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에 덜미 잡히고 뺨 맞는 미국 [정의길의 세계, 그리고]
“네타냐후는 바이든에게 엿을 먹였다. 그들은 네타냐후 연정에 애원했으나, 반복해서 뺨만 맞고 있다.” 가자 전쟁에서 미국은 지금 이스라엘에 뒷덜미가 잡히고, 뺨을 맞으며 끌려다니고 있다. 확전을 막을 수 있을까?
정의길 | 국제부 선임기자
“미국 안보뿐만 아니라 세계의 나머지 국가 안보도 위태롭게 했다. 미국 정치사에서 유례가 없다. 왜 미국은 자신의 안보와 많은 다른 동맹국의 안보를 기꺼이 제쳐두는가? (…) 너무도 자주, 우리는 이스라엘의 변호사처럼 역할 했다.”
2006년 3월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스티븐 월트 하버드대 교수는 ‘이스라엘 로비’라는 글을 발표했다. 미국이 무조건적 지지와 지원을 하는 이스라엘에 끌려다니며, 중동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 미국과 동맹국의 안보와 국익을 해치고 있는 현실을 폭로했다. 저자들은 이스라엘과 유대인의 로비에 미 국내외 정책이 발목이 잡혔고, 이스라엘을 비판하면 ‘반유대주의’로 몰리는 현실도 짚었다. 저자들은 반유대주의라는 포화를 받았다. 자신들의 주장을 몸소 증명한 것이다.
14일로 100일을 맞은 가자 전쟁은 저자들의 지적을 상기시킨다. “모든 단계에서 네타냐후는 바이든에게 엿을 먹였다. 그들은 네타냐후 연정에 애원했으나, 반복해서 뺨만 맞고 있다.” 가자 전쟁과 관련해 행정부와 조율하는 크리스 밴홀런 민주당 상원의원은 ‘액시오스’에 가자 전쟁 이후 베냐민 네타냐후 정부가 미국의 무조건적 지지를 받으면서도, 미국의 모든 요청을 걷어차는 현실을 함축적으로 표현했다. 액시오스는 가자 전쟁이 100일을 지나면서 조 바이든 대통령도 네타냐후에 대한 인내가 바닥나고 있다고 전했다. 전쟁 이후 가자에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역할, 저강도로 전쟁 국면 전환, 가자지구에 대한 인도적 지원 확대와 관련한 논의와 요청을 묵살하고, 심지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몫인 조세 수입도 나눠주기를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공식적으로 이스라엘에 찡그리는 표정조차도 제대로 표현 못 한다. 미국은 “이스라엘은 자위권이 있고, 자신들의 결정에 따라 행사한다” “미국은 이스라엘이 하마스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것을 확실히 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등의 말만 한다. 바이든은 전쟁 이후 이틀에 한번꼴로 네타냐후와 통화하다가, 지난해 12월23일 이후 20일 동안은 한번도 통화를 안 했지만,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전략소통조정관은 “(양국의) 관계 상태에 대해 어떤 것도 말하지 않는다”고 했다.
가자 전쟁의 부담은 미국에 모두 떨어지고 있다. 미국은 결국 예멘의 ‘안사르 알라’(후티 반군)를 공습했다. 당분간 홍해 해로는 막힐 수밖에 없게 됐다. 더 큰 문제는 안사르 알라가 쉽게 물러나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이스라엘의 가자 전쟁 중단을 요구하며, 이스라엘을 오가는 선박을 홍해에서 제지하겠다고 나선 안사르 알라는 애초부터 밑질 것이 별로 없었다. 예멘 내전에서 이미 승리한 안사르 알라는 이번 위기를 자신들의 정통성을 굳히고, 홍해와 바브엘만데브해협에서 자신의 몫을 챙기는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 이는 안사르 알라를 지원하는 이란의 이해와도 일치한다.
미국이 공습을 했지만, 안사르 알라의 공격력은 여전하다고 뉴욕타임스도 보도한다. 미국이 안사르 알라를 완전히 무력화하려고 나선다면, 그건 홍해에서의 전면전을 의미한다. 보복을 다짐하는 안사르 알라는 시간을 두고 값싼 드론과 미사일로 홍해 해로를 위협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반이스라엘 여론이 비등하나 아무도 행동에 나서지는 않는 이슬람권에서 안사르 알라가 유일하게 이스라엘과 맞짱을 뜨는 형국이다. 이슬람권에서 여론은 안사르 알라 편이다. 예멘 내전 때 반안사르알라 연합군을 조직했던 사우디아라비아도 침묵한다.
가자에서 팔레스타인 주민을 모두 몰아내고, 이스라엘 정착촌을 다시 건설하자는 극우 각료 이타마르 벤그비르 치안장관 등의 목소리가 잦아지고, 네타냐후는 이들에게 더 귀를 기울인다고 액시오스는 전했다. 지지율이 바닥인 네타냐후는 가자 전쟁을 지속해야 하고, 가자 전쟁 지속을 위해서는 헤즈볼라와의 제2전선 확대가 필요하다.
미국 대외정책의 최대 재앙인 이라크 전쟁, 가자 전쟁 이전에 중동에서 미국의 발목을 잡던 이란과의 국제 핵협정 파기 등은 모두 이스라엘의 이익이 작용했다. 미국은 이번에도 중동을 다시 아수라장으로 만들 가자 전쟁을 방조, 아니 지원하고 있다. 가자에서 100일 동안 2만3968명이 죽고, 6만582명이 부상했다. 매일 240명이 죽는 셈이고, 그중 평균 90명은 어린이다. 가자 인구 220만명 중 0.01% 이상이 매일 죽어나가는 것이다. 하마스의 기습으로 인한 이스라엘인 1139명의 죽음도 이런 현실 앞에서 가려진다.
미국은 지금 이스라엘에 뒷덜미가 잡히고, 뺨을 맞으며 끌려다니고 있다. 확전을 막을 수 있을까?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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