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늦어지는 '은마 49층'

부정선거 의혹 조합장 직무 정지
27년만에 조합 설립 재건축 암초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재건축 사업이 또다시 암초를 만났다. 재건축이 추진된 지 27년 만에 뽑힌 첫 번째 조합장이 법원에서 직무집행정지 처분을 받은 것이다. 주민 간 법적 다툼이 길어지면 사업 지연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15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1부는 지난 12일 이재성 은마소유자협의회(은소협) 대표가 최정희 조합장을 상대로 낸 직무집행정지 가처분 소송에 대해 인용 결정을 내렸다. 앞서 최 조합장과 이 대표는 작년 8월 열린 은마아파트 조합장 선거에서 맞붙었다. 조합원 3654명이 투표에 참여한 가운데 최 조합장이 2702표를 받아 이 대표(838표)를 누르고 당선됐다.

이 대표는 이후 투표 절차에 하자가 있었다며 조합장 직무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했다. 4개월 만에 법원은 이 대표 손을 들어줬다. 이 대표 측을 대리한 김병익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는 "누가 몇 표를 받았는지 확인할 수 없는 하자가 있다는 판결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우편 투표는 투표지와 함께 신분증 사본을 동봉해야 하는데 이를 어겼어도 사후 신분증을 갖고 오면 유효 처리해줬던 방식 등이 문제가 된 것으로 파악됐다.

직무가 정지된 최 조합장은 곧바로 항고했다. 최 조합장은 "2000표 이상 이긴 선거"라며 "조합원 의사를 왜곡하지 않기 위해 신분증 사본을 동봉하지 않았다는 분들에게는 나중에 따로 신분증을 받았다"고 반박했다. 이어 그는 "원래 이달 중 최고 높이를 49층으로 올리는 내용의 정비계획 변경안을 (강남구청에) 낼 예정이었는데, 직무정지로 일단 멈춰버렸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조합 측은 재건축 사업 지연을 막기 위해 직무집행정지 결정이 내려진 이달 12일 즉시 새로운 조합장을 선출하고자 선거관리위원회 모집공고를 냈다.

그러나 신임 조합장 선거가 순조롭게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현재 조합 임원이 모두 지난해 8월 선거에서 당선된 만큼 최 조합장과 마찬가지로 선출에 하자가 있다는 게 은소협 측 입장이기 때문이다. 조합 직무대행자에 대해 추가 소송이 진행되면 선거 자체가 멈출 수도 있다.

김 변호사는 "선관위가 공정하게 구성될 수 있도록 직무대행자를 법원에 선임해 달라고 하는 방안이 있다"고 언급했다. 현 조합 측은 이에 대해 "재건축을 늦추려는 목적"이라며 반발한다. 법적 다툼이 길어지면 정비계획 변경, 건축 심의, 사업시행계획인가 등 후속 절차가 줄줄이 밀릴 수밖에 없다.

[이희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