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칼럼] 미래 걱정 덜어주는게 저출산 해법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잘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5~10년 정도 이렇게 애들을 안 낳아줘야 저희 세대들이 정신을 차릴 겁니다. 문제가 안 풀릴 때는 남 탓이 아니라 자기 탓을 해야 돼요."
지난해 3월 MBC '100분 토론'의 '출산율 0.78의 공포' 패널로 출연한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는 지난 17년간 저출산 예산으로 380조원을 썼지만 출산율이 하락한 것을 꼬집으며 이같이 말해 수많은 청년들의 공감을 샀다. 그는 "저출산 예산을 많이 썼는데 효과가 없다는 거짓말은 이제 그만할 때가 됐다"며 "의미 있고 굵직한 것들을 바꾸지 않은 건 결국 제대로 안쓴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당 클립 영상은 다양한 경로로 공유되며 250만 조회수를 돌파했다.
2030세대가 아이를 안 낳는 근본적인 이유는 결혼·출산보다 경쟁력 확보를 우선시하는 경쟁적 사회를 꼽을 수 있다. 청년들은 일자리·주거·사교육비 등 경제적 이유와 함께 육아로 인해 커리어를 포기해야 하는 등 불안정한 상황을 차단하고자 출산을 포기하게 된다고 얘기한다. 전문가들은 1997년 IMF 외환위기와 2000년 사교육 열풍,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0년 전셋값 폭등, 2019년 코로나19 팬데믹 등을 경험한 2030세대의 내면의 문제도 들여다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고등학교 졸업 후 일찍이 대기업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20대 중반에 개인사업을 시작한 재테크·자기계발 유튜버 뿅글이는 하루하루를 열정적으로 채워 또래보다 많은 것을 빨리 이뤘다. 아파트를 한 채 구입했고, 재테크 책을 출간해 베스트셀러에 올리기도 했다. 사업도 근성으로 차근차근 키워가고 있는 비교적 성공한 청년인 그가 최근 유튜브 영상을 통해 전한 소신은 요즘 2030세대를 대변하고 있었다. 그는 "2년 후 결혼 계획이 있지만 아이를 낳을 생각은 없다"며 "현실을 개척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이 삶을 아이에게 똑같이 하라고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이어 "학비 등 아이에게 들어가는 자금도 그렇고 아이를 키우려면 2배로 힘들 것 같다"며 "시간적·상황적·자금적으로 아이를 유복하게 키워내기에 적합하지 않은 환경"이라고 덧붙였다.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청년의 깊은 고민이 드러나 찡한 감동이 들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여성 1명당 15∼49세 사이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은 0.70명으로 1년 전보다 0.10명 줄었다. 지난달 초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의 칼럼니스트 로스 다우서트는 '한국은 소멸하는가'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한국의 인구 감소에 대해 "14세기 흑사병이 유럽에 몰고 온 인구감소를 능가하는 것"이라고 짚었다. 그는 "이 같은 추세가 계속되면 불가피한 노인 세대의 방치, 고령층 부양 부담에 미래가 보이지 않는 젊은 세대의 해외 이민이 나타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저출생과 함께 고령화도 가속화하고 있다. 올해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100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주민등록 인구통계를 집계한 이래 지난해 처음으로 70대 이상 인구(631만9402명)가 20대(619만7486명)를 앞질렀다. 65세 이상은 늘었지만 15~64세 생산가능인구는 줄었다.
평균수명이 길어짐에 따른 고령화 사회는 저출생 위기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생산가능연령(15~64세) 40여년 동안 퇴직 후 30년을 살아갈 자금을 모아야 하니 무엇보다 개인의 경제활동에 집중해야만 한다. 여기엔 국가가 노년을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김태유 서울대 산업공학과 명예교수는 "지금까지 출산율을 높이는 데만 정책적 역량이 집중됐으나 거시적 대책을 병행해야 한다"며 "출산율 제고 노력 일변도에서 부양비 개선으로 선회할 때가 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55~74세 장년층을 청년들과 함께 일하는 경제활동인구로 바꾸면 사회적 잉여와 늘어난 평생수입으로 국가는 4차산업혁명을 성공하는 미래로 발전시킬 수 있고 개인은 노후를 유복하게 즐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청년층이 신체적 능력과 유동지능을 활용하는 직업에 종사하다 장년층에 들어서 경륜과 결정지능을 활용하는 직업으로 갈아타는 방법을 제안했다.
정부는 "일할 수 있는 어르신들이 조금 더 길게 일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미래세대 부담을 덜어주는 방향으로 여러 가지 제도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힌 만큼 지금까지와는 다른 차원의 정책적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 인센티브 위주의 실효성 없는 정책을 벗어나려면 김태유 교수 등 학자들과 이 시대를 살아가는 국민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할 것이다.
기업도 할 일이 많다. 출산·양육 문화 정착을 위한 노력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근로자들이 장년기에 들어섰을 때 연령대에 맞은 일을 연결해서 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교육 지원이 필요하다. 어쩌면 장기적으로 인력난 해소를 위한 해법이 될 수도 있다. eh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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