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 강한, 서평연대 서른네 번째[출판 숏평]
■가문비나무의 노래(마틴 슐레스테 지음 / 니케북스)
저자 마틴 슐레스케는 바이올린 제작자다. 그는 바이올린을 조율하는 장인의 자세로 삶을 대하고 신 앞에서 살아간다. 저자와 같은 자세로 내 삶의 순간에 유심히 관심을 기울였던 게 언제였는지 돌이켜본다. 풍파를 맞으며 자란 가문비나무는 바이올린의 훌륭한 울림통이 된다.
잔가지를 떨치며 자라나는 가문비나무를 상상하니 한겨울의 의정부가 떠오른다. 유난히 추웠던 1월의 의정부에는 어디에나 곧고 높게 뻗은 앙상한 나무가 있었다. 넓은 하천과 절의 입구, 음악도서관 유리창 너머 미술관 정원까지, 마른 잎 쌓인 어둑한 풍경은 언젠가 비출 햇살 한 줌을 기다리는 듯 고요했다. 가문비나무도, 가로수도, 우리도 울림을 만들어 낸다. 다만 어떤 울림을 만들어 내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기억 너머로 사라졌던 한겨울의 의정부 나무가 선명히 각인됐다. 장인의 사색이 담긴 저자의 글에는 흘러가는 시간을 의미 있는 순간으로 바꾸는 힘이 있다. (공혜리 / 문화비평가, 9N비평연대,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홍보위원)
■젠더 수업 리포트[이유진(달리) 지음 / 오월의봄]
학교와 공공기관에서의 일회적 강의를 생업으로 삼는 ‘페미니스트 젠더교육 강사’가 쓴 수업 에세이. 법에 따라 의무로, 관행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기대하지 않은 성의와 열정을 보이니, 관계자와 참여자들이 방어적이거나 적대적으로 행동할 때가 많다. 담당자로부터 “성교육을 하라니까 왜 페미니즘 이야기를 하셨어요?” 같은 말을, 학생으로부터 뜬금없이 “샘, 메갈이에요?” 같은 무례한 질문을 듣지만, 두루뭉술하게 넘기지 않고 토론의 기회로 삼는다. 어쩌면 이런 질문 속에 살아가면서도 직접 대답하지는 못했던, 이 시간을 기다렸을 단 한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서다.
특히 집중해서 읽게 된 부분은 거주하는 농촌 지역에서 현장을 깊고 넓게 만드는 과정이었다. 전북 남원의 한 마을에서 거리에 ‘언니들의 명랑한 섹스 라이프를 찾아서’라고 쓰인 행사 홍보 현수막이 걸리고, 중년 남성 주민들이 학교 성교육 시간에 초대받아 자신이 왜 페미니즘을 공부하게 됐는지 설명한다. 청소년들이 마을 동아리에서 자기가 배우고 싶은 성교육은 무엇인지 이야기한다. 침묵이 깨지고 차이가 드러나고 낯선 사람들이 서로 연결된다. 제법 점잖지 않았을 분위기, 매끄럽기 어려웠을 논의, 설레지만은 않았을 전향의 과정이 어렴풋이 그려지며 존경심이 든다. (서경 / 출판편집자, 9N비평연대)
■죽음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정보라 지음 / 퍼플레인)
직접적으로 ‘공포’를 주는 소재가 턱없이 부족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 챕터를 끝낼 때마다 으스스한 기운이 온몸을 감싸며 소름이 돋는다.
정보라의 ‘죽음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는 무형의 공포, 알 수 없는 공포, 은유적인 공포를 선보인다. 물론 공포심을 채워 줄 존재가 등장하긴 한다. 다만 그것이 주는 공포심은 우리가 호러영화에서 시각적으로 마주한 그것과는 다르다. 이 점이 영화 등 영상매체에 비해 문학이 갖는 한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단 몇 줄의 문장이 우리가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는 공포보다 더 간담을 서늘케 하는 건 정보라의 ‘환상문학’이 가진 특별한 묘미라고 할 수 있다.
고백하자면, 나는 문학평론을 잘 아는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환상문학’이 지닌 문학적 가치나 장치를 어떻게 봐야 할지 모른다. 확언할 수 있는 건 에드거 앨런 포에 비견되는, 이상하고도 비논리적이며 초자연적인 소재를 통해 선사하는 쭈뼛한 이질감을 여기서도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덧붙여 나 같은 ‘대왕 겁쟁이’마저 글에 빠져들게 하는 매혹적인 문장은 덤이라고 할 수 있다. (윤인혁 / 사회문화비평가, 9N비평연대,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홍보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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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엄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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