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 뚫린 비행기엔 왜 안 쓰는 문이 달려 있었나[이원주의 날飛]

이원주 기자 2024. 1. 15.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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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기 ‘문’이 계속해서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날고 있던 아시아나 항공 비행기의 문을 승객이 강제로 열어 논란이 됐었습니다. 2024년 새해에는 미국에서 날던 비행기의 문이 갑자기 뜯겨 나가 전 세계적 이슈가 됐습니다. 사상자가 없어 다행입니다.

사고가 난 알래스카항공 1282편(N704AL) 737-9 항공기. 2024년 1월 5일 고도 약 4800m에서 문 위치를 막은 ‘도어 플러그’가 떨어져 나가면서 목적지인 온타리오(캘리포니아)로 가지 못하고 출발 공항인 포틀랜드(오리건)로 회항했습니다. X(옛 트위터) 캡처, AP 뉴시스.
사고 항공기 기종은 보잉에서 만든 737-9 기종입니다. 예전에 MAX라고 이름을 붙이고 홍보하다가, 큰 사고가 난 후 ‘MAX’라는 이름을 슬쩍 가린 그 비행기 맞습니다. 사고가 났던 기종은 737-8이고, 이번에 구멍이 난 기종은 737-9 기종입니다. ‘8’보다 ‘9’가 조금 더 동체 길이가 깁니다. 그만큼 좀 더 많은 사람을 태울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보잉 838-8과 9의 길이 차이. 자료: 보잉
그런데 이처럼 ‘좀 더 많은 사람을 태울 수’ 있다는 점이 이번 사고의 간접 원인이 됐습니다. 상업용 항공기가 기종 승인을 받으려면 태울 수 있는 승객 수에 따라 ‘문’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가 매우 세부적인 규제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항공 516편 화재 사고로 유명해진 바로 그 ‘90초 규정(사고 시 모든 승객이 90초 안에 대피할 수 있도록 비행기가 설계돼야 한다는 규정)’입니다.
착륙 도중 다른 항공기와 충돌하면서 불이 붙어 전소된 일본항공 516편(JA13XJ) A350 항공기. 형체가 남지 않을 정도로 동체가 타버렸지만 모든 탑승객은 무사히 탈출했습니다. 도쿄=AP 뉴시스
미국 연방항공청(FAA)이 만든 문서를 보면, 항공기에 붙는 문(비상구 포함)은 총 9종류로 나뉩니다. 문의 크기뿐만 아니라 문턱의 높이, 위치에 따라 분류가 달라집니다. 이 중 항공기 바닥 쪽 문(Ventral), 꼬리 쪽 문(Tailcone)처럼 요즘 여객기에서 보기 어려운 문들을 제외하면 보잉이나 에어버스 기종에서 볼 수 있는 문은 6종류 정도로 압축됩니다.
보잉 727 기종에 있던 꼬리 부분 출구. 자료:위키미디어
이 중 이번에 사고가 난 737 기종에 쓰이는 문은 I II III 형입니다. 앞뒤에는 이 중 가장 큰 I형 문이, 날개 위 비상문에는 III 형 문이 달립니다. 그리고 미국 연방항공청은 어떤 형식의 문이 몇 개 달렸느냐에 따라 최대 탑승 인원을 다르게 제한하고 있습니다. I형 문이 양쪽으로 한 쌍씩 달리면 45명을 더 태울 수 있고, III 형 문이 양쪽으로 한 쌍씩 달리면 35석을 추가할 수 있는 식입니다.
출입문(비상문) 유형별 최대 좌석 수를 규정해놓은 미국 FAA 문서. 자료: FAA(CRF 25.807)
보잉 737-8, 9(MAX)기종에는 I형 문이 맨 앞과 맨 뒤에 2쌍, 날개 위에 III 형 비상구가 2쌍 달려있습니다. 그러면 이런 비행기들에 태울 수 있는 최대 승객 수는 I형 2쌍 × 45명, III 형 2쌍 × 35명. 즉 160명이 최대 탑승객 수가 됩니다.
다만 요즘 이 규정대로 160석만 넣고 날아다니는 737기는 별로 없습니다. 대부분 이보다 수십 명 많은 좌석이 있습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FAA, 유럽항공안전청 등 형식승인 당국이 ‘특별 조건’이라는 규정을 만들어 좌석 수를 늘릴 수 있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보잉 737 기종의 앞뒤 문 크기는 (눈에 잘 띄진 않지만) 크기가 조금씩 다릅니다. 승객이 주로 탑승하는 왼쪽 맨 앞문은 너비 86.4cm, 높이 182.9cm입니다. 맞은편에 달린 오른쪽 앞문은 가로 폭이 조금 좁은 76.2cm이고, 뒷문 두 개는 여기서 높이도 조금 낮춘 165.1cm입니다.
보잉737 기종의 오른쪽 앞문. ‘서비스 도어’라고 부르며, 승객이 주로 타고 내리는 왼쪽 앞문보다 약간 작습니다. 이 문으로 주로 기내식, 음료 등의 서비스 물품을 들여놓기 때문에 ‘서비스 도어’라는 이름으로 불립니다. 동아일보DB
