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 23번째 완창하는 김정민 "시대따라 공연 방식 변해야죠"
(서울=연합뉴스) 강애란 기자 = "판소리를 돗자리 펴놓고 병풍 앞에 서서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시대가 바뀌었잖아요. 무대를 적극 활용해야죠."
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흥보가' 이수자인 명창 김정민(55)은 15일 서울 중구 소공동 한 일식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판소리 공연의 모습을 이같이 밝혔다.
김정민은 고(故) 박송희 명창의 제자로, 박 명창으로부터 '흥부가'와 '적벽가'를 사사했다. 2013년부터는 판소리 다섯바탕 완창 무대를 선보이기 시작해 지난해 22번째 무대까지 마쳤다. 오는 20일 돈화문국악당에서는 23번째 완창 무대로 '흥부가'를 선보인다.
김 명창의 무대는 "재밌다"는 평이 자자하다. 공연 티켓도 일찌감치 매진됐다. 그도 그럴 것이 김 명창의 공연은 여느 판소리 공연과는 다르다. 병풍 대신 영상이 배경으로 쓰이고, 담장, 박 등의 소품도 무대에 오른다. 의상도 치마폭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고무신까지 꼼꼼하게 신경 쓴다.
김 명창은 "이번 공연을 위해서는 애니메이션을 직접 제작했다"며 "관객들의 이해를 돕는 '흥부가'의 주요 대목을 담은 장면이 책장을 넘기듯 무대 뒤에 영상으로 나온다"고 설명했다.
이어 "요즘 사람들은 듣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는다"며 "부채를 접었다 폈다 하는 것만으로는 사람들을 3∼5시간 동안 붙잡을 수 없다"고 말했다.
김 명창은 무대 위에서도 분주하다. 사방팔방 돌아다닌다. 스승에게 "아야, 너무 요란하게 돌아다니는 것 아니냐"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판소리는 관객과 멀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김 명창은 "판소리는 옛날 것이 아니고, 고루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는 "극 중 인물도 다 바꿔서 소리 낸다"며 "흥부 아들 중 한명을 '짱구' 목소리로 내기도 하고, 대목에 음식을 차리는 장면이 나오면 전 부치는 소리를 내기도 한다"고 말했다.
"시대가 변하면 판소리도 변해야 해요. 누군가는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조상들이 남겨놓은 원재료가 워낙 풍부하니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는 거죠."
사람들 가운데는 김 명창의 소리는 듣지 못했어도 그의 얼굴을 기억하는 이들도 더러 있다.
그는 우리 소리를 소재로 한 영화 '휘모리'(1994)에 주인공으로 출연하며, 대종상영화제 여우신인상을 탔다. 또 '판소리 홍보대사'를 자처하며 방송과 기업, 학교, 기관 등에 판소리의 우수성을 전파하는 강연을 해왔다.
김 명창은 다양한 활동을 하는 이유에는 '이렇게 좋은 걸(판소리를) 사람들이 모르니까 알리고 싶다'는 마음이 크다고 했다. 그러면서 해외에서 환대받는 판소리가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외면받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했다.
김 명창은 '오페라의 본고장' 이탈리아에서 2019년 완창 무대를 선보인 이후 매년 러브콜을 받고 있다. 2022년 6월에는 밀라노에 있는 1천400여석 규모의 테아트로 달 베르메 극장에서 '적벽가' 공연으로 좌석을 매진시켰다. 'K-판소리'가 입소문을 타면서 이탈리아 다큐멘터리 감독 레오나르도 치니에리 롬브로조의 제안으로 다큐멘터리 '오페라 솔로'(가제)도 현재 촬영하고 있다.
김 명창은 "판소리를 들은 이탈리아인들이 '오페라'가 한국에서 시작된 것 아니냐고 할 정도로 현지에서 인기가 좋다"며 "반나절이면 표가 매진될 정도"라고 말했다.
이어 "반면 한국에서는 완창 공연 티켓값이 거의 2만원으로 고정돼 있고, 이마저 안 팔려 보통 가족, 지인 등을 초대석으로 채운다"며 "무대가 없으니 제자들이 돈을 벌겠다며 다른 길을 알아보는 일이 비일비재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판소리 '붐'이 일어서 소리하는 사람들이 무대에 설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제가 완창 무대에 계속 서고, 국악 콘서트 같은 새로운 형식의 공연을 하는 것도 다 이를 위해서죠. 사람들에게 판소리가 옛날 것이 아니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게 제 목표에요."
ae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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