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수사’ 현수막, 철거 대상?
“특정인 실명 거론 비방 금지”
서울시 개정 조례 근거 집행
진보당, 서대문구·송파구에
“법적 대응 나서겠다” 항의
자유·정당 활동 위축 우려도
서울시 내 자치구에서 윤석열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 여사의 실명이 담긴 정당 현수막이 잇따라 강제 철거되는 일이 벌어지면서 논란이 뒤따르고 있다.
해당 구청들은 지난해 서울시의회를 통과한 조례에 따른 행정이라는 입장이지만, 정당 활동과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조치라는 비판이 나온다.
진보당은 15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독립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대문구청이 지난 12일 ‘김건희를 즉각 수사하라’는 문구의 진보당 현수막 20여장을 강제 철거했다”고 밝혔다. 전진희 진보당 서대문구 위원장은 “서대문구청이 국민 70%가 원하는 김건희 수사 요구를 특정인에 대한 비방과 모욕이라며 강제 철거했다”며 “정당 현수막에 대한 과도한 해석으로 국민 입을 틀어막고 있다”고 했다.
‘김건희 현수막’ 강제 철거는 서대문구가 처음이 아니다. 지난 8일 오전 서울 송파구청은 진보당 강동송파위원회에 ‘김건희 현수막’을 자진 철거하라고 요구하고, 진보당에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같은 날 오후 3시쯤 송파구에 있는 현수막 10여개를 강제 철거했다. 이에 대해 윤희숙 진보당 상임대표는 “법적 대응까지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송파구청과 서대문구청의 현수막 철거는 서울시 ‘옥외광고물 등의 관리와 옥외광고 산업진흥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안’에 근거해 집행됐다. 조례는 “정당 현수막의 내용은 정당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존중하되 형법 제309조, 제311조에 따라 특정인의 실명을 표시하여 비방하거나 모욕하여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서울시는 옥외광고물 조례 개정을 위한 지난해 11월 회의에서 “국회 입법권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개정 입법을 기다리는 것이 바람직하나 법률 개정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입법 불비로 시민 안전이 위협받고 불편이 증가하는 것을 방치하는 것 또한 책임 있는 지방정부의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라며 “표현의 자유를 남용해 특정 개인이나 단체를 비방·모욕하거나 혐오와 차별을 조장하는 현수막을 규제하고자 하는 개정안에 적극 공감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조례 취지와 구청의 해석을 종합하면 총선이 3개월 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정치인 또는 주요 인사들의 실명이 적힌 비판적 내용의 현수막은 걸리는 족족 철거될 가능성이 있다.
김 여사만이 아니라 윤 대통령,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등 모두가 그 대상이 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정당 활동이 제약되고 표현의 자유도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유성진 이화여대 스크랜튼학부 교수는 “표현의 자유와 선거운동의 자유, 정당 활동을 해치는 것”이라며 “현수막에 실명이 적혀 문제가 된다면 다양한 이름이 들어가 있는 건 다 금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상위법에 규정하지 않은 내용을 하위법에서 규제하는 건은 법 순위에 맞지 않고, 선거관리위원회 등에 문의하지 않고 자의적으로 해석했다면 명백히 월권”이라고 말했다.
명예훼손·모욕 등을 빌미로 정치적 표현을 검열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지은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간사는 “현수막을 게시하는 것은 정당 활동의 일환으로 헌법이 보장한 활동인데 이를 지자체 조례로 제한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진보당 측은 “잘못된 선례를 남기지 않기 위해 서대문구청의 행정집행에 대해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낼 것”이라고 했다.
오동욱 기자 5do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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