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초저출산 위기 극복, 어떻게 할 것인가
‘양육지원=사회투자’로 관점 전환
일·가정 양립하는 기업환경 조성
경쟁위주 사회 구조개혁도 병행
한국의 합계출산율 하락은 세계 유례없는 ‘한강의 기적’처럼 드라마틱하다. 1960년 6.0명, 1970년 4.5명, 1983년 인구대체수준인 2.1명 이하로 하락, 2002년 1.18명 초저출산 진입, 2018년 0.98명 1명 이하 진입, 2023년 3분기는 0.70명. 세계에서 가장 급속하게 추락 중이다.
상황의 엄중함에 지난해 3월, 7년 만에 대통령 주재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를 개최했다. 처참한 인구 성적표로 귀결된 과거 정책과 차별화된 전략을 제시했다. 첫째, 추상적 목표를 폐기하고, 결혼·출산·양육이 행복한 선택이 될 수 있는 사회 환경 조성이라는 분명한 목표를 제시했다. 둘째, 수백개 백화점식 사업을 실효성 높은 정책 중심으로 선택·집중하기로 했다.
향후 윤석열정부의 저출산 대응 정책은 투 트랙으로 추진할 것이다. 첫째, 향후 3년을 출산율 반등의 골든타임으로 보고, 체감도 높은 정책을 조속하게 추진해 임기 내에 출산율 반등의 계기를 마련할 것이다. 둘째, 근본적 변화를 위한 구조개혁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시작할 것이다. 저출산의 원인은 ‘청년들이 느끼는 극심한 경쟁압력과 불안’이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입시경쟁, 치솟은 주택가격,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기 위한 노동개혁, 교육개혁, 지방소멸 대응 등 구조개혁을 추진할 것이다.
임기 내 추진할 최우선 과제는 ‘일하면서 아이 키우기 좋은 환경 조성’이다. 위원회가 실시한 각종 수요 조사 및 심층 연구를 통해 내린, 체감도·효과성 높은 핵심 해법은 ‘일·가정 양립이 뉴노멀이 되는 기업환경’이다. 최근 발표된 한국은행 분석 결과, 육아휴직 실제 이용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으로 증가하면 출산율이 0.1명 상승했다. 올해부터 ‘6+6 부모육아휴직제’ 시행, 재택·유연근무 활성화,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지원 대폭 확대, 업무분담 동료 응원수당 지급 등 상당한 제도 변화가 이루어진다.
하지만 획기적 변화를 이끌기에는 역부족이다. 추가 정책 개선과 기업의 획기적인 변화가 수반돼야 한다. 첫째, 일하는 부모의 육아휴직이 당연해져야 한다. 아빠의 변화가 급선무다. ‘요즘 남편, 없던 아빠’가 올해 소비트렌드 키워드로 선정될 정도로 아빠 돌봄에 대한 기대는 커졌다. 아빠 육아휴직을 지원하기 위해 최저임금 이하인 육아휴직급여의 인상, 사후지급금 폐지, 자동육아휴직 개시 등 사용권리 강화, 산업·지역별 차별화된 대체인력 지원 통한 실효성 강화 등이 추가로 추진돼야 한다.
둘째,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유연근무, 재택근무가 당연한 권리가 돼야 한다. 일·가정 양립이 잘된 국가들은 긴 휴직보다 ‘유연한 근로’ 선택권을 충분히 보장한다. 우리는 세계 최고 정보기술(IT) 강국이다. 근무 방식을 혁신할 수 있는 충분한 기술력을 갖고 있지만, 낡은 제도와 기업문화가 걸림돌이 되고 있다. 근본적 혁신이 필요하다. 정부는 유연근무에 대한 권리 부여, 유연근무 활용 인프라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기업은 각자에게 적합한 유연한 근무 방식을 노사가 정해 취업규칙에 반영해야 한다.
혹자는 지금의 위기를 타개할 파격적 저출산 대책으로, 출산하면 무조건 현금 1억원을 지원해야 한다고 한다. 일순간 마음을 흔들지만, 간담회에서 만난 많은 청년들은 일시적 현금이 근본적 해법이 될 수 없다고 했다. 전 사회가 아이를 환대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고자 하는 청년들을 응원하고, 함께 양육을 책임지기 위해 기득권을 내려놓고 시스템을 바꿔주기를 원했다. 변해야 하는 것은 청년들이 아니라, 정부와 기업, 사회다. 청년들에게 ‘출산=애국’은 공허한 메아리다. 정부, 기업, 기성세대는 ‘아이=사회의 안녕을 위한 공공재’, ‘양육 지원=공공 편익을 위한 사회투자’로 관점을 바꿔야 한다.
저출산 위기 극복이 국가의 최우선 과제라는 선언이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재정 투자가 수반돼야 한다. 수백조원의 저출산 예산을 썼다고 하지만, 한국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아동가족 지출예산은 OECD 평균인 2.3%보다 낮은 1.5%다. 그 차이는 약 12조원이다. 재정 상황이 어렵더라도, 사회의 존속을 위한 투자는 다른 정부지출을 조정하더라도 필요하다. 출산율이 일정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한시적으로 미래세대를 위한 특별회계 혹은 목적세가 필요하다.
시간이 많지 않다. 적기를 놓치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을 수도 있다. 지금 우리 공동체의 미래를 위해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
김영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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