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비례 1번’의 탈당
2004년 총선에서 도입된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는 복수의 정당과 다양한 각계 대표자들을 국회로 진출시켰다. 비례대표 의원들은 소속 정당 지지자를 대표하는 대리인 성격이 강하다. 그중에서도 비례 1번은 여야의 지향점·비전을 대표하는 ‘대리인 1호’로 간주된다.
비례대표 1번의 탈당, 그것도 진보정당 비례 1번이 당을 떠나는 것은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정당 정치 퇴행일 뿐 아니라 진보정당 가치를 최선두에서 부정하는 ‘치명적 사건’이다. 정의당 비례 1번, 류호정 의원이 15일 탈당을 선언했다.
류 의원은 정의당이 4월 총선에서 진보정치 세력과 추진하는 선거연합신당을 운동권 최소연합이라고 몰아세우며 “더불어민주당 2중대로 가고 있는 정의당의 몰락을 막지 못했다”고 했다. 정의당의 정체성 정치를 지적하면서 사실상 민주당이 주도하는 범야권 비례연합신당에 정의당도 조만간 합류할 것이라는 비판이다. 조국 사태, 박원순 서울시장 조문 파동 당시 류 의원 입장을 보면 ‘민주당 2중대론’은 탈당 사유로 설득력이 없지 않다. 평소 진보정치라는 정체성(대리인)보다 의원 개인의 자율성(수탁인)을 중요시했던 성향도 탈당 동력이 됐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런 이유가 류 의원 결정을 합리화할 순 없다. 당의 현실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그래도 미래가 보이지 않으면 당과 함께 가라앉겠다는 각오가 비례 1번의 책임 있는 자세 아닌가. 진보정치의 여성·청년 대표성도 소홀히 여긴 건 아닌지 진지하게 돌아봐야 할 것이다. 노동·생태 등 진보정치의 기존 의제를 확장해 시대 변화에 맞는 새로운 의제를 모색하는 데는 소극적이었던 게 사실이다.
더 심각한 점은 탈당 후 류 의원의 선택이다. 그는 “제3지대에서 류호정의 정치를 하겠다”고 했다. 그간 언론 인터뷰에서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와 제3지대에 합류하게 되면 젠더 문제를 해결할 기회가 될 것”이라고 했다. 양극단 정치를 해소하기 위해 이 전 대표와 손잡을 수 있다는 건데, ‘민주당 2중대’는 거부하면서 ‘보수의 2중대’는 괜찮다는 말인가. 1·2당 사이를 오가는 게 류호정의 정치라면 성공도, 미래도 없다.
정의당 비례 1번 탈당이 남긴 상처가 쉽게 아물지 않을 것 같다.
구혜영 논설위원 kooh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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