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유일호 전 경제부총리 | “韓 경제성장 위해선 의료·유통 등 서비스산업 고도화해야”
박근혜 정부 마지막 경제 수장이었던 유일호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2024년 갑진년을 맞아 진행한 신년 인터뷰에서 한국의 장기적 과제로 ‘저출산 문제 해결’을, 단기적 과제로 ‘서비스 산업 육성’을 꼽았다.
유 전 부총리는 합계 출산율 0.6을 바라보는 낮은 출산율에 대해 “경제적 요인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결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분위기가 형성된 영향이 크다”면서 “주거 비용, 육아 비용 부담을 줄여주는 정책을 넘어 사회·문화까지 아우르는 대응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했다.
그는 또 “한국의 경상수지가 흑자를 유지하기 위해선 무역수지도 중요하지만, 서비스수지도 개선돼야 한다”며 “서비스수지가 흑자를 기록하려면 국내 서비스산업이 발전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 서비스산업이 그만한 지위에 올라와 있나. K팝과 일부 영상 콘텐츠를 제외하곤 선진국에 비해 부족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윤석열 정부 1기 경제팀의 성과에 대한 질문에는 “직접적으로 ‘성과가 무엇이냐’라고 묻는다면, 즉답하기 어렵지만, 방향은 잘 잡았다”고 했다.
고물가와 고금리, 자국 보호무역주의 확산, 지정학적 충돌 등 돌발 위기가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상황에서 위기를 키우지 않고 안정적으로 관리한 점을 높게 평가한 것이다.
유 전 부총리는 경기 부양에 대한 부담감과 야당의 지속적인 재정 지출 확대 요구에도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하지 않고 재정 운용을 보수적으로 한 것도 “매우 잘한 일”이라고 했다. 그는 “새해에도 세수 흐름은 안 좋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재정을 많이 풀 수 있는 여력이 없는 만큼 재정 자체를 보수적으로 운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유 전 부총리와 일문일답.
윤 정부 출범 이후 경제 흐름과 성과는.
“‘성과가 무엇이냐’라고 직접적으로 물으면 할 말이 없긴 하지만 세계적인 고금리 기조와 고물가 등 어려운 거시경제 여건 속에서도 잘 버텼다고 평가한다. 특히 연금·노동·교육 등 3대 개혁을 국정과제로 제시한 것은 잘한 일이다. 방향을 잘 잡았다.”
3대 개혁이 좀처럼 속도가 안 난다는 평가도 많다.
“아쉬운 부분이지만 이해는 된다. 3대 개혁은 정부 혼자 할 수 없다. 특히 노동 개혁은 같이해야 할 사람들이 안 하겠다고 한다. 국회도 설득을 해야 하는데 여소야대 국회 상황으로 인한 한계도 분명히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3년 12월 26일 열린 마지막 국무회의에서 3대 개혁과 함께 저출산 문제를 이야기했다.
“이제 저출산은 그동안 해오던 정책적인 접근만으로는 해결이 어려울 것이다. 문화가 바뀌었다. 예전과 달리 요즘 세대는 결혼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결혼을 안 하는데 아기를 어떻게 낳겠는가. 교육비, 주거비 부담도 분명 영향을 주지만, 이 때문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결혼을 안 해도 된다는 세대 간 인식 차이가 있는 만큼 사회·문화적 요소를 아우르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
2기 경제팀의 최우선 과제는 무엇이라고 보나.
“장기적으로는 경제성장률을 높이고, 단기적으로 경기가 회복될 수 있도록 정책을 펼쳐야 한다. ‘개방경제’를 지향하는 한국은 대외 관계 관리가 중요하다. 한중 관계도 한미 동맹 못지않게 중요하다. 안보적으로는 미국과 관계를 두텁게 하되, 경제적으로는 중국과 서로 잘 이해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대중 관계 개선과 함께 다른 과제를 꼽자면.
“거시경제에선 결국 경상수지다. 현재 무역수지 흑자를 바탕으로 경상수지 흑자를 이어가는 것은 긍정적인 시그널이다. 2020년 이후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이후 대외 부문이 악화하면서 무역수지가 적자 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무역수지가 적자로 전환하지 않도록 수출 확대에 신경을 써야 한다. 자동차와 반도체 등 주력 산업을 키우면서, 동시에 방산 등 신흥 산업에도 역점을 둬야 한다. 우리가 강한 조선도 현재 호황이지 않나. 이럴 때 치고 나갈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을 해야 한다.”
