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 아닌 문해력이 성적 좌우…‘책 읽는 습관부터 들여라’
선행보다 초등학교 학습 마무리 먼저
독서는 폭넓게, 흥미 갖는 것이 중요
하루 일과 중 작게라도 분량 정해 실행
매일 30분 이상 운동 체력증진에 도움
“겨울방학이 시작되자마자 ‘예비 중1 대비반’ 학원에 아들을 보내고 있어요. 주변에 선행을 안 하는 아이가 거의 없다 보니, 국·영·수는 적어도 1학기까지 진도를 빼고 입학시켜야 안심이 될 것 같아요.”
양동규(50)씨처럼 중학교에 입학할 자녀를 둔 부모들의 요즘 최대 관심사는 선행 여부다. 중학교에서 과목이 늘어나는 등 교과 중심의 교육이 많아지고, 그 결과가 수행평가와 중간·기말 고사를 통해 성적표로 나오는 등 사실상 입시 경쟁의 출발점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부모 대부분이 조급한 마음에 겨울방학 동안 선행학습에 열을 올리는 이유다.
지금 시기 예비 중학생에게 정말로 중요한 것이 ‘선행’일까. 25년차 엄재민 충북 제천 대제중 교사(국어)와 23년차 우정경 경기 안양 신성중학교 교무부장(과학)의 도움을 받아 ‘예비 중학생 겨울방학 잘 보내는 법’을 정리했다.
■ 최상위권 아니면 선행보다 복습
중학교의 교과목이 다양해지긴 하지만, 대체로 초등학교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수업이 진행된다. 따라서 선행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가 초등학교 교과 과정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느냐 여부다. 아이의 실력을 고려하지 않고 선행학습만 했다가는 시간과 돈만 낭비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우정경 교사는 “선행에서 중요한 것은 이해의 여부다. 단순히 패턴을 익히는 암기 위주의 과도한 선행은 오히려 사고력에 방해가 된다”며 “생각과 추론을 통해 해답을 풀어내는 문제해결력을 키우기는커녕 본인이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을 하다 보면 더 빨리 벽을 느끼고 학습에 흥미를 잃어버려 성적에 더 악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때 성적이 평균 수준이라면 선행보다 초등학교 교과 내용의 완벽한 마무리가 더 중요하다. 의대 등을 목표로 하는 초등 최상위권이거나, 초등 교과 과정을 90% 이상 이해하고 있고, 선행 과정을 막힘 없이 따라가는 수준이 아니라면 선행을 할 필요가 없다. 이 시기에는 선행보다 어휘력, 즉 문해력을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
엄재민 교사는 “선행은 필요하지 않다고 본다. 대신 문해력과 어휘력을 키우는 게 먼저다. 시험 볼 때 ‘요약’ ‘지문’ 같은 단어를 몰라 질문을 할 정도로 아이들의 어휘력이 많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지식을 넓히고 똑똑해지려면 ‘입말’이 아니라 ‘글말’을 알아야 한다”며 “그래야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을 쉽게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학업 성취도도 높아진다”고 말했다.
우정경 교사는 “아이들이 국어는 물론 사회, 과학, 가정, 기술, 역사, 지리 등 각 과목 시간에 등장하는 어휘를 몰라 글을 읽고도 이해하지 못하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사례가 많다”며 “일찍부터 책에 많이 노출돼 문해력이 우수한 아이들의 학업 성적이 오히려 더 뛰어나다”고 말했다.
■ 교과서보다 다양한 책 접해야
어휘력과 문해력을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책을 읽는 것이다. 독해 능력 향상뿐 아니라 수행평가와 통합교과형 논술을 대비하는 효과까지 얻을 수 있다. 이때도 선행을 고려해 중학교 교과서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엄재민 교사는 “교과서는 차근차근 진도를 나가게 구성돼 있다. 교과서에 나오는 단어를 어려워해 사회, 지리를 어려워하는 상황에서 선행의 의미로 교과서를 읽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싶다”며 “오히려 청소년 (성장) 소설을 통해 인생, 진로, 경험, 학업, 친구 관계 등을 접하며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편이 낫다”고 조언했다. 공부라는 것도 결국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책을 읽으면서 자신의 삶을 고민하는 것은 물론 자기주도적으로 공부하는 힘까지 얻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중학교에서는 초등학교보다 다루는 글의 종류가 많아지므로 독서는 폭넓게 하는 것이 좋다. 또한, 책이 지루하고 따분한 것이 아니라 TV, 유튜브, 게임만큼 재밌다는 인식을 심어줄 필요가 있으므로 책의 수준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편이 낫다. 국어의 경우 교과서에 나오는 작품이나 작가의 시, 소설 등을 미리 읽어보면서 어휘력을 높일 수 있다. 수학, 과학, 지리, 역사 등의 경우는 관련 지식을 만화와 소설 등의 형식으로 이해하기 쉽게 서술한 책을 읽는 방법이 있다.
