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만난세상] ‘증오 장사’하는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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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6개월의 정치부 기자 생활 동안 '현타'(현실 자각 타임)를 느낀 순간이 적지 않다.
포털 기사 조회 수에 비례해 이윤을 얻는 언론 환경에서 중계식 보도가 가성비가 좋다는 점을 무시할 순 없을 것이다.
얼마 전 제1야당 대표에 대한 피습을 계기로 정치권에서 양극화 정치에 대한 자성이 '살짝' 일었을 때, 언론이 감당해야 할 몫도 있다고 생각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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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6개월의 정치부 기자 생활 동안 ‘현타’(현실 자각 타임)를 느낀 순간이 적지 않다. 매일같이 폭풍우처럼 몰아치는 국회, 당 일정을 쫓아 기사를 쏟아내다가도 문득 ‘이게 맞는 건가’, ‘이렇게 기사를 써도 되는 건가’라는 생각에 멈칫하는 순간들이 많았다.
언론 탓이라고만 할 수 없을 것이다. 시민들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정쟁에 오용한 선출직 정치인들이 무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시민들이 상대 진영을 악마화할 정도로 정치 양극화가 극심해진 데는 언론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정치권의 갈등을 구조화해 시민들에게 전달하는 ‘게이트키퍼’ 역할은 언론의 몫이기 때문이다.
독일 출신의 정치학자 얀 베르너 뮐러는 저서 ‘민주주의 공부’에서 “좋든 싫든 민주주의 사회에서 갈등의 틀은 여전히 매개 기구, 특히 정당과 전문 언론 매체가 만든다”며 “정당과 언론은 시민들이 서로 관계를 맺도록 도와준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필수 인프라”라고 했다.
그런 점에서 최근 정치인의 수위 높은 발언을 그저 늘어놓는 기사가 급격히 늘어나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포털 기사 조회 수에 비례해 이윤을 얻는 언론 환경에서 중계식 보도가 가성비가 좋다는 점을 무시할 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기사는 댓글창에서 확인할 수 있듯 특정 지지층의 일방적인 열광을 추동하거나 분노를 부채질하는 경향이 있다.
언론이 정치인의 극언이나 여야의 갈등 상황을 논평하지 않고 그저 중계만 하는 건 적대 정치를 확대재생산하는 것과 같다. 중도·무당층을 중심으로 정치 혐오가 심화하고, 여야 지지층의 성향은 극단화할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얼마 전 제1야당 대표에 대한 피습을 계기로 정치권에서 양극화 정치에 대한 자성이 ‘살짝’ 일었을 때, 언론이 감당해야 할 몫도 있다고 생각한 이유다.
1987년 민주화는 언론의 역할을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그 이후 한국 민주주의의 공고화도 언론 자유의 확대, 매체의 다양화 같은 언론의 발전 속에 이뤄졌다. 그러나 이제는 지나치게 많고, 빠르고, 얕아진 뉴스 기사들이 오히려 우리의 민주주의에 위해가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언론이 없는 민주주의를 상상할 수 없듯, 언론이 제 역할을 못 하면 제대로 된 민주주의도 가능하지 않다. 한국기자협회 언론윤리헌장은 언론은 “사회 통합을 위해 노력”하고, “갈등을 풀고 신뢰를 북돋우는 토론장을 제공한다”고 규정한다. 우리 언론이 본질에 소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성찰해야 할 때다.
김병관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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