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부 독립유공 등록한 손자… 보훈급여는 외손녀가 탔다, 왜

이승규 기자 2024. 1. 15.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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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 서열이 같으면 연장자에게” 법 규정 때문
손자 “아무런 기여도 없었던 후손이 혜택”
대구지방법원. /뉴스1

별세한 친할아버지의 독립유공자 등록을 이끌어내고 제사와 묘소 관리를 맡아온 손자가 독립유공자 유족에게 지급되는 보상금을 받지 못하게 됐다. 보상금은 타지에서 따로 살던 외사촌 누나에게 모두 지급됐다. 생존한 유족의 서열이 같으면 연장자에게 보상금을 지급하는 법 규정 때문이다. 독립유공자를 실질적으로 기리고 선양하는 유족이 법의 허점 때문에 받아야 할 보상금을 받지 못하게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구지법 행정1단독 허이훈 판사는 60대 전모씨가 대구지방보훈청을 상대로 제기한 보훈급여금 지급 비대상자 결정 취소청구 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고 15일 밝혔다.

전씨는 지난 2022년 8월 15일 국가보훈처(국가보훈부 전신)에서 독립유공자 대통령 표창을 받고 애국지사로 등록된 故 전두환(1885~1937) 지사의 손자이다. 국가보훈부 등에 따르면 충북 옥천 출신인 전 지사는 1919년 3·1 운동 당시 고향에서 만세 시위에 참여했고, 이듬해엔 일제가 지역 산림 자원 등을 수탈하려던 것을 막기 위해 항일운동을 하다 체포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손자인 전씨는 어린 시절부터 모친(전 지사의 며느리) 등에게 이 같은 일화를 듣고 형제들과 함께 할아버지의 공훈을 증명하기 위해 다년간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하는 등 백방으로 노력을 거듭했다고 한다. 전씨 형제가 거주하는 충북 옥천 청성면의 선산에는 전 지사의 묘소가 있어 매년 제사를 올리고 벌초하며 관리를 해왔다.

그러던 2022년 1월 전씨 등은 국가보훈처에 할아버지에 대한 독립유공자 서훈 신청을 했고, 마침내 전 지사는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았다. 할아버지의 사후 85년만에 찾아온 기쁨에 전씨 가족은 공중파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전 지사의 이름과 공적을 알리는 등 ‘선양 사업’까지 추진했다.

제78주년 광복절을 앞둔 지난해 8월 13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도서관 꿈새김판에 독립운동가의 사진과 함께 '이분들의 이름을 기억하십니까?' 문구가 게시돼 있다. /뉴스1

하지만 독립유공자 유족에게 지원되는 보상금이 전씨가 아니라 타지에서 따로 살던 전 지사의 외손녀 정모씨에게 지급되면서 가족 내부에서 불만이 터져나왔다. 전씨 측은 “정씨가 결혼 이후부터 할아버지와는 관련이 없는 삶을 살았고, 할아버지의 독립유공자 등록에 아무런 기여를 하지 않았는데도 보상금을 받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했다.

현행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독립유공자법)에 따르면 독립유공자가 사망했을 경우 배우자·자녀·손자녀·며느리 중 선순위자 1명에게 보상금을 지급한다. 순위가 같은 유족이 2명 이상일 경우, 나이가 많은 사람을 우선하되, 독립유공자를 주로 부양한 사람을 우선한다고 규정돼 있다. 이 법을 근거로 대구지방보훈청이 손자인 전씨(60대)보다 나이가 많은 외손녀 정씨(80대)에게 보상금을 지급한 것이다. 대통령표창을 받은 독립유공자 유족에겐 매달 84만 7000원이 지급된다.

전씨는 결국 정씨에게 보상금을 지급한 대구지방보훈청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전씨 측은 법정에서 “독립유공자의 손자녀는 현실적으로 부양을 할 수 있는 세대가 아닌 경우가 많다”며 “법률상 ‘주로 부양한 자’의 의미를 독립유공자의 공적이 드러날 수 있도록 노력했거나, 위패를 모시고 추모하며 묘소 관리를 해온 사람으로 해석해야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전씨 형제들이 전 지사에 대한 독립유공자 등록을 이끌어낸 점과 추모 활동을 이어온 것은 인정하면서도, 대구지방보훈청의 지급 결정이 틀리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허 판사는 “독립유공자법에 나오는 ‘부양’의 뜻은 독립유공자의 생활 안정과 복지향상을 위한 경제적·정서적 지원을 의미한다”며 “전씨의 활동이 전 지사를 (실제로)부양한 행동으론 볼 수 없는 만큼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전씨 측의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한중 박경수 변호사는 “지난 수십년간 전 지사에 대한 추모·선양 활동을 해왔고 앞으로도 해나갈 가족들은 전씨 형제들인데, 정작 보상금은 엉뚱한 이에게 돌아가는 격”이라며 “독립운동가 유족의 부양 요건을 현실에 맞게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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