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균 협박범'부터 공무원까지…"사적 제재, 인민재판 될 수도"
온라인 공간을 통해 사회적으로 논란이 된 인물의 신상이 공개되는 일이 끊이지 않고 있다. 범죄 혐의뿐 아니라 사생활을 이유로 신상공개되는 일까지 벌어지는 것과 관련, 전문가들은 '사적 제재'에 대한 우려를 내비쳤다.
15일 온라인을 중심으로 지방의 한 구청에서 함께 일하는 남녀 공무원에 대한 사생활 의혹이 확산하고 있다. 남성 공무원의 연인으로 추정되는 A씨가 "14년을 만나고 공무원 시험을 10년간 뒷바라지 했는데 연인이 공무원 동료와 바람을 피웠다"는 내용의 글을 올리면서 해당 의혹이 불거졌다. 그는 남녀 공무원이 근무하는 지역과 이름을 바꿔 글을 작성했지만 누리꾼들은 소설 내용을 바탕으로 특정 공무원 2명을 지목했다.
문제는 해당 공무원들의 신상이 여과 없이 유포됐다는 점이다. 온라인 상에서는 이들의 나이, 이름은 물론 사진까지 공유되고 있다. 이 같은 일이 처음은 아니다. 최근 충남의 한 사립대 교수가 제자와 불륜을 저질렀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교수와 학생의 나이, 얼굴,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계정 등 신상 정보가 온라인을 타고 퍼져나갔다.
범죄 혐의가 신상 박제로 이어진 경우도 있다. 한 유튜버는 최근 마약 투약 혐의로 수사받다가 숨진 배우 고(故) 이선균(48)을 협박해 5000만원을 뜯어낸 혐의로 구속 수사중인 여성의 신상을 공개했다. 이 유튜 버는 앞서 '부산 돌려차기' 피의자 이모씨, '압구정 롤스로이스' 사건 피의자 신모씨 등의 신상을 공개한 바 있다.
이 같은 행위는 법적으로 명예훼손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법조계 관계자들의 의견이다. 국내법은 유포 된 내용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그 대상의 명예를 훼손할 경우 명예훼손죄로 처벌한다. 판례에 따르면 사생활이나 전과 기록 등이 공개될 경우 명예훼손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
일반 명예훼손은 2년 이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 벌금,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한다. 출판물 혹은 인터넷 공간 등에서 명예훼손을 저지를 경우 사실 적시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 허위 사실을 적시했을 경우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형이다.
전문가들은 비윤리적 인물 또는 범죄 피의자를 '신상 공개'로 단죄하는 배경에 '대중의 법 감정'과 '영웅심리' 두 가지가 깔려있다고 봤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잘못한 사람이 어느 정도 벌을 받아야 되는지에 대한 시민의 법 정서와 실제 법이 거리가 멀다"며 "시민들의 욕구가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개를 하는 사람은) '남들이 못하는 이런 일들을 내가 해냈으니까 내가 영웅이다'와 같은 영웅 심리도 깔려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적 제재가 일상화하면 더 큰 문제점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먼저 공신력을 가진 수사 기관의 사실 확인 절차 없이 유포됐기 때문에 허위 사실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김무훈 법무법인 테헤란 변호사는 "수사중인 사건이라면 무죄추정원칙에도 벗어나는 것이고 개인이 공개하는 정보의 경우 정확성 여부에도 의문이 든다"며 "사적 제재를 허용하게 되면 서로가 무분별하게 신상을 공개하기 시작할 수 있고 국민들이 무분별하고 부정확한 정보에 노출될 수 있다"고 밝혔다.
형법 체계 자체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신민영 법무법인 호암 변호사는 "법이 사적 제재를 금지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폭력의 총량이 늘어나기 때문"이라며 "처음에는 시원하다고 좋아하겠지만 '인민재판'처럼 자의적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검찰 출신 권민정 법률사무소 민&정 대표변호사는 "사회적 협의에 의해 정해진 절차에 따라 처벌하는 것이 정의지, 일부 지지자들이 사적 제재를 응원한다고 해서 그것이 정의는 아니다"라며 "극단으로 나아간다면 공권력 자체가 형해화될 수 있다고 본다"고 했다.
김도균 기자 dkkim@mt.co.kr 김온유 기자 onyo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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