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기고] 박한진 한국외대 중국외교통상학부 초빙교수 | 미·중 수교 45주년 맞이한 中, 경제성장·민생 안정 주력할 듯
중국은 올해 양호한 경제성장을 유지하기 위해 공급 측면의 개혁 심화와 낡은 제조·시스템 개선에 집중할 것이다.
5% 성장률을 목표치로 제시할 가능성이 더욱 커진 것으로 판단한다. 실물 경제에 큰 충격을 준 공동부유와 테크 기업 단속 등은 정책의 강도와 시기를 신중하게 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의 한 해 거시 경제를 관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전년도 말에 열리는 중앙경제공작회의의 정책 기조와 방향을 파악하고, 이어 나오는 국가주석의 신년사를 분석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예외 없이 일맥상통한다.
중국은 특정한 날이 돌아올 때 주년의 끝 단위가 5, 10인 것을 강조한다. 2024년은 중국에 있어 매우 의미 있는 한 해다. 올해는 신중국 설립 75주년이자, 미·중 수교 45주년이며, 중·러 수교와 북·중 수교가 각각 75주년 되는 해다. 불확실성이 크지만 △미·중 관계 일부 유화 움직임과 2024년 미국 대선 △중·러 및 북·중 간 협력 강화와 전통적 우호 관계 발전 등의 흐름을 고려한다면 중국은 올해 경제를 안정적으로 관리해서 신중국 설립 75주년을 맞이하고 싶을 것이다.
중앙경제공작회의에서 드러난 새해 거시 정책 기조
새해 경제정책의 기조는 12자 방침이다. ‘온중구진(穩中求進)·이진촉온(以進促穩)·선립후파(先立後破)’ ‘온중구진(안정 속 성장)’은 2021년 이후 매년 나오는 말인데 코로나19 후유증을 관리하면서 경제성장을 한다는 전략이다. ‘성장을 통해 안정을 촉진한다’는 ‘이진촉온’과 ‘먼저 세운 후 돌파한다’는 ‘선립후파’는 이번에 처음 나온 말이다. 12글자에 담긴 메시지는 안정 속에 성장 기조를 유지하고, 정책의 강도와 속도를 조절한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예상되는 중요 정책 방향은 다음과 같다.
우선 신년 경제성장률 목표치를 보자. 중국은 올해 양호한 경제성장을 유지하기 위해 공급 측면의 개혁 심화와 낡은 제조·시스템 개선에 집중할 것이다. 5% 성장률을 목표치로 제시할 가능성이 더욱 커진 것으로 판단한다. ‘역주기(逆周期·금리 인하, 세금 감면 방식의 경기 부양책) 조절’과 ‘과주기(跨周期·산업 규제 철폐 등 거시 정책) 조절’도 언급됐다. 정부가 적극적인 재정 정책과 안정적인 통화정책을 연중 시행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실물 경제에 큰 충격을 준 공동부유와 테크 기업 단속 등은 정책의 강도와 시기를 신중하게 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공동부유 및 기업 단속이 경제 전반에 준 충격을 지도부가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 중요하게 다룬 분야는 집중 육성 산업과 신소비 성장 영역 그리고 부동산 리스크 관리다. 첨단제조업을 핵심으로 현대화된 산업 체계를 구축하는 ‘신형 공업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디지털 경제를 발전시키며 인공지능(AI)의 발전을 가속한다는 방침을 확인했다. 특히 3가지 방향성을 거의 선언문을 채택하듯이 내보인 것이 주목된다.
△디지털 경제와 AI는 지난해 이미 초점이 됐고 앞으로 이 방향성은 변하지 않을 것
△녹색 및 저탄소 공급망 건설을 가속할 것 △바이오 제조, 우주산업 상용화 등 전략적 신흥 산업을 지속 추진하고 양자 생명과학 등 미래 산업의 새로운 트랙 개척 등이다.
회의에서는 전통적 소비 영역의 회복, 신재생에너지 자동차, 전자제품 등의 대량 소비 확대를 강조했다. 또한 의약·반도체 분야의 기술도 언급해 관련 자본시장이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 신소비 영역에서는 디지털 소비, 녹색 소비와 건강 소비를 발전시키고 AI 가구, 문화·오락, 관광, 스포츠 경기, 중국산 브랜드(国潮·궈차오)가 새로운 소비의 성장점이 되도록 하는 정책이 예상된다.
