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연임, 그 ‘달콤살벌’한 유혹

이영태 2024. 1. 15.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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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 금융사 CEO는 사석에서 "3연임, 4연임을 해도 내려놓고 싶지 않은 자리"라고 털어놓았다.

민영화된 공기업이나 금융지주사 등 소유분산기업, 이른바 '주인 없는 기업'의 경우 역대 CEO들의 숱한 잔혹사에도 불구하고 물밑에서 정부와 살벌한 연임 전쟁을 벌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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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이 지난 2일 포스코센터에서 열린 ‘2023년 포스코그룹 시무식’에서 신년사를 하고 있다.

‘C레벨(임원)’의 정점인 최고경영자(CEO) 자리는 달콤하다. 겉으로는 “책임이 크다” “골치 아픈 일 많다”고 투덜대지만, 한번 꿰차면 열이면 열 기를 쓰고 연임에 매달린다. 한 금융사 CEO는 사석에서 “3연임, 4연임을 해도 내려놓고 싶지 않은 자리”라고 털어놓았다. 민영화된 공기업이나 금융지주사 등 소유분산기업, 이른바 ‘주인 없는 기업’의 경우 역대 CEO들의 숱한 잔혹사에도 불구하고 물밑에서 정부와 살벌한 연임 전쟁을 벌이는 이유다.

□ 연임을 위해서라면 여기저기 줄을 대고 이사회에 ‘참호’를 구축하는 건 기본이다. 없던 규정을 만드는 등 꼼수로 발버둥을 친다. A금융사는 최근 CEO 선임 당시 70세 미만이면 재임 중 70세를 넘겨도 임기(3년)를 마칠 수 있도록 내부규범을 바꿨다. 현 CEO가 3연임에 도전할 내년에 68세가 되자 임기를 1년이라도 더 늘리자는 심산이다. 심지어 과거 B협회장은 업무공백 차단을 명분으로 차기 선임까지 현 협회장이 직무를 계속하도록 정관을 바꿨다. 단 한두 달이라도 자리를 더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 끝내 떨치지 못한 연임 유혹에 화를 겪는 이들도 많다. 포스코는 이구택(6대) 정준양(7대) 권오준(8대) 회장 모두 연임에는 성공했지만 정권에 밉보인 대가로 임기를 마치지 못했다. 최정우 현 회장(9대)도 3연임 과욕을 부리다 국민연금에 제동이 걸렸고, ‘초호화 이사회’로 경찰 소환이 임박했다. 역시 ‘CEO 연임의 무덤’으로 불리는 KT의 구현모 전 대표도 국민연금을 앞세운 정부 반대에도 연임을 고집하다 낙마한 뒤 재임 시절 ‘보은 투자’ 의혹으로 검찰 수사선상에 올라 있다.

□ 4연임 도전 여부에 관심이 쏠렸던 백복인 KT&G 사장은 지난주 연임을 포기했다. 최장수 CEO 기록은 9년으로 마무리하게 됐다. 앞서 KT와 포스코 전례를 보고 자진해서 물러나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이로써 민영화 공기업 3곳의 CEO는 현 정부에서 모두 교체된다. 4대 금융지주 회장도 치열한 기싸움 끝에 현 정부에서 아무도 연임에 성공하지 못한 상태다. 정부와 CEO의 ‘달콤살벌’한 연임 전쟁에 따른 피해는 이들 기업의 ‘진짜 주인’인 주주와 임직원들 몫이다.

이영태 논설위원 yt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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