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란의시읽는마음] 수조

2024. 1. 15.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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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불 꺼진 시장 골목을 우리는 한 번쯤 걸어본 적이 있다.

골목 가장자리 발광하는 수조를 본 적이 있다.

"죽은 물고기를 보는 나의 텅 빈 눈알" 혹은 "비린내 나는 나의 눈알"이라고 적어 둔 시인의 마음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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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후
불 꺼진 시장 골목
불 꺼지지 않는 수조들
아무도 없이 죽은
물고기 비늘 눈알들
 
소원을 적지 못한
놓쳐버린 풍등처럼
산소 공급기 부글대는 거품들
떠다닌다 사그라드는 축제의 재들
떠다닌다 죽은 물고기를 보는 나의 텅 빈 눈알
 
아름다울까 허공 없는 바닥은
구정물 위엔 버려진 장어 껍질
비린내 나는 나의 눈알 비치고
떠다닌다
아무것도 적지 못한 놓쳐버린
나의 풍등처럼
재가 될 소원처럼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불 꺼진 시장 골목을 우리는 한 번쯤 걸어본 적이 있다. 골목 가장자리 발광하는 수조를 본 적이 있다. 인공의 푸른빛. 그 속에 고요히 가라앉은, 숨죽인, 입가에 구멍이 난, 너덜너덜한, 눈알이 으스러진 몇 마리 물고기. ‘생선’이라 해야 할지. ‘회’라 해야 할지. 어떤 호명도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몹쓸 짓을 너무 많이 저지른 것 같다. “죽은 물고기를 보는 나의 텅 빈 눈알” 혹은 “비린내 나는 나의 눈알”이라고 적어 둔 시인의 마음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시장의 활기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펼쳐진 죽음의 난장. 조금은 낯선 풍경일지도. 구정물 위에 버려진 장어 껍질. 알맹이는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다. 영영 알 수 없는 채로, 다만 잠시 걸음을 멈출 뿐. 고개를 수그릴 뿐. 나는 대체 누구의 간절한 소원을 집어삼키고 이렇게 함부로 살이 올랐을까.

박소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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