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창원의 기업가정신] 성장통 겪는 ESG의 미래

조창원 2024. 1. 15.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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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수익중심 경영 회귀
사회 기여 반대론 힘얻어
장기 투자관점 판단할 때
조창원 논설위원
‘친환경·사회적 책임·지배구조'를 뜻하는 ESG(Environment·Social·Governance)가 연초부터 시험대에 섰다. 발단은 최근 미국 유력 언론이 미국에서 ESG가 퇴출당하고 있다고 보도하면서다. 구체적으로 지난해 2·4분기 기준으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에 반영되는 미국의 500대 기업 중 보고서에서 ESG 경영원칙을 언급한 업체는 61개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ESG 퇴조 배경으로 두 가지가 거론된다. 우선, ESG경영을 표방한 기업들의 경영성과, 즉 수익이 안 좋다는 점이다. 그래서 ESG 기업들을 포트폴리오로 담은 펀드 출시가 급감했다. 또 다른 외신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55개 출시됐던 ESG펀드가 하반기에는 단 6개 출시되는 데 그쳤다고 한다. 아울러 ESG에서 표방하는 경영목표가 자본주의 원칙과 상충된다는 보수층의 시각이 거세다는 점이다. 기업 정책에 입김이 세고 주요 고객인 보수층의 거부감을 거스르지 않겠다는 기업의 의도가 엿보인다.

대략 2020년부터 한국에도 ESG 열풍이 본격화됐다. 갑작스러운 ESG 폐기 소식에 당황스러울 뿐이다. 우리도 ESG 대열에서 궤도를 수정해야 할지 고민에 빠질 것이다. 한국은 ESG에 대해 태생적으로 '의사결정 장애'를 겪을 수밖에 없다. 선진국들의 ESG 행보에 부랴부랴 뒤따라 했으니 휘둘리는 건 당연지사다.

섣부른 판단에 앞서 ESG의 급격한 퇴조 배경을 살펴봐야 한다. 코로나19가 발발한 뒤 ESG 경영을 위한 환경은 매우 악화됐다. 코로나뿐만 아니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의 여파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이는 경기침체, 소비위축, 고금리, 원자재 가격 폭등, 인플레이션이라는 각종 불확실성을 낳았다. 수익 중심의 경영 기조에서 ESG로 전환은 막대한 투자 확대와 비용의 감내가 요구된다.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이 ESG 흐름에 브레이크를 건 셈이다.

ESG를 둘러싼 이념 간 충돌도 수면으로 떠올랐다. 원래 기업은 수익을 내는 집단이며, 그 자체로 사회에 기여한다는 주장이 지배적이었다. 이러한 주주 자본주의의 대항마로 나선 논리가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의 개념을 피라미드 모형으로 정립한 아치 캐럴 교수는 1979년 발표한 논문에서도 이해관계자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어서 에드워드 프리먼 교수의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라는 논문은 이해관계자 이론 확산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우리는 이러한 논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까. ESG 퇴조가 불러올 첫 번째 시나리오는 속도조절론이다. ESG를 주도해온 선진국 기업들조차 수익 확보에 고전하다 보니 ESG 목표 달성 시기를 늦추려는 행보가 엿보인다. 최근 미국 등 주요국의 ESG 공시 의무화가 지연됐다. 최근 우리나라 금융위원회도 새로운 ESG 공시 의무화 적용 시점을 2026년 이후로 연기했다. 그러나 속도조절론은 시행 시기를 뒤로 미뤘다는 얘기일 뿐 전격 폐기를 뜻하지 않는다.

ESG에 대한 기업의 역할 논쟁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기업이라는 공급자 주도 시장일 경우 이익 중심 자본주의 목소리가 힘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글로벌 상품시장은 기업 공급자 주도에서 시장 수요자 중심으로 이동 중이다. 주주 이익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놓칠 수 없는 환경이다. 과거 이해관계자 관점이 기업의 비용 부담이었다면 시장 환경은 갈수록 투자 관점으로 변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ESG 담론이 퇴보하더라도 최소한 CSR 혹은 지속가능경영 수준에서 재논의될 수 있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CSR 혹은 지속가능 관점에서도 선진국 기업들 수준에 못 미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한마디로 현재 벌어지는 ESG 퇴보 논쟁은 성장통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합리적 선에서 속도조절은 가능하되 긴장의 끈을 놓아선 안 될 경영화두임은 분명하다.

jjack3@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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