규제 당국이 명시한 I형 문의 최소 크기는 폭 61cm, 높이 121.9cm입니다. 737기 앞뒤에 달린 문이 이보다 큽니다. 보잉은 큰 문에 몇 가지 안전장치를 추가해 탈출 효율을 높이고 ‘Oversized Door’ 인증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승객 수를 737-8(MAX) 기준 189석까지 늘릴 수 있었습니다.
737 기종의 문 형식에 예외 규적을 적용해 승객 수를 늘릴 수 있다고 명시한 규정. 자료: EASA
이번에 문제가 된 737-9 기종은 737-8 기종보다 길이가 좀 더 깁니다. 항공사는 당연히 좌석을 더 넣고 싶었을 겁니다. 중간에 문 하나를 더 달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생긴 문이 이번에 뜯어져 나간 자리에 있던 그 ‘여분의 문’입니다. 이 여분의 문이 생기면서 737-9의 최대 좌석 수는 220석까지 늘어났습니다.
물론 이런 ‘특별 조건’은 에어버스 비행기에도 똑같이 적용되고 있습니다. 에어버스 A320시리즈의 앞뒤에는 C형 문이 달려있고, 날개 위에 III 형 탈출구 2개가 있습니다. A321의 경우 아예 C형 문이 4쌍 주르륵 달려 있습니다. 규제에 따라 계산하면 A320은 180석, A321은 220석이 한계지만 ‘오버퍼포밍(고효율) 도어’라는 예외 규정을 적용받으면 각 기종의 승객 수는 195석, 230석까지 늘어납니다.
그런데 항공기에 문 하나를 추가하는 비용은 비쌉니다. 또 문을 추가하면 최소한 양쪽 중 한쪽 문에는 승무원 좌석 등을 이유로 좌석을 팔지 못합니다. 항공사 입장에선 손해입니다. 최대 승객 수가 200석이 넘어가는 순간 객실승무원 수도 4명에서 5명으로 늘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런 비용을 들이기 싫거나, 상대적으로 넓은 좌석을 배치하고 고급화를 홍보하는 항공사들은 문을 달 이유가 별로 없습니다. 이번에 사고가 난 알래스카항공 비행기도 전체 좌석 수는 178석이었습니다. 문을 추가하지 않는 게 유리했던 겁니다.
알래스카항공의 737-9 좌석 배치도. 총 178석으로 운용하고 있습니다. 자료: 알래스카항공 홈페이지 캡처
그래서 보잉에서는 몇 가지 옵션을 제시했습니다. 아예 안쪽 바깥쪽 모두 문 자체를 없애버리고 벽으로 막는 옵션과, 출입구 구멍을 그대로 두되 문 대신 덮개를 씌우고 내부도 벽처럼 덮어버리는 방식입니다. 이 중 두 번째 방식을 ‘도어 플러그 방식’이라고 부릅니다. 쓰지 않는 콘센트에 잠시 덮개를 덮어둔 뒤 필요할 때 다시 덮개를 제거하고 쓰겠다는 것과 비슷합니다. 나중에 비행기 좌석 수를 늘릴 필요가 있을 때 문으로 다시 개조할 수 있을 겁니다. 보잉은 많은 비용이 든다고 안내하고 있지만 비행기를 새로 사는 것보다는 훨씬 싸겠죠.
737-9 기종의 중간 부분 진짜 비상구(위)와 도어플러그(아래) 차이. 통상 비행기 출입문에는 많은 장치가 설치되기 때문에 창문 크기가 매우 작아집니다. 자료: 보잉, AP 뉴시스
문제는 매우 높은 고도와 저온, 저압 환경에서 비행하는 비행기에는 이런 문, 창문 주위에 가해지는 피로도가 매끈한 동체 부분보다 높다는 데 있습니다. 이 추가적인 피로도를 견디도록 잘 설계하고 잘 조립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 도어플러그는 볼트 4개로 고정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나만 어설프게 잠겨도 대형 사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이번에 FAA에서 점검한 결과 이 ‘도어플러그’ 부분을 제대로 조립하지 않은 비행기가 우수수 나왔고, FAA는 모든 안전성 검사가 완료될 때까지 이 기종의 운항을 금지했습니다.
737-9의 도어플러그 내부 구조. 붉은색 원 안이 도어플러그를 고정하는 볼트입니다. 이런 볼트 4개(위 아래 각 2개씩)가 도어플러그를 고정하는 구조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이번 사고 기종인 737-9 기종이 없는 점은 다소 안심입니다. 다만 형식이 매우 유사한 전(前) 세대 기종이 있고, 미국 현지에서는 이들 기종에 대한 의구심을 제기하는 언론 보도도 나오고 있습니다. 737-900ER 기종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한항공에서 6대를 운용하고 있으며, ‘도어플러그’ 옵션이 적용돼 있습니다.

물론 지금까지 900ER이 유사 사고를 낸 적이 없는 만큼 안정성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또 미국 교통안전위원회(NTSB)에서는 이번 737-9 기종의 사고가 “설계나 정비가 아닌 제작 과정의 문제”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또 하지만 국토교통부가 ‘MAX’ 자매 기종인 737-8에 대해서도 점검 지시를 내린 만큼 이 기회에 또 다른 유사 기종에 대해서도 철저히 점검해서 안전성을 확실히 입증하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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