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영의 사진집 이야기 <71> 사무엘 제임스(Samuel James)의 ‘Nightairs(밤공기)’] 반딧불 빛의 아름다움이 주는 환경에 대한 경각심

김진영 2024. 1. 15.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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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 제임스(Samuel James)의 ‘Nightairs(밤공기)’ 표지. 사진 김진영

반딧불은 오랜 시간 유충으로 살다 일생의 마지막 짧은 순간에 생체 발광으로 의사소통을 한다. 색상, 패턴, 지속 시간, 서식지, 시간대, 계절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는 반딧불의 섬광은 1~2년가량의 수명 주기가 끝나는 늦봄과 여름의 따뜻한 밤에 잠깐 나타난다. 습하고 나무가 많으며, 달팽이나 지렁이 등 먹이가 풍부한 생태 환경이 잘 보존된 곳에서 살아가는 반딧불은 도시화가 가속화되면서 쉽게 만나기가 점차 어려워졌다.

사무엘 제임스(Samuel James)는 이러한 반딧불을 보기 위해 캐나다와 미국에 걸쳐 거대하게 존재하는 애팔래치아산맥으로 향했다. 총 스물여섯 종의 반딧불이 서식한다고 알려진 미국 오하이오주의 삼림지대와 초원에서 그는 2019년부터 2022년까지 네 번의 여름에 걸쳐 반딧불을 계속 지켜보았다. 지역에 사는 사람들도 쉽게 보기 어려운 반딧불을 보기 위해 그는 사람이 다니는 길에서 멀리 떨어진 장소에 밤마다 인내심을 가지고 장비를 설치하고 반딧불을 기다렸다. 해 질 녘에 출발해 새벽까지, 밤마다 이 행렬을 따라다녔다.

김진영사진책방 ‘이라선’ 대표, 서울대 미학과 박사과정

‘Nightairs(밤공기)’는 사무엘 제임스가 숲속에서 반딧불이 생의 마지막에 만들어내는 일시적인 빛의 세계를 탐험한 책이다.

사진의 고유한 특수성 중 하나는 사진이 빛에 반응해, 빛의 흔적을 기록한다는 것이다. 사진은 빛의 경로, 강도, 색상 등을 포착해 시각적으로 매혹적인 이미지를 생성한다. 사진가들은 피사체가 스스로 내는 빛이든, 자연광이나 인공조명을 받아 반사되는 빛이든 다양한 빛의 성질에 주의를 기울여 작업에 임한다.

그런데 사진에 담기는 빛의 양을 조절한다는 것은 셔터가 열려 있는 시간을 조절하는 일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셔터를 짧게 열어 찰나의 빛을 담을 것인가, 아니면 셔터를 길게 열어 지속적인 빛을 담을 것인가의 문제인 셈이다.

제임스의 사진에서 어떤 반딧불은 점의 형태로, 또 어떤 반딧불은 선의 형태로 담겨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는 반딧불이 움직이는 속도와 셔터가 열려 있는 시간이 상호작용한 결과다. 반딧불의 속도보다 셔터가 짧게 열렸다면 반딧불은 정지해 있는 점으로, 반딧불의 속도보다 셔터가 길게 열렸다면 반딧불은 자유롭게 이동하는 선처럼 표현되는 것이다.

책에는 숲속에서 반딧불이 생의 마지막에 만들어내는 일시적인 빛의 세계가 담겼다. 멀리서 담아낸 반딧불과 가까이에서 포착한 반딧불이 가져다주는 시각적 차이를 넘나들며 책이 전개된다. 멀리서는 반딧불의 움직임이 매우 잔잔하고 고요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카메라와 반딧불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반딧불이 급습해 오는 듯한 역동성을 느낄 수 있다. 사진 김진영

반딧불은 종에 따라 각기 다른 속도와 높이에서 날아다닌다. 제임스는 이렇게 말한다.

“각각의 작은 곤충은 자신의 이야기를 전한다. 특히 늦은 밤에 장시간 노출시키면 반딧불이 급습하는 선과 소용돌이처럼 나타나는 거의 추상적인 구성이 만들어졌다. 굉장히 수학적인 일이다. 예를 들어 황혼의 짙은 파란색은 하루에 약 10분 동안 지속되므로 정확한 색상을 포착하고 장노출로 반딧불을 촬영하려면 정확히 10분을 선택해야 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빛이 모이게 된다. 그게 바로 사진이다.”

이러한 시간의 조절은 스스로 발광하는 반딧불이라는 피사체를 찍는 데 있어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는 훌륭한 수단이 된다. 제임스의 카메라를 통해 몇 초간의 짧은 노출을 통해서는 각각의 빛을 담을 수 있었고 길게는 한 시간에 이르는 장노출을 통해서는 선이나 소용돌이와 같은 추상적인 빛의 행렬을 담을 수 있었다.

반딧불의 빛이 자연 속 다채로운 요소와 결합한 결과, 구상과 추상이 혼합된 독특한 풍경이 만들어졌다. 제임스는 다양한 노출 시간으로 기록된 이 사진들이 “빛나는 빛과 어두운 멈춤에서 비롯된 일종의 악보를 떠올리게 한다”고 말한다.

가볍게 일렁이는 밤공기와 그 사이를 가볍게 유영하는 반딧불을 표현하는 이 책은 무거운 양장 제본 대신 가벼운 페이퍼백으로 만들어졌다. 반딧불의 노란 빛을 닮은 노란색 실로 제본돼 있는데, 양쪽으로 펼쳐진 각 이미지는 중앙의 제본 부위를 자연스럽게 흘러 넘어간다. 또한 검은 무광지와 노란색 글자를 사용하는 방식을 통해 책 전반에 걸쳐 빛과 어둠을 풀어낸다. 종이, 잉크, 실 등 책을 만드는 데 필요한 기본 재료들이 서로 어우러져 반딧불의 향연을 표현한다.

또한 이 책은 멀리서 담아낸 반딧불과 가까이에서 포착한 반딧불이 가져다주는 시각적 차이를 넘나들며 전개된다. 멀리서는 반딧불의 움직임이 매우 잔잔하고 고요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카메라와 반딧불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반딧불이 급습해 오는 듯한 역동성을 느낄 수 있다.

사무엘 제임스는 이처럼 아름답지만, 점점 접하기 어려워지는 반딧불의 모습을 통해 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반딧불은 환경에 대한 민감성으로 인해 환경 변화에 무척 취약한 곤충으로, 도시화와 산업화로 인해 현재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생태계에 대해 제임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반딧불의 생존에 필수적인 것은 빛을 발하는 장소인 어둠, 화학물질이 없는 수분을 유지하는 토양과 낙엽 그리고 대부분의 생애를 애벌레로 보내며 먹이를 찾는 장소, 번데기가 되고 암컷이 알을 낳을 적당한 장소다. 서식지 상실, 농약, 빛 공해가 모두 위협이 된다. 사진에 일시적으로 포착된 장면은 경고성 울림을 가지고 있으며, 많은 빛의 향연이 영원한 과거가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들의 서식지가 재생될 수 있다면, 빛의 방언은 계속 진화하여 풍경과 함께 적응해 나갈 것이다.”

이 책은 반딧불의 아름다움과 함께 반딧불이 처한 현실에 대한 이 같은 성찰을 담고 있다. 사무엘 제임스가 포착한 반딧불의 모습이 앞으로도 계속 만날 수 있는 풍경이 될지, 아니면 시간이 흘러 반딧불이 존재했던 시대의 과거 기록으로 남을지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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