어려워지고 있다. 한국은 물론 미국도 정치, 남녀, 성소수자, 세대 갈등 속에 무조건적인 혐오가 기승을 부린다. 적대감만 부각될 뿐 그럼에도 서로를 인정하고 협업과 성장으로 이어지는 사례를 찾기 힘들고, 막대한 갈등 비용만 치르고 있다. 다시 마네와 드가로 돌아가면 두 사람은 정치 성향도 극단으로 달랐다고 한다. 새해에는 ‘그럼에도’ 포용하는 마음을 열어보는 것은 어떨까.
김현수 뉴욕 특파원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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