엄재민 교사는 “한국사도 교과서보다는 한국사를 이야기로 재밌게 풀어낸 것, 암기와 학습 목적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을 이해하면서 흥미와 재미를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책의 수준과 내용에 대한 이해가 아닌 아이가 책에 대한 흥미를 갖도록 동기 부여하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 스스로 하는 독서 및 공부습관
독서량보다 스스로 읽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억지로 책을 읽는 것보다 하루 30분이라도 꾸준히 읽는 편이 낫다. 지금 책 읽는 습관을 제대로 잡아준다면 중·고교 때는 물론이고 평생의 독서 습관으로 만들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부모가 책을 읽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우정경 교사는 “무조건 책을 읽으라고 잔소리하는 것은 부정적인 자극이 될 수 있다. 부모가 먼저 텔레비전을 끄고 책을 읽는 솔선수범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며 “책 고르고 읽는 일을 함께하는 것은 물론 느낌을 서로 나누거나, 거실을 서재로 꾸미는 방법을 활용해볼 수 있다”고 조언했다.
한자를 따로 공부하거나 논술학원에 다니는 것은 효과가 있을까. 엄재민 교사는 “한자 자격증 5급을 땄는데도 한문시험 성적이 바닥인 경우가 다반사이고, 한국사 능력 시험 자격증을 딴 경우도 마찬가지”라며 “자격증이 자신감을 얻게 하는 데 도움이 되겠지만, 암기로 공부했기 때문에 학업 성취도를 높이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 즉 자기주도학습 능력도 지금 이 시기에 키워야 한다. 부모는 아이가 하루 생활 및 학습 계획표를 세워 기상부터 취침, 공부와 휴식 시간, 하루 학습량 등을 직접 관리할 수 있게 독려할 필요가 있다. 매일 영어단어 10개, 수학 2쪽 풀기, 독서 30분 등 적은 분량이라도 아이가 스스로 공부 계획을 세우고 혼자서 꾸준히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부모가 아이의 일정과 생활, 등하교 등을 챙기고 관리해주는 생활 역시 벗어나야 한다.
우정경 교사는 “많은 부모가 학원에 의존하지만, 사실은 굳이 학원에 묶이지 않아도 본인이 시간을 잘 관리할 수 있다면 체력적으로 많은 소진이 되지 않으면서 경제적 부담이 덜한 경기도교육청의 ‘하이러닝’ 같은 인터넷 강의를 활용해 뛰어난 성적을 내는 경우도 다수”라며 “학원 숙제에 치여 수업시간에 해결하거나, 조는 아이들이 있는데, 그게 가장 효율이 떨어지는 사례”라고 설명했다. 그는 “아이가 부모와 대화할 수 있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자기 수준에 맞는 교재 선택, 인강 수강 등의 방법으로 자기주도학습을 실천하는 게 낫다”고 덧붙였다.
■ 규칙적 생활·운동으로 체력 키워야
규칙적인 생활을 통해 신체 리듬을 중학교 생활에 맞추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방학 동안 게임과 스마트폰 보기 등으로 밤낮이 바뀌어 생활하는 아이들이 많은데, 일찍 일어나고 일찍 자는 습관을 방학 중에도 유지해야 한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습관이 있다면 입학 전에 반드시 고쳐줘야 한다.
중학교에서는 수업시간이 45분으로 5분 늘어나고, 하루 6~7교시를 소화해야 하는 만큼 집중력과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매일 30분씩이라도 좋아하는 운동을 통해 체력을 키우고 스트레스를 풀 기회를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
엄재민 교사는 “요즘에는 운동을 잘면서 땀을 흘려본 아이들이 자신감이 있고, 활발하며, 인기가 많을 뿐 아니라 공부도 잘 한다”며 “축구, 농구, 탁구, 배드민턴 등 좋아하는 운동을 하면서 체력을 키우면 자신 있게 학교생활을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학교 입학과 맞물리는 이 시기에는 아이가 사춘기를 겪을 확률이 높다. 부모가 시키는 대로 곧잘 했던 아이가 ‘알았다고!’ ‘알아서 할게!’ 등의 말을 입에 달고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 일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일방적인 충고와 조언이 잔소리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으므로 함께 있는 시간 동안 아이와 대화를 통해 좋은 관계를 형성하도록 노력하는 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아울러 아이의 친구 관계에도 너무 개입하기보다는 본인의 선택을 존중하며 지지하고 응원해줘야 한다.
엄재민 교사는 “친구들과 관계를 잘 맺고, 스트레스를 덜 받는 애들이 학교생활을 잘 한다”며 “아이 주변에 친한 친구들이 있는지, 지속해서 연락하는 친구들과 자유롭게 스마트폰과 SNS 등을 활용해 교류하는지 확인하고 잘 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자세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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