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승우의 풀뿌리] 왜 국가는 외할아버지를 살해했나?
자라면서 외할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한 번도 듣지 못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셨고 외할머니도 어릴 적에 돌아가셨으니 그 존재에 관해 물을 기회가 없었다. 외삼촌과 외할머니를 제외하면 외가 쪽 친척들과 관계가 거의 없었고, 돌아가신 분들 이름 짚으며 족보 따지기 좋아하던 아버지도 외할아버지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워낙 가부장적인 집안이라 그런가보다 생각하며 무심한 시간이 흘렀다.
그러다 외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은 건 사망 당시 기록이 정확하지 않다는 걸 우연히 발견한 조카가 질문을 던지면서이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외할아버지의 존함도 그때 처음 들었다. 그러면서 사망 전에 대구형무소에 계셨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위원회(진실화해위)에 진실규명신청서를 제출했다는 상황도 알게 되었다.
정부는 왜 책임지지 않는가
그리고 작년 10월 진실화해위는 외할아버지가 한국전쟁 발발 이후 대구형무소 재소자 집단살해 사건 때 희생되었다는 진실규명 결정통지서를 보냈다. 최소 1400명 이상의 민간인이 국군 헌병대와 방첩대, 대구지역 경찰에 의해 계곡과 폐탄광 등지에서 살해당했을 때, 두 아이를 둔 서른 살의 외할아버지도 죽임을 당했음이 공식적으로 인정되었다. 진실화해위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군과 경찰이 법적 근거와 절차도 없이 민간인을 집단 학살한 사건임을 인정했다.
기록에 따르면, 외할아버지는 남로당이 부산 범일동에 전단을 살포한 사건과 연루되어 검찰에 기소되었다. 지인의 권유로 남로당 지역 세포에 가입했고 남로당의 전단 20장가량을 전차노상에 살포한 혐의로 검찰은 징역 2년을 구형했고, 부산지방법원도 2년형을 선고했다. 검찰의 기소와 형의 선고까지 걸린 시간이 불과 10일이니 제대로 변호나 받을 수 있었을까. 1950년 2월28일에 형을 선고받은 외할아버지는 3월2일에 상소했고, 5월13일에 대구형무소에 구치된 뒤 7월30일에 군경에 인도되어 살해당했다.
미군정이 끝나가던 1948년부터 전국의 형무소에 수감되는 사람들이 급증했고, 그 수는 적정 수용인원의 두 배를 넘어설 정도였다. 좌우가 대립하고 정치적으로 혼란하던 시기에 이승만 정부는 정치적인 반대세력을 감금했고, 갑작스러운 한국전쟁은 이들을 위협할 명분이 되었다. 그렇지만 전쟁포로의 생명과 권리도 존중받아야 하는데, 하물며 국민이었던 사람들이 아무런 절차도 없이 죽임을 당했다. 이승만의 퇴진 후 억울한 죽음을 밝히려던 유족회는 1961년 5·16 군사쿠데타 이후 반국가단체로 몰려 강제로 해산되었다. 다행히 2005년에 진실화해위가 만들어지고 2기가 활동 중이지만 지금도 드러나지 못한 죽음이 많다.
동료 시민의 자리는 어디인가
사실 이 학살사건을 모르지는 않았다. 한국전쟁을 다룬 역사책에서 접했던 사건이고 그 끔찍함에 분노했던 사건이다. 하지만 뒤늦게 외할아버지의 소식을 알게 되면서 그동안 이해하기 어려웠던 집안의 분위기와 어머니의 침묵과 어둠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그러면서도 근본적인 질문은 사라지지 않는다. 학살의 책임자인 정부는 왜 그 긴 세월 동안 유가족에게 ‘먼저’ 설명하고 사죄하고 책임을 지지 않는가?
지난주 가까운 사람들과 대구광역시 가창면에 있는 10월항쟁 등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위령탑에 다녀왔다. 그곳엔 10월 유족회가 사용하는 낡은 컨테이너 박스와 작은 위령탑이 쓸쓸히 있었고, 위령이라는 말과 어울리지 않는 풋살 클럽과 배드민턴 클럽 건물이 그 앞을 가리고 있었다. 지금도 위령탑에 적힌 이름은 학살당한 사람들의 수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고, 희생자라는 모호한 말처럼 아직 사건에 대한 정명(正名)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다. 다행히 억울한 죽음을 기리는 의로운 시민들의 애도가 위령탑으로 가는 길을 열어줬지만, 핵심당사자인 정부의 애도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전직 법무부 장관이자 대구를 자신의 ‘정치적 출생지’라고 말한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에게 묻고 싶다. 이념과 역사바로세우기가 중요하다는 현 정부는 민간인 학살이 적법했다고 생각하는가? 국가가 민간인 학살을 책임지는 올바른 방식과 재발을 막을 방법은 무엇일까? 그 긴 세월을 침묵하며 살아야 했던 유가족들에게 동료 시민으로서 어떤 애도의 말을 건네야 하는가? 나의 외할아버지 김동환과 함께 희생된 수많은 영혼들이 그 답을 기다린다.
하승우 이후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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