2024년에는 부동산 및 지방 부채, 중소 금융기관의 위험을 조정하고 불법 금융 활동을 단속할 공산이 크다. 부동산은 구조적으로 워낙 복잡하고 민감성이 커서 큰 충격 없이 거품을 빼는 작업을 서서히 진행할 것이다. 부동산 산업이 붕괴하는 일은 올해도 없을 것이다. 대신 점진적인 조정 과정에 성공한다면 새로운 주택 공급 모델이 자리 잡아 갈 수 있다고 본다.
올해 신년사, 경제성장, 민생 안정에 방점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강조한 키워드는 경제성장과 민생 안정이다. 신년사의 상당 부분에서 2023년의 성과를 집중적으로 강조하면서도 경제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음을 인정했다. 시선을 끄는 것은 대외적으로 개혁·개방과 대내적으로 혁신·발전을 강조하면서 국가의 핵심 과제인 ‘중국식 현대화(中國式現代化)’를 추진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한 점이다. 대만 대선과 관련해서는 경계하면서 조국 통일을 강조했다. 중국은 민진당(여당) 후보보다는 야당인 국민당 후보를 더 선호하지만, 어느 쪽에 대해서도 크게 기대하지는 않는 분위기다.
올해 중국 경제를 견인할 핵심축은 무엇일까. 투자, 소비, 수출 가운데 개혁·개방 이후 중국 경제를 이끌어온 원동력은 투자였다. 투자의 경우 이제 약발이 떨어졌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효율성이다. 과거에는 1위안의 경제 성과(GDP)를 창출하는 데 평균 3위안이 필요했다. 지금은 9위안 이상 소요된다. 인건비가 생산성보다 더 올랐기 때문이다.
둘째는 부채 문제다. 장기간의 투자는 부채를 유발할 수밖에 없다. 부동산과 사회간접자본(SOC) 건설이 대표적인 사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 시장이 얼어붙자, 수출 여건이 어려워진 중국은 약 10년에 걸쳐 부동산과 SOC 건설에 집중했다. 그 결과 성장률은 끌어올렸지만, 부채가 누적됐고 2020년 이후 국가 경제의 뇌관이 되어 중국을 괴롭히고 있다.
소비는 약효는 좋은데 속도가 느리다. 소득의 증가가 뒷받침돼야 하는데 여기에도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시간이 필요하다. 특히 중국처럼 거대 인구 대국에서 국내총생산(GDP)을 높이는 일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1년, 2년은 물론 5년 단위의 경제 발전 계획으로도 국민 실질소득 증가율은 더디기만 하다. 둘째 소득 올리는 일을 누가 담당할 것인가의 문제도 있다. 일자리를 제공하고 소득을 분배하는 역할은 기본적으로 기업의 몫이다. 하지만 지금 기업 상황이 녹록지 않다. 임금을 올리기 어려운 시기다.
그렇다면 중국은 중장기적 관점에서 소득 제고 기반을 다지고 소비 촉진 정책을 펴나가면서 추가로 경제 효과를 창출하는 카드를 쥐어야 하는 시기다. 중국 경제와 산업의 특성을 고려한다면 제조업을 기반으로 통상 역량을 십분 활용하는 것이 유리하다. 미·중 관계가 해빙 분위기를 보이면서 중국은 한동안 접어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카드를 만지기 시작했다. CPTPP는 중국의 핵심 통상 과제다. 수년 동안 관계를 끊다시피 해온 중국과 호주가 CPTPP를 고리로 관계 회복의 수순을 밟아가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 하반기에 CPTPP의 2300여 개 모든 조항에 걸쳐 깊이 있게 검토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일부 지역부터 점진적으로 개방하는 방식을 골자로 한 전략으로 앞으로 협상 테이블에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개혁·개방 초기 일부 지역에 경제특구를 먼저 열고 ‘점선면(點線面)’ 전략으로 개방했던 것과 유사한 방식이다. 예를 들면 ‘조건부 자유무역시험구’ 즉 ‘하이난(海南) 자유무역항’ 카드를 CPTPP 협상 테이블에 내밀 수 있다. 만약 이 방식이 현실화한다면 올해 국제 통상 영역에서 큰 이슈로 떠오를 것이다. 대중국 수출이 추세적으로 위축되고 있는 한국도 해외시장 확대라는 측면에서 세심하게 관찰할 부분이다. 올해는 중국에 대한 과도한 논쟁을 하기에는 너무 중요한 시기다. 그보다는 중국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세심하게 관찰하기를 제안한다. 그것이 우리 국익에 도움이 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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