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삼겹살 지방은 1㎝ 이하로’
“북한 살 때 마을에서 돼지 잡으면 한 덩이 얻어다 기름만 물에 타서 몇 달간 먹었는데 한국 와서 삼겹살 먹으면서는 이것이 진짜 자본주의다 했습니다.” 탈북자들이 “북한서 구경도 못 해봤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는 대표 음식이 삼겹살이다. 여럿이 앉아 지글지글 고기를 구워서 상추에 싸 먹는 삼겹살은 모임 문화에 잘 맞아 우리나라 직장 회식 1위 메뉴다.
▶지방 적은 부위를 즐겨 먹는 외국과 달리 우리는 유독 삼겹살을 좋아한다. 몇 년 전 TV에서 맛 칼럼니스트 한 사람이 “불행한 역사가 있다”면서 ‘대일 수출 잔여육’설(說)을 주장했다. 1960~70년대 일본 수출을 위해 대규모 양돈을 시작했는데 일본이 안심, 등심만 가져가고 남은 것이 삼겹살, 돼지머리, 족발 등이어서 삼겹살을 많이 먹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자 한 식육 마케터가 ‘잔여육설은 근거 없는 엉터리’라고 조목조목 반박했다.
▶한국에서 소고기에 비해 돼지고기는 오랫동안 선호도가 떨어졌다. 지방이 많아 쉽게 상하기 때문에 “잘 먹어야 본전”이라고까지 했다. 정부가 축산업 장려 정책을 펴고 돼지가 먼저 기업형으로 대량 생산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회장은 “우리의 미래는 전자와 축산”이라며 1973년 용인 자연농원에 축사 짓고 일본에서 종돈 614마리를 들여와 양돈업에 뛰어들었다. 용인 양돈장은 최대 6만 마리까지 돼지를 길렀는데 양돈업계 반발이 커지자 이 회장 사후인 1990년 문 닫았다.
▶근 100년 전 방신영 이화여전 교수가 펴낸 ‘조선요리제법’에는 돼지고기 중 제일 맛있는 부위로 ‘세겹살’을 꼽았다. 하지만 전통적 고기 요리법은 삶거나 찌는 습열식이었다. 삼겹살은 기름이 뚝뚝 떨어져 숯불이나 연탄에서 굽기도 어렵다. 1980년 출시된 휴대용 가스렌지 ‘부루스타’가 삼겹살구이의 대중화에 큰 기여를 했다. 삼겹살 냉동육이 보급되는 시점에 부루스타가 등장해 음식점에서 쉽게 팔 수 있는 메뉴가 됐다. 일반 가정에서나 야외 갈 때도 휴대용 가스렌지에, 삼겹살 구워 먹는 ‘한국식 바비큐 파티’가 확산됐다.
▶저렴해서 널리 퍼졌는데 이젠 돼지고기에서 가장 비싼 부위다. 국내 생산만으로 부족해 세계 각국에서 수입해 먹는다. 인기가 있자 지방을 덕지덕지 붙인 양심 불량 삼겹살까지 유통되고 있다. 그래서 농식품부가 “소포장 삼겹살은 지방을 1㎝ 이하, 오겹살은 1.5㎝ 이하로 하라’고 ‘삼겹살 품질 관리 매뉴얼’을 만들어 대형마트 등에 보냈다. 유난한 삼겹살 사랑에 생겨난 이색 규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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