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우리의 대안을 조직하자
봄이 오고 있을까? 반도체 시장에 봄이 온다는 기사를 읽으며 중얼거렸다. 윤석열 대통령 말마따나 반도체는 “우리의 생활이고, 안보고, 산업경제 그 자체”가 된 지 오래다. 하지만 모든 나라에서 그렇다 보니 불확실성도 점점 커진다. 누구도 봄을 자신 있게 전망하기 어렵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질문은 다음에 있다. 반도체 시장에 봄이 오면 우리 삶에도 봄이 오나.
연말 윤 대통령은 “역대 어느 정부보다 고용률이 높고 실업률이 낮다”는 성과를 내세웠다. 하지만 늘어난 취업자 수 분포를 보면 이런 모습이다. 음식점에서 일하는 청년, 돌봄일을 하는 여성, 여기저기 60세 이상 노인. 이들 중 자신이 어딘가에 자리를 잡았다고 마음 놓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임금은 낮고 일은 고된데 갑질도 빈번하다. 그래서 구직 포기 청년이 늘어나니 실업률이 낮다. 다른 한편으로는 플랫폼을 통해 일하는 사람이 급증하고 있다. 앱을 쳐다보느라 봄을 기다릴 시간조차 없다. 일해서 빚 갚을 기회는 점점 사라지는데 빚을 갚아야 하니 닥치는 대로 일해야 한다. 왜 이렇게 됐을까.
2000년대 들어 삼성 반도체, 현대 자동차 등 세계로 뻗어가는 대기업의 모습은 ‘한국의 저력’을 보여주는 상징과도 같았다. 그러나 수출이 증가하면서 중소기업도 살고 일자리도 늘던 구조는 1997년 경제위기 전후로 급속히 달라졌다. 재벌 대기업이 질주할수록 대기업과 중소기업 격차는 벌어졌고 고용 창출로 이어지지도 않았다. 정부마다 상생과 일자리를 되뇌었지만 경제 구조를 바꿀 엄두는 내지 않았다. 세계 경제 조건에 따라 수출 대기업은 오르락내리락했지만 다른 모든 흐름은 말라갔다.
대신 가계부채가 흘렀다. 정부 정책과 금융사의 동기가 만나 가계대출이 증가했다. 고소득층은 정부가 부동산시장을 키워준 덕분에 자산을 불릴 수 있었다. 저소득층은 달랐다. 각종 ‘서민금융’ 정책은 ‘빈곤의 금융화’를 이끌었다. 주거비, 생활비, 교육비를 감당하느라 대출이 급했던 사람들, 자영업으로 살길을 찾아보려고 대출을 받은 사람들은 빚에 갇혔다. 가계부채는 한국 경제의 뇌관이 되었다. 경제위기라고 복지가 후퇴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전진했다. 단 시장으로 갔을 뿐이다. 아동 보육, 노인 장기요양 등 제도를 강화해도 삶이 아니라 시장을 지원하게 되는 구조다. 돌봄노동자는 저임금에 시달리고 주 돌봄자는 돌봄시간을 계산하면서 시간제 일자리를 알아본다.
거대 양당은 우리 삶을 위태롭게 만들어온 정책들에서 지나치게 닮아 있다. 그래서 더 시끄럽고 언론에 날카롭다. 대안이 달리 없으니 자신이 더 낫다고 주장할 방법이 상대를 깎아내리는 것밖에 없다. 여기에 질린 사람들에게 손 흔들며 ‘제3지대’에 정치인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념은 같고 인물만 달라진 정당이 ‘기득권 양당’을 깎아내리는 것 말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사회운동은? ‘기성 정치권’을 깎아내리는 것밖에 할 수 없다면 다를 바 없어질 텐데. 여기에서 말문이 막힌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은 긴 시간 동안 서로를 악화시키며 구조화된 문제들이다. 사회운동도 선뜻 대안을 내놓기 어렵다. 하지만 자본주의 체제를 직시하지 않고 대안이 불가능하다면 찾아나서야 한다. 봄을 기다리는 대신 불러오자는 이들과 ‘체제전환운동포럼’(gosystemchange.kr)을 준비하고 있다. 부족한 질문을 서로 채우며 함께 토론하는 시간이 기대된다. 노동의 권리를, 돌봄의 관계를, 지구와 뭇 생명에 대한 감각을 확장하려 고군분투하는 이들이 모이면 서로 발견해주는 것이 있으리라.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를 진단하며 “낡은 것은 가고 새로운 것은 오지 않았다”고들 말한다. 거꾸로는 아닐까. 새로운 것은 와 있는데 낡은 것이 가지 않았다면? 대안을 조직하지 않으면 대안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의 대안을 조직하자.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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