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갑수의 여행이라는 꽃다발 <33> 전남 보성·장흥] 맛있는 음식과 고즈넉한 한옥…보성·장흥 힐링 여행 속으로

최갑수 2024. 1. 15.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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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휴식은 모든 여행객의 공통적인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번잡한 일상에서 벗어나 운치 있는 한옥에서 그윽한 쉼의 시간을 보내는 것은 어떨까. 게다가 지금 한창 맛이 오르는 바다 음식이 있다.

겨울바람이 제법 차다. 목덜미를 스치는 바람에 가시가 달린 듯, 절로 목이 움츠러든다. 겨울바람이 차가울수록 겨울 바다는 오히려 맛이 깊어진다. 기름진 갯벌에서 조개는 통통하게 살이 오르고, 바닷물고기는 튼실해지며, 차가운 물속에서 해초는 연하고 부드러워진다. 지금이 아니면 맛보지 못할 바다의 겨울 진미가 있으니, 바로 꼬막과 매생이다. 냉장·냉동 기술이 발달해 사시사철 먹을 수 있다지만, 제철에 먹는 맛에 비할 바 아니다.

최갑수시인, 여행작가,‘우리는 사랑아니면 여행이겠지’‘밤의 공항에서’ 저자

겨울 갯벌이 선사하는 진미, 꼬막

꼬막 하면 떠오르는 곳이 전남 보성 벌교다.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한 맛이 일품인 꼬막은 지금이 가장 맛 좋고 많이 날 시기다. 지난 주말에 찾은 벌교에는 꼬막 자루가 장거리에 수북이 쌓여 있었다. 꼬막은 세 종류가 있다. 우리가 흔히 먹는 새꼬막은 ‘똥꼬막’이라고도 하며, 껍데기에 난 골의 폭이 좁고 표면에 털이 있다. 제사상에 오르기 때문에 ‘제사 꼬막’으로도 불리는 참꼬막은 고급 꼬막으로, 껍데기가 두껍고 골이 깊다. 새꼬막은 배를 이용해 대량으로 채취하고, 참꼬막은 갯벌에 1인용 ‘널배’를 밀고 들어가 직접 캔다. 완전히 성장하는 데 새꼬막은 2년, 참꼬막은 4년이 걸린다. 값도 참꼬막이 새꼬막보다 5배 정도 비싸다. 새꼬막은 쫄깃해서 무침이나 전으로, 참꼬막은 즙이 많아 데쳐서 먹는다. 피꼬막은 새꼬막이나 참꼬막보다 2~3배 이상 크다.

벌교에서 꼬막을 먹는 가장 대중적인 방법은 꼬막정식을 내는 식당에 가는 것이다. 한 집 건너 하나가 꼬막정식을 파는 식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1인당 2만원 정도면 꼬막을 배불리 먹을 수 있다. 데친 참꼬막, 꼬막을 듬뿍 넣고 부친 전, 갖은 채소를 곁들여 매콤하고 새콤한 회무침, 새꼬막을 푸짐하게 넣은 된장찌개 등이 나온다. 나중에 공깃밥을 주문해 참기름 한 숟가락 둘러 비벼도 별미다. 꼬막탕수육은 아이들이 좋아한다. 식당 주인은 꼬막을 넣고 끓이다가 거품이 나면 바로 건져야 맛있다고 귀띔한다. 꼬막이 껍데기를 벌릴 때까지 삶으면 질겨지니 주의한다.

벌교는 소설 ‘태백산맥’의 배경이 된 곳이다. 벌교역 앞으로 ‘소설태백산맥 문학기행길’이 있다. 2011년 조성된 이 거리에는 피아노학원, 문방구 등이 개화기 건물 속에 들어섰다. 사람들이 가장 먼저 찾는 곳은 구 보성여관(등록문화재 132호)이다. 일제강점기에 지은 목조건물로, 판자벽에 함석지붕을 올렸다. ‘태백산맥’에서는 ‘남도여관’으로 등장했으며, 빨치산 토벌대장 임만수와 대원들의 숙소로 사용됐다. 보성여관은 복원 사업을 거쳐 2012년 카페와 숙박 시설로 다시 태어났다.

보성여관 옆 삼화목공소는 1941년에 지은 건물로, 지금은 목수 왕봉민씨가 운영한다. 1955년 선친이 운영하던 목공소를 물려받았다. 골목을 따라 조금 가면 화폐박물관으로 운영되는 보성 구 벌교금융조합(등록문화재 226호) 건물이 있다. ‘태백산맥’에서는 금융조합장 송기묵과 현 부자에게 집안사람인 남도여관 주인 현준배가 염상진 부대의 손에 죽는다. 태백산맥문학관, 소화의집, 현부자네집 등 ‘태백산맥’의 무대를 답사해도 의미 있을 듯싶다.

벌교 꼬막 거리. 사진 최갑수

겨울 바다가 선사하는 별미, 매생이

벌교 옆 장흥에서는 매생이가 한창이다. 매생이는 장흥과 완도, 고흥 등에서 나지만, 올이 가늘고 부드러우며 바다 향이 진한 장흥 내전마을 매생이를 최고로 친다. 내전마을에서는 모두 24가구가 매생이밭 35ha를 일군다. 매생이도 다른 바다 작물처럼 나는 기간이 점점 줄어든다. 예전에는 12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채취했지만, 올해는 2월 중순까지 채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바다가 따뜻해졌기 때문이다. 십수 년 전만 해도 김을 양식하는 주민은 매생이를 ‘웬수’로 여겼다. 김발에 매생이가 붙는데, 매생이가 섞인 김은 반값도 못 받기 때문이다. 이제는 매생이가 김과 자리를 바꿨다.