무역수지는 괜찮은데, 서비스수지는 상황이 좋지 않다.
“서비스수지가 좋아지려면 우선 국내 서비스산업이 발전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서비스산업이 그만한 지위에 올라와 있나. K팝과 일부 콘텐츠를 제외하곤 선진국에 비해 부족한 수준이다.”
의료 산업 육성 등 여러 아이템이 있었지만, 빛을 보지 못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서발법)을 추진했다. 서발법의 핵심 중 하나가 의료 산업 육성이었다. 어떻게 됐나. 여전히 국회에 12년째 계류 중이다. 특히 의료는 장래성이 큰 산업이다. 빠르게 성장 중인 바이오산업과 이으면 강력한 시너지를 낼 수 있다.”
하지만 논의가 지지부진하다. 원격의료가 대표적인데, 이제 인공지능(AI)이 의료의 핵심 영역이 됐다. 사회적 논의가 너무 늦다.
“의료 서비스 질 제고 차원에서 논의한 ‘원격의료’도 ‘의료 민영화’라는 프레임에 갇혀 발을 떼지 못했다. 이제는 원격의료를 넘어 AI 진료라는 새로운 장이 열리는 시기다. 문제는 국회의 벽을 넘지 못하고 ‘보틀넥(병목)’에 걸려 있다는 점이다.”
의료 외에도 유통과 관광 분야도 규제가 풀리지 않는다. 대형마트 휴일 휴무와 휴일 배송 금지는 온라인 업체와 경쟁을 생각하면 불공정한 측면이 있다.
“정확히 말하면 대형마트 규제가 아니라, 대기업이 운영하는 대형마트 규제다. 전통시장을 살리겠다며 규제했는데, 실제로 그런 효과가 있었나. 소비자 후생만 악화시킨 전형적인 ‘탁상공론’ 규제다. 정치인 시절 지역구 돌아다니면서 전통시장 상인들로부터 이야기를 들었는데, ‘대형마트’가 아니라 ‘대형마트가 아닌 척하는 중대형 마트’가 더 문제라고 하더라. 최근 지역별로 휴일 휴무가 아니라 평일 휴무식으로 전환하는 것 같던데, 기업의 자율에 맡길 필요가 있다고 본다.”
물가 상황은 어떻게 보나. 정부의 물가 대책도 평가하자면.
“물가 대책은 선방했다고 본다. 통화 당국이 어려운 상황에서 노력한 결과다. 물가의 확실한 안정은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방어했다는 측면에서는 칭찬하고 싶다. 다만 고물가와 고금리의 후유증으로 내수가 타격을 받았다. 정부로선 내수 진작 방안을 고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내수를 살리겠다며 재정을 푸는 건 올바른 방향이 아니다.”
재정 건전성 강화를 목표로 재정준칙 도입을 시도했으나 2023년에는 무산됐다. 박근혜 정부 때도 재정준칙 도입을 추진한 바 있다. 재정준칙은 왜 필요한가.
“경제부총리 임기 당시 국가 채무를 국내총생산(GDP)의 45% 이내로 유지하는 내용의 재정건전화법을 발의한 바 있다. 현재 한국의 재정 상황은 허리띠를 조이고, 고통을 분담해야 할 타이밍이다. 전 정부 동안 국가채무 비율이 너무나 빠르게 상승했다. 재정을 많이 풀 수 있는 여력이 없는 만큼 재정 자체를 보수적으로 운용해야 한다. 지금 경제부총리로 일한다고 해도 재정준칙 통과를 위해 상당히 공을 들였을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세제 개편을 추진해야 할 부분은 무엇이라고 보나.
“우선 종합부동산세는 대폭 개편해야 한다. 징벌적으로 세금을 매기는 것은 경제 이론상으로도 좋지 못하다. 종합부동산세 개정안이 국회에서 처리되지 않으니, 일단 정부로선 공시 가격 현실화율을 조정하는 수준에서 세 부담을 완화하는 선에 그치고 있다. 상속·증여세도 손봐야 한다. 현재 정부가 유산세에서 유산취득세로 전환을 고민하고 있는데, 유산취득세가 합리적이라고 본다. 상속세율도 너무 높다. 2, 3세에게 기업을 물려줄 경우 후손이 사업을 영위하기 어려울 정도로 세금이 부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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