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이란 말 참을 수 없었다” 양아버지 살해한 ‘섬마을 머슴’ 사연

최혜승 기자 2024. 1. 15.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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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고법 전경. /조선일보DB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다”라는 말을 듣고 격분해 양아버지를 살해한 50대에게 항소심 법원이 중형을 선고했다.

광주고법 형사1부(재판장 박혜선)는 살인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18년을 받은 A(59)씨의 항소를 기각했다고 15일 밝혔다.

판결문에 따르면, 친부모에게 버림받고 고아원에서 자란 A씨는 11살이 되던 해 양아버지인 B씨에게 입양됐다. 당시 A씨는 B씨에게 입양된 다른 아이들과 함께 여수의 섬마을에서 지내왔다. 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소를 키우고 뱃일을 하며 부족한 일손을 보탰다.

A씨는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고 주민등록도 성인이 된 무렵에 할 수 있었다. 이웃들은 그를 두고 ‘머슴’이라 불렀다고 한다. A씨는 17살이 되던 해 B씨가 선장으로 있던 배에서 선원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26살 결혼한 뒤 수억원 상당의 선박을 보유하며 경제적으로 나아졌으나 B씨의 일을 계속 도왔다.

그러던 2021년 A씨는 큰 사고를 당하게 된다. 어망 기계에 팔이 빨려 들어가 오른팔이 절단된 것이었다. 이 사고로 그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까지 얻었다. 마음 속에선 어린 시절부터 쌓여온 아버지에 대한 원망은 커졌다.

A씨는 지난해 2월 19일 오후 술을 마신 채 흉기를 품고 양아버지를 찾아갔다. “아버지가 나한테 뭘 해줬냐”며 “20년 전에 배도 주고, 집과 땅도 주기로 해놓고 왜 안 주느냐”고 따졌다. 그러자 B씨는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더니…”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A씨는 흉기를 휘둘러 40여년 인연의 양아버지를 살해했다. 흉기에 찔린 B씨는 다음날 끝내 숨졌다.

A씨는 수사 과정에서 “평소에도 고아라고 말해 화가 났는데, 아버지한테 ‘짐승’이라는 말을 듣자 참을 수 없었다”고 진술했다.

A씨는 팔 절단 이후 정신과 약물 치료 중이었다며 심신미약을 주장했지만, 1·2심 모두 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양아버지의 학대나 착취 의심 정황이 있는 등 참작할 점이 있지만, 계획적 살인죄에 중형을 선고한 원심을 변경할 이유가 없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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