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코비치 선수생명 늘린 한마디 “글루텐 끊어보시죠”[인사이드&인사이트]
조코비치, 37세에도 여전히 넘버1… ‘글루텐 프리+유기농 채식’ 고수
“초콜릿보다 우승이 더 달콤”… 브레이디-메시도 글루텐 프리
선수 83% “효과 있어”… 전문가 “체질 따라 독 될 수도”
● 20대 초반엔 조금만 뛰어도 ‘헉헉’
조코비치는 2008년 호주오픈을 시작으로 지난해까지 4대 메이저대회(호주오픈, 프랑스오픈, 윔블던, US오픈)에서 역대 최다인 24번 정상을 차지했다. 그중 10번(41.7%)이 호주오픈에서 나왔다. 14일 개막한 올해 대회에서도 조코비치가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다. 호주오픈에서 조코비치보다 많이 우승한 선수도 없다. 조코비치는 올해 호주오픈을 앞두고 “호주는 행복한 땅”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2011년 호주오픈에서 메이저대회 개인 두 번째 우승을 차지하기 전까지 조코비치에게 호주는 ‘피하고 싶은 땅’이었다. 조코비치는 “당시에는 호흡 곤란에 시달리는 일이 많았다. 밤에도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호주에만 가면 증상이 특히 심해졌다”고 말했다. 병원에서는 조코비치가 천식을 앓고 있다고 진단했다. 천식은 알레르기 염증 때문에 기관지가 좁아지는 만성 호흡기 질환이다.
그러나 조코비치의 2010년 호주오픈 8강 경기를 TV로 지켜보고 있던 이고르 체토예비치 박사(영양학)의 진단은 달랐다. 체토예비치 박사는 조코비치가 경기 도중 어깨를 움츠린 채 입을 크게 벌리고 숨을 쉬는 모습에 주목했다. 그리고 알레르기 때문이 아니라 몸에 에너지가 떨어져 호흡 곤란이 찾아온 것이라고 분석했다. 체토예비치 박사는 조코비치의 아버지를 통해 ‘한번 만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조코비치는 “그 전까지 한 번도 직접 본 적이 없는 사이였는데 내 증상을 정확하게 알고 있어 놀랐다”고 첫 만남을 회상했다.
체토예비치 박사는 “몸에 맞지 않는 음식을 소화하느라 몸이 에너지를 너무 많이 쓰고 있다”면서 조코비치에게 “글루텐부터 끊으라”고 조언했다. 글루텐은 밀, 보리, 귀리 같은 곡류에 들어 있는 단백질 혼합물이다. 조코비치가 ‘글루텐 프리’ 식단 효과를 보는 데는 2주면 충분했다. 조코비치는 “글루텐을 끊은 뒤 일단 잠을 푹 잘 수 있게 됐다. 발도 가벼워지고 몸에도 활기가 넘쳤다”고 말했다.
체토예비치 박사는 이후 쇠고기, 양고기 등 붉은 고기와 초콜릿까지 끊어보자고 제안했다. 조코비치는 경기가 끝나면 초콜릿으로 당분을 보충하는 루틴이 있었다. 조코비치는 체토예비치 박사를 코칭스태프에 합류시킨 그해 윔블던에서는 준결승, US오픈에서는 결승까지 올랐다. 그리고 2011년에는 호주오픈을 시작으로 3개 메이저대회에서 정상을 차지하면서 ‘전설’을 쓰기 시작했다.
● 20대 때보다 더 강해진 서브-스매시
조코비치는 매일 아침 레몬을 담근 따뜻한 물로 신체 독소를 빼내며 하루를 시작한다. 아침으로는 제일 먼저 셀러리 주스를 마신 뒤 견과류, 딸기류, 씨앗 같은 ‘슈퍼푸드’와 해조류 등을 섞은 샐러드를 민트, 병아리콩, 사과, 시금치를 갈아 만든 ‘그린 스무디’와 함께 먹는다. 점심은 샐러드 그리고 메밀이나 비건(vegan·채식주의) 치즈가 들어간 무(無)글루텐 채소 파스타다. 저녁에도 샐러드와 생강 수프, 연어구이를 먹는다.
조코비치도 물론 ‘치팅’ 유혹에 시달릴 때가 있다. 2012년 호주오픈 결승 때가 특히 심했다. 5시간 53분에 걸친 혈투 끝에 라파엘 나달(38·스페인)을 물리치자 초콜릿 생각이 간절했던 것. 때마침 누군가 조코비치에게 초콜릿바를 건넸다. 이를 받아든 조코비치는 한참 고민하다 결국 끝부분만 손톱만큼 잘라 혀로 녹여 먹었다. 조코비치는 “나에게 스스로 허락할 수 있는 건 그 정도뿐이었다. 1위 자리를 지키려면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만큼 식단 조절 효과가 좋았다. 2015년 조코비치의 서브 평균 속도는 시속 185.7km였다. 지난해 이 기록은 시속 193.3km로 늘었다. 같은 기간 조코비치의 스매싱 평균 위치는 베이스라인 앞 48cm 지점에서 108cm로 네트 쪽을 향해 60cm 전진했다. 공에 반응하는 속도가 그만큼 빨라진 것이다. 요컨대 조코비치는 나이가 들어 가면서 오히려 더 젊은 선수처럼 공을 치고 있다.
● 운동선수가 ‘갱년기’를 이겨내는 법
브레이디 역시 20년 넘게 글루텐이 들어간 음식을 먹지 않았다. ‘축구의 신’ 리오넬 메시(37·인터 마이애미)도 글루텐을 피한다. 메시가 떠난 FC바르셀로나의 공격을 이끌고 있는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36)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들 모두 30대 후반까지 전성기를 이어가고 있다.
이들뿐만이 아니다. 호주 태즈메이니아대 연구팀이 올림픽 메달리스트를 포함한 전 세계 운동선수 910명을 대상으로 2015년 설문조사를 한 결과 전체 응답자 중 41%가 ‘글루텐 프리를 실천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이들 중 83%는 ‘글루텐 프리 식단 도입 효과를 느끼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일본 공인 스포츠 영양사인 하시모토 레이코는 “글루텐 프리 식단이 운동선수 기량에 영향을 끼친다는 증거는 없다. ‘효과를 느낀다’는 건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평가”라면서 “글루텐 프리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이 식단 도입 과정에서 식사에 더욱 신경을 쓰게 되면서 성적이 좋아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코비치는 글루텐이 면역 반응을 유발하는 셀리악병이 있었다. 이런 문제가 없는 사람들이 막연히 ‘건강이나 소화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글루텐 프리 식단을 고수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글루텐 프리 식단 관련 연구에서는 일반 체질의 사람들이 무작정 글루텐을 피하다 보면 쉽게 포만감을 느끼거나 입맛이 떨어지는 등 오히려 신체 에너지를 낮추게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하시모토 영양사는 “특히 (글루텐이 없는) 쌀을 주식으로 하는 동양인은 더욱 문제가 심각할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결국 운동선수든 일반인이든 자기 몸에 잘 맞는 음식을 알맞게 골라 먹어야 ‘전성기’를 더 오래 지킬 수 있다.
임보미 기자 b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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