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솟는 술값 잡으려 정부가 만든 ‘주류산업TF’… 고급술 육성까지 이어질까[세종팀의 정책워치]

세종=김도형기자 2024. 1. 15.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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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정부의 가장 큰 과제 가운데 하나는 치솟는 물가잡기였습니다.

다양한 물가 대책을 동원하면서 3.6%의 연간 물가상승률로 나름대로 선방한 모습인데 그 과정에서 이른바 ‘술플레이션’도 큰 골칫거리였습니다.

술 가격 인상이 부르는 인플레이션, 특히 그중에서도 1000원 단위로 움직이는 음식점에서의 소주, 맥줏값이 문제였는데요.

이달 2일 오후 서울 시내 한 편의점에 소주가 진열돼 있다. 뉴시스

이런 고민 때문에 정부가 지난해 말 ‘주류 산업 경쟁력 제고 TF’를 꾸리고 폭넓은 규제 완화와 경쟁력 제고 방안을 찾기로 하면서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정부에서는 주류 산업에서도 금융이나 통신처럼 경쟁이 제한되면서 물가 상승기에 소비자의 가격 부담이 커졌다는 인식과 함께 국산 주류의 경쟁력이 유독 떨어진다는 시각도 엿보이는데요.

아직은 면허, 세금과 관련한 일부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방향성 외에는 뚜렷한 계획이 드러나지 않고 있지만 주류 업계에서도 적극적인 의견 수렴을 통해 규제와 세금을 완화하고 수출 경쟁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 정부 “주류 산업에서도 금융·통신처럼 경쟁 강화 필요”

15일 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기획재정부를 중심으로 농림축산식품부, 공정거래위원회, 국세청, 주류 업계 등이 참여하는 ‘주류 산업 경쟁력 제고 TF’를 지난해 말 꾸렸습니다. 주류 면허와 유통, 주세 신고 절차 등 주류 산업 전반의 개선점을 논의하는 TF입니다.

이 TF는 지난해 주류 가격이 물가 상승을 이끄는 이른바 ‘술플레이션’ 논란 때문에 꾸려진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지난해 소비자물가가 3.6% 오를 때 주류 외식 물가는 소주(외식) 7.3%, 맥주(외식) 6.9%가 상승한 바 있습니다. 소매 판매되는 소주(2.6%), 맥주(2.4%)의 물가상승률에 비해 큰 폭의 상승으로 물가에 부담을 준 것인데요.

이와 관련해 대형 업체 중심으로 과점화된 주류 시장에서 경쟁을 강화해서 가격을 낮추겠다는 것이 정부 고민의 출발점입니다.

정부의 인가나 허가받은 대형 업체를 중심으로 시장이 형성된 은행권이나 통신사처럼 주류 업계 역시 제한된 경쟁 구조가 가격 상승을 부르는 것 아니냐는 인식입니다.

이달 1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 막걸리가 진열돼 있다. 뉴스1

이에 따라 정부는 우선 주류 면허제도 합리화와 주세 신고 제도 간소화 방안 등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주세 신고 제도 간소화의 경우 다품종 소량 생산을 하는 소형 주류 업체가 술 종류마다 일일이 복잡한 주세 신고를 거쳐야 하는 불편을 줄여주겠다는 계획인데요. 면허 제도의 경우 제조는 물론 유통 과정까지 살펴보겠다는 계획입니다.

한 정부 관계자는 “오래된 주세 부과 체계 등으로 인해 경쟁 제한적인 주류 시장에서 시장 기능을 강화하려는 논의를 하고 있다. 주류 도매면허 등의 유통 시장 문제는 국세청 연구 용역도 진행 중”이라고 얘기했습니다.

● “희석식 소주 외의 주종 키우는 고급화 필요” 논의도

TF 내부에서는 희석식 소주 중심의 한국의 주류 시장이 해외에 비해 뒤처져 있다는 인식도 공유되는 분위기입니다.

라면을 필두로 지난해 역대 최고 수출액을 새로 쓴 ‘K-푸드’ 열풍 속에도 유독 국산 주류의 경쟁력이 떨어지는데 고급화를 통해 활로를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 또 다른 정부 관계자는 “순수한 알코올에 가까운 주정을 기반으로 만드는 희석식 소주는 다른 술에 있는 ‘풍미’가 존재하기 힘든 한계가 있다. 중국 연태고량주처럼 자국에서 그리 고급술이 아닌 술도 한국에서 인기를 끄는데 유독 주류 분야에서 한국의 대표 상품이 없다는 고민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같은 고민은 결국 정부의 규제 완화와 세제 혜택을 통해 한국산 위스키·블랜디·와인, 증류식 소주, 각종 전통주 등을 육성해야 한다는 논의로 이어질 수 있는데요.

사실 정부는 올 1월부터 ‘기준판매비율’이라는 일종의 세금 할인을 통해 국산 주류의 가격을 낮춘 바 있습니다.

소주와 위스키, 일반 증류주 등에 20% 안팎의 기준판매비율을 적용한 결과 희석식 소주 대표 제품인 ‘참이슬’의 가격은 1247원에서 132원 내리고 국산 위스키 대표 제품인 ‘더 사피루스’의 가격은 2만5905원에서 2993원 내린다는 것이 국세청의 설명이었는데요.

대중적인 소주의 가격 인하가 주목받았지만 일정한 할인율이 적용되는 개념이어서 가격대가 더 높은 더 비싼 고급 국산 주류에서 금액적으로는 더 큰 할인이 이뤄지게 됐고 이런 조치들 역시 국산 주류의 경쟁력 강화에는 도움을 줬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 주류 업계에서도 “주류 고급화 필요성에 공감”

아직 구체적인 방안이 제시되지 않았지만 주류 업계에서도 술 문화가 바뀌는 가운데 규제 완화를 통한 주류 고급화 등은 피할 수 없는 과제라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한 주류 업계 관계자는 “주류 업계에서도 코로나19 이후 술 소비문화가 바뀌면서 주류 고급화가 필요한 시점으로 보고 있다. 복잡한 규제 체계를 감안해 주류 업계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듣고 한국 술도 해외 시장을 적극 개척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고 얘기했습니다.

김창기 국세청장(오른쪽)과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왼쪽)가 지난해 11월 20일 세종시에서 열린 제1회 주류(K-SUUL)정책 세미나 및 수출 주류 시음회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뉴스1

‘혼술’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레 위스키 같은 고급 주류를 찾는 젊은 층이 늘어나고 하이볼 등 다양한 방식으로 술을 즐기는 상황에서 국내 주류 시장도 다양화, 고급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이런 가운데 전통주 업계에서는 지난해에 이미 원료 사용에서 자율성을 높여주고 주세율 감면이 적용되는 전통주 출고량을 확대해 달라는 등의 내용을 담은 건의 사항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주류 가격 합리화와 한국 술 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TF를 꾸린 정부가 어떤 방안들을 마련할 수 있을지, 앞으로도 계속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세종=김도형기자 dod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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