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포럼] 오락가락 정책에 국민은 피곤하다
총선前 선심성 공약 증가
정책 예측성과 효과 낮춰
對정부 신뢰 떨어질수도
기자의 한 지인은 지난달 종합부동산세(종부세) 고지서를 받아 들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액수가 커서가 아니라 2년 전보다 너무 적게 나왔기 때문이다. 그는 부인과 함께 서울 강남과 용산, 경기도 분당에 아파트 4채를 가진 덕(?)에 2021년 종부세로 1억3000만원을 넘게 냈다. 이듬해 윤석열 정부 출범으로 공정시장가액비율(60%)이 낮아져 종부세는 8300만원으로 줄었다. 지난해에는 기본공제액 상향과 다주택자 세율 감소, 공시가격 하락까지 맞물려 1200만원에 그쳤다. 그는 "2021~2022년 가혹한 세제일 때 부동산을 보유한 죄로 지금은 안 내도 될 거액을 빼앗겼다"고 했다.
종부세를 포함한 세제 개편안이 매년 나오다 보니 잘 숙지하지 않으면 낭패를 본다. 또 정부 정책이 중도에 폐기되거나 반대로 되살아나서 골탕을 먹기 일쑤다. 정권에 따라 세제나 정책이 바뀔 순 있지만 고무줄처럼 진폭이 큰 게 문제다. 2022년 종부세 대상자가 119만5000명에서 지난해 41만2000명으로 3분의 1가량 준 것은 이를 잘 보여준다.
문재인 정부 때 기억나는 고약한 개편 중 하나는 부동산 증여를 막고자 뚝딱해서 증여 취득세율을 높여놓은 것이다. 2020년 7·10 대책은 다주택자 취득세율과 종부세율을 최대 12%, 6%까지 높이고 양도소득세를 중과하는 방안도 담았다. 발표 직후 세금 부담을 피해 자녀 증여가 늘 것으로 예상되자 여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은 즉시 움직였다. 나흘 만에 조정 대상 지역에서 3억원 이상 주택 증여 시 취득세율을 기존 3.5%에서 12%로 올리는 개정안을 발의해 통과시켰다. 정상적인 증여까지 막는 '국가 폭력'과 다름없다.
정책의 예측 가능성이 흔들리면 경제 안정은 훼손된다. 전 정부 때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경제정책은 시장 주체에 얼마나 예측 가능성을 부여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좌우된다"고 했지만 실행은 정반대였다. "예측 가능성을 위해 일관성을 가져야 한다"고도 했지만 일관되게 정책을 자주 바꿨을 뿐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이 2016~2020년 주요 20개국(G20)의 경제정책 불안정성 정도를 측정한 결과 한국은 두번째로 높았다. 세계경제포럼(WEF) 국가경쟁력 평가(2019년) 항목 중 하나인 '정책 안정성' 순위는 141개국 중 76위에 그쳤다.
현 정부도 정책 예측성 측면에서 높은 점수를 받긴 어렵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선심성 정책을 쏟아내면서 더 그렇다. 정부는 기존 약속을 깨고 공매도 금지와 대주주 요건 완화에 이어 금융투자소득세도 폐지하기로 했다. 금투세는 유예를 거쳐 2025년 시행하려 했다가 이달 초 윤석열 대통령 말 한마디에 폐지로 가게 됐다. 철도나 공항 건설 같은 대형 국책 사업은 운 좋으면 예비타당성조사가 면제된다. 교육 분야도 교과과정이나 수능제도 개편이 잦아 수험생은 늘 불안하다.
부동산 정책은 여전히 조변석개(朝變夕改)다. 정부는 준공 30년이 넘은 아파트에 대한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을 완화한 데 이어 얼마 전에는 안전진단조차 필요 없도록 했다. 과거 어렵게 안전진단을 통과한 재건축 단지 주민들로선 황당한 일이다. 특히 성급한 정책 발표 이후 후속 조치가 없으면 정부는 '양치기 소년'이 되고 정책에 대한 신뢰는 하락한다. 지난해 1월 분양 아파트 실거주 의무 폐지가 발표됐지만 주택법 개정안 통과는 요원하다.
정책 예측성과 일관성이 떨어지면 기업과 가계는 장기 계획을 갖고 합리적 경제 활동을 할 수 없다. 어떤 제도가 또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몰라 경제 주체는 행동을 망설이게 되니 정책 효과는 반감된다. 유연한 정책 운용은 필요하나 정부 신뢰를 깎아 먹을 정도가 돼서는 안된다. 정책 예측성 제고야말로 지속적인 성장을 가져올 열쇠다.
[김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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