남도 사람들은 매생이를 주로 탕으로 먹는다. 옛날에는 돼지고기와 함께 끓였다는데, 요즘은 대부분 굴을 넣고 끓인다. 방법은 간단하다. 민물에 헹군 매생이에 물을 붓고, 굴과 다진 마늘을 넣고 끓인다. 소금이나 조선간장으로 간하고, 참기름 한두 방울과 참깨를 뿌려 낸다. 오래 끓이면 매생이가 녹아 물처럼 되기 쉬우니, 한소끔 끓자마자 불을 꺼야 한다. 장흥 토박이들은 “매생이탕에 나무젓가락을 꽂았을 때 서 있어야 매생이가 적당히 들어간 거예요. 매생이는 젓가락으로 건져 먹어야죠”라고 설명한다. 정남진장흥토요시장에 매생이탕과 매생이떡국을 내는 식당이 여럿이다.

최근 들어 매생이가 많이 알려져 홍어나 과메기처럼 ‘전국구 음식’이 됐다. 서울 같은 대처 음식점에서도 간간이 맛볼 수 있다. 일부 식당에선 매생이로 만든 칼국수, 부침개, 달걀말이 등을 낸다. 뜨끈한 매생이탕을 한술 떠서 입안에 넣는 순간, 바다 내음이 가득 퍼진다. 안도현 시인은 이 맛을 “남도의 싱그러운 내음이, 그 바닷가의 바람이, 그 물결 소리가 거기에 다 담겨 있었던 바로 그 맛”이라고 표현했다.

요즘 장흥에서 가장 떠오르는 여행지는 정남진편백숲우드랜드다. 장흥군이 억불산 편백 숲에 조성했으며, 숙박 시설과 산책로 등을 갖췄다. 편백 숲을 걸으며 상쾌한 피톤치드 향을 가득 마시다 보면 도심에서 쌓인 스트레스가 사라지는 느낌이다. 장흥 하면 장흥삼합이다. 한우와 표고버섯 그리고 키조개 관자를 함께 구워 먹는 것을 말하는데, 한우의 진한 고기 맛과 표고버섯의 감칠맛, 관자의 부드러운 맛이 어우러져 환상적인 맛을 빚어낸다. 들판과 산, 바다의 기운을 한 번에 맛보는 별미인 셈이다. 도대체 이런 조합을 개발한 사람은 누굴까. 지금까지 먹어본 음식 중에 가장 완벽한 조합이었다.

12월의 장흥은 온통 굴 천지다. 관산읍 쪽에 굴구이 집이 늘어서 있다. 불판 위에 굴을 한가득 올려놓고 장갑을 끼고 둘러앉아 굴을 까먹는다. 툭, 툭 굴껍질 입이 벌어지고 향긋한 굴 한 알을 집어 입속으로 가져간다. 바다가 한가득 밀려오는 느낌이다.

보성여관. 사진 최갑수

고즈넉한 한옥의 겨울밤

이번 여행의 숙소는 고즈넉한 한옥이다. 보성에 위치한 목임당은 100년이 넘은 고택의 아름다움을 한껏 체험할 수 있는 한옥 스테이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어릴 적 외갓집에 찾아온 듯한 기분이 든다.

목임당의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포근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천장은 나무의 휘어짐을 그대로 살린 서까래가 노출되어 있어 운치를 더한다. 내부는 침대가 있는 메인 침실과 온돌 형태의 방 2개로 구성되어 있어 가족 단위, 8명 정도는 거뜬히 머물 수 있다.

침실 건너편에는 현대적 스타일의 주방이 있는데, 한옥의 전통적 공간에 이질감 없이 어울린다. 더불어 주방 곳곳에 놓인 질그릇과 도자기 그릇은 한옥 특유의 정취를 더해준다. 한옥에서 머무는 묘미는 내부뿐만 아니라 공간 바깥에서도 느낄 수 있다. 마당을 나오면 대문 오른쪽으로는 서재필 생가 가는 길이, 왼쪽으로는 흙담을 따라 소담한 오솔길이 펼쳐진다.

여행수첩

푸짐한 굴구이 한 상. 사진 최갑수

문학의 고장 장흥 ‘장흥에서 글 자랑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장흥에는 유독 문인이 많다. ‘서편제’의 이청준, ‘아제아제 바라아제’의 한승원, ‘녹두장군’의 송기숙, ‘생의 이면’을 쓴 이승우 등 한국 현대문학을 빛낸 문인들이 장흥 출신이다. 시인으로 유명한 작가는 단연 고 이청준 선생이다. 회진면 진목마을에 그의 생가가 있어 문청들이 많이 찾는다.

먹거리 벌교에 거시기꼬막식당, 정가네원조꼬막회관, 장도웰빙꼬막정식 등이 유명하다. 목임당은 문덕면에 있다. 예약하는 것이 좋다. 장흥삼합은 장흥읍내에 자리한 정남진만나숯불갈비식육식당이 맛있다. 장흥 토요시장에 있는 시골집 푸짐한 백반으로 아침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다. 굴구이는 관산읍 사계절 굴구이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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