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의대 나온 전 심평원장, 퇴직후 태백병원으로 간 까닭
"보통의 사람들이 아플 때 돈 걱정이라도 덜 하며 치료를 받게 하려면 어떤 식으로든 사회가 개입해야 한다는 사실을, 나는 정책을 공부하기 이전 지방병원의 응급실에서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사람을 건강하게 하려면 병원을 잘 짓는 것보다 사회 전체가 뒷받침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직업정신은 그때 형성됐어요. 그 믿음은 지금도 굳건합니다."
의료정책을 연구한 의사인 김선민 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장(사진·59)이 최근 발간한 저서 '아픈 의사, 다시 가운을 입다' 내용 중 일부다. 김 전 원장은 머니투데이와 만나 "아픈 사람이 돈 걱정, 직장 걱정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런 게 제도화되고 환자들이 이후 이후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스스로를 '소수자'로 생각한다는 김 전 원장. 남들이 부러워하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했지만 내과 실습 도중 어릴 때부터 겪던 배앓이가 사실은 선천질환인 '담관낭종'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개복 수술도 여러 번 했다. 이후 '담도폐쇄'까지 앓으며 배에 튜브를 끼고 살아야 했다. 나중에는 발전된 의료기술의 도움으로 담도 질환에서 해방됐지만 다년간 '환자', 드문 '여성 의사'였던 점 등의 영향으로 경쟁이 덜 치열하고 사람을 다루는 예방의학 전공의의 길을 가게 됐다. 직업환경의학과, 가정의학과 전문의 자격증도 취득했다. 추후 보건산업진흥원에서 소수자를 위한 의료정책(의료급여)을 연구했다. 결혼도 하고 두 아이도 낳은 후였다.
이후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3년간 근무했는데 마흔 살이 되기 전 대장암 3기라는 시련이 찾아와 공백이 생겼다. 우울증도 앓았다. 이혼하고 두 아이를 홀로 양육하던 때였다. 주변에 화를 내고 세상과 담까지 쌓기도 했다. 그래도 결국은 이를 극복하고 2년의 공백 후 노동강도가 높지 않으면서 의사로서 일할 수 있는 곳을 찾았다. 건강보험 급여와 의료의 질 등을 평가하는 보건복지부 산하기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었다.
심평원 근무 경력을 바탕으로 한국도 국제기구에서 역할을 하도록 적극 참여한 결과 세계보건기구(WHO) 수석기술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의료의 질과 성과 워킹파티의 첫 여성·아시아계 의장까지 맡으며 국위선양했다. 이후 심평원에서 첫 내부 출신이자 여성인 원장이 됐다. 지난해 3월 임기를 마치고 그해 9월부터 강원도 내 근로복지공단 태백병원의 직업환경의학 전문의로 다시 활동하고 있다. 질병이 산업재해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를 따지고 각종 건강검진을 한다.
김 전 원장은 "심평원 퇴직 후 직업환경의학 전문의로 현장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에 의사 구인 사이트를 보곤 했는데 태백병원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구인 공고가 몇 주째 계속 떴다"며 "사람을 못 구했나보다 싶어 문의 후 인연이 됐다"고 말했다. "처음엔 떠날 사람이라 생각해 그곳 사람들이 정을 주지 않다가 지금은 마음을 열게 됐다"고도 했다.
그만큼 의사가 지방에 가지 않고 지방 의료는 위기 상태다. 김 전 원장은 "지역간 격차 해소는 의료정책을 뛰어넘는 것"이라며 "지역격차 문제를 해소하도록 국가적 계획이 세워져야 하고 지방정부에게 의료문제를 해결할 책임과 권한을 줘 공공의료를 강화해야 한다"고 봤다.
의대 정원 확대가 화두인 가운데 김 전 원장도 의사 수를 늘려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필수의료 활성화 등을 위해 의사 수를 늘려야 한다"며 "여기에 건강보험제도의 수가제도 등을 전체적으로 손봐야 할 것"이라고 짚었다. 국민적 관점에서 산부인과 진료 등을 위해 얼마나 돈을 낼 용의가 있는지, 건강보험에서 중증질환을 얼마나 보장하고 감기 보험 혜택은 줄일 수 있는지 등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해야 할 때라는 견해도 내놨다.
심근경색증 사망률, 환자가 평가하는 의료 질 등 통계를 만들어 관련 정책이 세워지는 데에도 기여한 김 전 원장은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응원의 말도 했다. "저도 힘들고 우울했고 사람들이 밉기도 했어요. 그래도 내가 살아난다면 나중에 이 에피소드로 무슨 말을 할까 생각했어요. 이게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멀리 안 나가게 만든 장치였던 것 같아요.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나중에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는 사람이 될 때를 상상하면서, 의미 있는 과정을 견뎌내세요. 저도 아프지 않았다면 남의 어려움 하나 모르는 끔찍한 사람이 되어 있었을 것 같아요."
박미주 기자 beyond@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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