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의매수도 ‘케이스 바이 케이스’… 실효성 적을 듯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전세사기 피해주택이 경매에 넘어가기 전 해당주택을 감정가에 ‘협의 매수’하고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는 방안을 정부가 ‘1·10 부동산대책’에서 발표했지만,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피해자들이 요구해 온 ‘보증금 조기 회수’를 위해 마련한 대책이지만 협의매수의 조건이 까다로와 혜택을 보는 피해자가 매우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된다.
‘협의매수’ 정부 발표 뜯어보니…
국토교통부는 지난 10일 ‘주택공급 확대 및 건설경기 보완방안’을 통해 전세사기 피해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눈에 띄는 부분은 LH가 주택이 경·공매에서 낙찰되기 전 피해주택을 감정가에 ‘협의매수’하는 부분이다.
지금까지 전세사기 피해를 인정을 받은 임차인들은 해당 주택이 경매에 붙여진 뒤 우선매수권을 활용해 주택을 ‘셀프 낙찰’을 받은 뒤 이를 재매각해 보증금을 회수해야 했다. 하지만 최근 빌라 매매시장이 극심한 침체기에 들어선 상황이라, 재매각을 통해 보증금을 언제 회수할 지 기약하기 어려웠다. 빌라 매매가격이 보증금보다 낮다면 매각을 해도 일정액을 손해봐야 한다.
만약 보증금보다 낙찰가가 높아 우선매수권을 행사하기 부담스러운 경우라면, LH에 공공임대주택으로 매입 신청을 하고 그 주택에서 계속 거주하는 방법 밖엔 없다. 이 경우 보증금 회수는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반면 협의매수는 보증금 일부라도 현금으로 회수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동안 나온 정책보다 진전된 측면이 있다. 만약 감정가가 2억원인 주택에 전세보증금이 1억2000만원인 피해 주택이 있다면, LH가 주택을 2억원에 매입하고 임차인에게 보증금 전액을 상환해주는 것이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 만약 감정가 1억원, 보증금이 1억2000만원으로 감정가가 보증금보다 낮은 경우엔, 임차인은 1억원을 돌려받는다. 임차인은 2000만원을 손해보지만, 1억원은 돌려받게 된다.
국토부 관계자는 “협의매수가 가능한지 아닌지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며 “일단 임차인 외에 다른 채권자가 없는, 즉 권리관계가 단순한 주택부터 협의매수할 예정”이라고 했다. 국토부는 경기도 화성시 동탄 피해자들부터 우선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채권자가 여럿이면 채권조정 협의를 거쳐 감정가 아래로 부채 총액이 조정되어야 LH가 매입할 수 있는데, 이와 관련된 구체적 업무 지침은 2월 중 발표 예정이라고도 했다.
‘적용 주택 드물 것’… 피해자들의 이유 있는 불신
문제는 현실적으로 임차인 외에 다른 채권자가 없는 주택이 드물다는 점이다. 인천 미추홀구·서울 강서구 화곡동 등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대량으로 양산한 악성 임대인들은 애초부터 채무를 상환할 능력이나 의사가 없이 주택을 수백·수천 채 매입한 경우가 많다. 대부업체 등 다른 금융기관에서 주택 담보 대출을 받았거나, 다른 임차인의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해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등에서 압류가 들어온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책 자체로도 모순이 있다. 특별법상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할 것으로 우려되는 경우’에 해당되야 한다. 협의매수 대상이 되는 ‘권리관계가 깨끗한 주택’에 사는 피해자들은 애초에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택이 이미 경매에 넘어간 경우에도 협의매수 신청은 불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일단 경매에 넘어가면 임차인 외 제3의 채권자의 채무 조정이 쉽지 않은 데다, 정부도 ‘경매를 통해 보증금 회수가 가능한 사례’로 볼 가능성이 크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전세사기 피해자나 지원단체는 이번 협의매수 대책에 큰 기대를 걸지 않고 있다. 특히 인천 미추홀구 피해자들은 LH에 우선매수권을 양도하고 공공매입을 신청하려 해도, 주택 상태가 LH 매입임대주택 매입기준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절당하는 사례가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세사기 특별법이 시행된 지 6개월여가 지난 15일 기준,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받은 이들은 1만944명에 달했으나 LH 공공매입이 실제로 성사된 경우는 단 한 건도 없었다.
지수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은 “그간 정부의 전세사기 대책을 보면 무언가 되는 것처럼 기사가 나와도, 실제로는 문턱이 높아 이용한 사람이 극히 드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라며 “협의매수 역시 LH의 매입 기준을 넘기 쉽지 않다는 점에서 가능한 주택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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